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 같은 연인들을 그린 화가
꽃그림 명화 5, 로렌스 알마 타데마, 꽃 같은 연인들
알마 타데마(Sir Lawrence Alma-Tadema/ 1836~1912)는 대리석의 질감을 묘사하는 것에 뛰어나 '대리석 화가' 라고도 불렸다. 그의 그림들은 연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랑을 할때 느껴지는 연인들의 마음과 심리상태를 많이 담아냈다, 또한 이 연인들의 배경에는 항상 화려한 꽃들이 둘러쌓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낭만주의 화가인 알마 타데마는 네덜란드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의 직업은 마을의 공증인이었고 아내와의 사이에 세 아이를 두었는데 아내가 죽자 처제와 결혼을 해서 다시 세 명의 아이를 얻었다. 알마 타데마는 둘째 아내의 막내였다.
알마 타데마가 4살 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그림 그리기가 아이들 교육에 좋다는 것을 알고 동네 미술 선생님을 고용하여 아이들에게 미술 공부를 시켰다. 열다섯이 되던 해, 알마 타데마는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의사는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고 그의 어머니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하면서, 알마 타데마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 결과 얼마 살 수 없다던 알마 타테마는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장수를 하게 된다.
건강이 좋아지고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위해 안트워르에 가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그는 여러 번 상을 받으면서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알마 타데마가 스물 일곱이 되던 해 1월, 병을 앓던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9월에는 마리 폴린이라는 프랑스 언론인 딸과 결혼을 하는데 둘 사이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결혼 한 다음 해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화상 중 한 명이었던 에른스트 감바르트를 만나게 된 것은 알마 타데마에게 행운이었다. 범상치 않은 그의 재능을 알아 본 감바르트는 24점의 작품을 주문하고 그 중 3점을 런던으로 보내 전시를 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런던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결혼한 지 6년이 되던 해 일년 넘게 앓던 알마 타데마의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그 충격으로 거의 4개월 가까이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했다. 다섯 살, 두 살인 아이들은 그의 누이가 집에 함께 살면서 돌보았다. 이 해 여름부터 알마 타데마는 건강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자 요양차 런던으로 오게 된다.
화가 포드 매독스 브라운 집에 도착한 알마 타데마는 그 곳에서 당시 17세인 로라를 만나고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리고 이 두사람은 신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6년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하게 된다. 보불 전쟁이 나자 아에 영국으로 거처를 옮긴 그의 런던에서의 생활은 성공적이었고 그는 가장 비싼 작품 값을 받는 화가가 되었다.
같은 해 아내 로라와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데 특히 이탈리아에서 많은 영감을 받게 된다. 1879년 마흔 셋이 되던 해 알마 타데마는 로열 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1899년에는 예순 셋이 되던 해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하사 받는다.
1909년 일흔 셋이 되던 해 아내 로라가 쉰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3년 뒤 그도 딸을 따라 위궤양 치료차 여행간 독일 휴양지에서 일생을 마치고 만다. 그는 당대에 사랑과 명예와 부를 함께 누린 복 많은 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