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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숲섬 Aug 03. 2024

모두의 아침

정은영 詩.



건물 중앙에는 하늘이 뻥 뚫린 중정이 있다

원형으로 배치된 벤치들과 그 가운데서 자라는

키 큰 열 그루의 소나무


솔잎만 떨어져 쌓이는 쓸모없는 장소 같지만

온전한 소나무들의 세상, 짙은 초록의 신뢰가 쌓인

고요의 세계로 입장하는 문


떨어진 솔잎과 흙먼지를 쓸면

이제야 나도 이 땅의 일원 같고

자연의 풍경과도 제법 어울린단 생각

여기 분명히 내가 존재하고 있단 확신마저 드는 것이다


스물네 시간 켜져 있던 비상등을 끄고 나니

세상은 이리 환했다 단지

내 마음이 어두웠을 뿐


가는 실뱀이 

경쾌한 물결을 만들

풀숲으로 사라진다


은실을 닮은 느린 왈츠

첫 햇살은 달팽이가 먼저 지나간 새벽길을 비춘다


저들이 주인인 땅에 내가 들어와 사는 거였다

다친 고양이를 데려와 우리가 키우고 있다는 부끄러운 착각

고사리는 이제 뜰로 나와 혼자 큰다

새끼뱀, 어린 제비들, 작은 지네와 함께


이제 같이 살고 싶어

벗어둔 장화도 털고 신는다

솔잎이 떨어진 만큼 피톤치드는 쌓이고

고요히 아침을 쓴다


삶의 분주함과

벗어둔 두려움의 허물

쓸모 없어진 가면들까지


정원 밖에는 많은 장면을 그저 바라만 보는 눈과

함께 호흡하며 기꺼이 겪어보자 결심하는 존재가 산다

매일 비질을 하는 손길도

그걸 알아차리는 눈길도 있다



정은영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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