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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승리

by 청리성 김작가
보이는 우위가 아니라, 마음에서 차오르는 기쁨을 느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


부부끼리 말다툼을 한다.

누가 잘못을 해서 말다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의견 차이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휴가를 가는데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혹은 펜션으로 갈지 호텔로 갈지 등이다. 사소한 의견 차이는 어느덧 언성이 높아지고, 지나간 일이라고 묻어두었던, 묵은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당연히 상대방이 들었을 때 기분 좋지 않은 말이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 보면,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말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꺼내 들 수밖에 없는 건, 상대방의 약점이다.


약점은 열등감을 가진 부분이나 오래된 실수같이, 언급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다.

상대방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을 건드린 순간, 작은 불씨가 온 산을 집어삼키듯, 말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때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말을 서로 섞지 않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서로 쪽지나 문자 등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몇 년을 그렇게 지냈다. 중요한 건 그렇게 된 이유다. 서로가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매우 사소한 일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반어법 같은 말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겼어도 마음이 찜찜할 때 이렇게 표현합니다. 앞에서 말한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그렇습니다. 말싸움에서는 이겼어도 무슨 이유에선지, 찜찜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 의견대로 하기로 했지만, 마음은 더 불편한 거죠. 이런 상황은, 이겼어도 이겼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의견을 접어준 상대방이 승자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편안해 보이니까요.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표현은, 부부 사이에만 통용되는 건 아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는 책 제목처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지는 게 이길 때가 있다. 한참 실무자로 일할 때, 호텔과 마찰이 생긴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세팅해 주는 테이블 수량 이외의, 추가 테이블 세팅을 요청해서 발생한 문제다. 예약 지배인은 해주겠다고 했는데, 현장에 있는 지배인은 들은 적이 없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사실 호텔에서는 해주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식사가 예약된 수량과 테이블 수량의 차이가 크면, 윗선에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거부했다.

계속 우겨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정했다. 현장 지배인에게, 그렇게 되지 않으면 매우 곤란해지는 상황을 말했다. 완곡하게 부탁했다. 고객사 담당자가 매우 까칠한 성격이라 와서 난리를 부리면, 더 골치 아파질 수 있다고 살짝 엄포도 놨다. 몇 번은 안 된다고 하다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추가 세팅을 해줘서 행사를 잘 마쳤다.


행사를 잘 마치고 현장 지배인을 불렀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호텔 측에서 잘못한 부분에 관해 이야기했다. 행사 전에 하지 못했던, 책임 소재에 대해 명확하게 따졌다. 결론적으로, 호텔에서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로 정리가 되었다. 이후부터 논의된 사항에 대해, 전달을 잘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마무리 지었다.

행사 전에 계속해서 잘잘못을 따지고 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에 대해서는 이길 수 있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원활하게 도움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행사 내내 마음 졸였을 수도 있다.


누군가와 부딪히는 순간,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다툼의 목적이 속 시원함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인가?’ 내가 상대방을 눌렀다는 쾌감을 얻기 위해서는 결과와 상관없이 내질러도 되겠지만,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잠깐 호흡을 골라야 한다. 여기서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승리가 아니라, 진짜 승리가 무엇인지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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