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샘 May 12. 2020

꽃그림 명화 12, 페더 세베린 크뢰이어

- 덴마크판 사랑과 전쟁

꽃그림 명화 12, 페더 세베린 크뢰이어, 덴마크판 사랑과 전쟁

Les Roses

덴마크의 북쪽에는 스카겐(Skagen)이라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 있다. 해변이 아름다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찾곤 하는 해수욕장이 되었지만 19세기말에 이곳에서는 천재화가와 그의 아름다운 부인이 살았다. 그 화가의 이름은 페더 세베린 크뢰이어(Peder Severin Krøyer, 1851~1909)이고 그의 부인은 마리 크뢰이어였다. 

Marie en el jardin 1893

페더 크뢰이어는 노르웨이출신의 덴마크 화가였다. 노르웨이 스타방게르에서 태어난 그는 그의 어머니가 정신병 증세로 그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덴마크의 동물학자였던 그의 이모부와 이모에게 입양되어 이모의 손에 자랐다. 9세 때부터 미술에 입문하여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면서 19세에는 왕립 덴마크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수석 졸업을 하였다. 

Marie en el jardin 1895

1877~1881년 사이에 크뢰이어는 유럽 여러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예술가를 만나고 예술을 공부하며 자신의 소질을 개발해 나갔다. 그는 파리에 머물면서 레온 보나트(Leon Bonnat)에서 공부했으며, 모네, 시슬리, 드가, 르누아르 등과 교류하고 그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스레 인상주의에 입문하게 되었다.

Marie Krøyer 1890

1882년에 그는 덴마크로 돌아와 덴마크 북부 끝에 있는 오지 어촌인 스카겐에서 머무르며 다른 젊은 화가들과 함께 지역 생활의 주제를 그리며 예술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는 이 그룹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사랑받는 사람 중 하나이며, 스카겐 그룹의 리더였다. 그리고 크뢰이어는 북유럽 해변의 빛의 변화를 가장 잘 포착해 그리는 인상주의 화가였다.

Marie y su madre en el jardin 1891

1888년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그는 코펜하겐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16세 연하의 마리(1867~1940)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격정적인 로맨스 후에 결혼에 골인하였다. 마리는 전형적인 북유럽의 미인이었다. 화가였던 마리도 스카겐 공동체에 참여하며 그림도 그리고 크뢰이어의 모델이 되어 그림에 자주 등장하였다. 마리는 크뢰이어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뮤즈였다. 크뢰이어 부부는 1895년에는 Vibeke라는 딸을 낳으며 이들의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는 듯 했다.

Tade de verano en la playa

그러나 크뢰이어는 마리의 화가로서의 재능 없음을 조롱하기도 하며 부부사이에 금이가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그의 건강이 점차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예술에 대한 집착으로 점점 난폭해지고 있었고, 한쪽 눈의 시력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었보다도 그의 정신분열증으로 마리는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살아야만 했다. 그의 폭력성이 심할 때는 그녀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Tarde de verano en Skagen 1892

마리는 크뢰이어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휴식차 여행을 떠나 친구의 연인인 스웨덴 작곡가 알벤을 알게되어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녀가 그렇게 사랑하는 딸까지 놔둔 채 불륜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는 것은 연인의 배신과 임신 뿐이었다. 결국 크뢰이어부부는 1905년에 이혼을 하게 되고 크뢰이어는 시력도 잃고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1909년에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 2013년 ‘마리 크뢰이어’라는 영화로 소개가 되기도 하였다.

Tarde de verano en Skagen 1899


https://www.youtube.com/watch?v=f_cv3SgkoQQ

이전 11화 꽃그림 명화 11,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