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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기준

by 청리성 김작가
삶을 살아내는데 버팀목이 될 하나의 문구

창고나 짐을 보관해두는 장소가 너저분해져 있으면, 어수선한 마음이 든다.

찾고자 하는 물건을 찾기도 어렵고, 발 디딜 틈이 없기도 하다. 안 되겠다 싶으면, 작정하고 정리를 시작한다. 정리할 때 기본은,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이다. 사실, 있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물건은, 이후에도 사용할 확률이 거의 없다. 가끔은 잊고 있던 물건이나 사진을 보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옛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기분에 젖기도 한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그 시간을 기대하며, 정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면, 머리가 어수선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너무 많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작은 일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럴 때 우선해야 할 것은, 정리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순서와 중요도 상관없이, 쭉 나열해서 적는다. 그리고 보류해도 되는 일과 다른 사람한테 요청할 수 있는 일을 한쪽으로 빼놓는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중요도나 시간의 여유에 따라 순서를 정한다.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은 바로 처리해서, 일의 가지 수를 줄이는 것도 좋다.

창고를 정리하는 일이나 할 일을 정리하는 일은 비슷하다.

둘 다 어수선함을 느낄 때 시작된다. 눈에 보이는 어수선함이나 머릿속이 어수선할 때 하게 된다. 정리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은, 마음의 안정이다. 너저분해져 있던 물건들을 정리해놓고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머릿속에 흩어져있던 어수선한 일을 정리해놓고 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진다.

정리할 때마다 느끼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창고를 정리하면 버리는 물건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공간이 많이 남는다. 흩어져있던 상자나 물건을 잘 정리해서 쌓아두거나 수납장에 넣는 것만으로도, 턱없이 부족해 보이던 공간에 여유가 생긴다. 산더미같이 많아 보이던 일을 하나씩 적어나가면서 분류해보면, 생각보다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체감했던 물건의 양이나 일의 양이 많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짐이 많았다.

많다고 느꼈던 막연한 생각이, 마음의 무게를 점점 키우고 짓눌렀다. 막연한 생각은, 두려움과 불안함을 불러온다. 보이지 않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깜깜한 공간에 있으면 그 자체로 막막한 느낌이 드는 것과 같다.

막막한 상황에 놓였을 때 필요한 것은, ‘기준’이다.

창고를 정리할 때나 일을 정리할 때도, 막막함 속에 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따라 정리해야 잘 마무리할 수 있다. 막막한 상황은, 살아가는 내내 마주하게 되는 모습이다. 사람과의 부딪힘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불현듯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 자체가 잘 살아내고 있다는 표시라 생각된다.

필자가 막막한 상황을 이겨내는 기준은, 이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덮쳐오더라도, 이 생각을 기준으로 견뎌내고 버텨낸다. 두려움과 불안감의 폭풍이 걷힐 때면,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원하지 않았고 불편했던 상황이, 나에게 필요했다는 것을 말이다. 삶을 살아내는데 기준이 될, 자신만의 문구 하나쯤 가지고 있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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