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가 드리는 열다섯 번째 편지
큰 마음먹고 박용우 박사가 제안하는, 대사이상이 있는 몸을 건강한 몸으로 되돌리는 {스위치온 다이어트}를 실행에 옮겼다. 벌써 마지막 주인 4주차의 첫 번째 단식이다. 밥 한 끼만 늦어져도 손 떨리고 배고프다고 난리법석이던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24시간 간헐적 단식을 세 번째로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다. 일단 다이어트의 방식과 결과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간헐적 단식이 가져다준 놀라운 경험과 발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단식은 365일 하루 세끼를 소화시키느라 고생한 위장기관들에게 완전한 휴식을 준다. 높아진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쉼 없이 분비되어 온 몸이라면 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단식이다. 혈당이 높거나 콜레스테롤이 높아진 증상들 모두가 인슐린 저항성이 원인이라고 한다. 내 위와 장을 쉬게 해 준다고 시작한 단식인데, 놀랍게도 내 몸과 마음도 예상치 못한 휴가를 맞았다. 하루 세끼를 뭐 먹을까 신경 쓰고 요리하고 정리하던 몸과 마음이 24시간 동안 처음으로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주방도 오랜만에 휴식이었다. 싱크대 위에 있던 물건들을 싹 치우고 깨끗이 닦고 말리고 나니 온 세상이 평화로웠다. 그릇 건조대도 깨끗이 씻어 엎어두었다. 완전히 건조된 모습을 보자 마음까지 개운했다. 양념과 오일을 두던 칸을 정리하고 청소할 수 있어 더 좋았다. 게다가 밥 먹은 후 소화시키고 혈당을 낮추기 위해 걷거나 운동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편안했다. 하루라는 시간은 넉넉한 이틀이나 삼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나아가 새로 생긴 시간 동안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대청소를 하고 싶었다. 집안 곳곳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고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는 방에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졌다. 먼 나라 사람들은 1년에 한 번씩 집에 있는 모든 음식물을 완전히 비우고 단식을 한다고 들었다. 닮고 싶은 습관이다. 계절에 한 번이라도 냉장고를 완전히 비워볼 생각도 해보는 중이다.
24시간 단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루 한 끼 이상의 식사는 할 수 있다. 저녁 6시에 마지막 식사를 시작해 7시에 마쳤다면, 그 때로부터 24시간이 지난 다음 날 저녁 7시에 식사를 하면 된다(아침이나 낮에 시작할 수도 있다).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과 점심 정도만 거르는 것이라 그리 크게 부담이 되거나 무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점심때쯤이 되면 머리가 살짝 어지럽거나 기운이 떨어질 수 있다. 너무 힘들면 18시간, 20시간, 22시간 언제든 단식을 중단하고 간단한 식사를 해도 좋다. 모든 것에 자신의 몸에 맞게 시도하면 된다.
24시간 동안 속을 비운 후 먹는 첫 식사는 생의 어떤 식사보다 특별하다.
우선 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100% 있는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감사의 기도와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오래 씹고 천천히 음미하는 습관도 이 기회에 만들 수 있다. 평소 식습관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위장으로 음식이 내려가고, 온몸으로 퍼져가는 음식의 온기, 세포들이 살아나는 느낌 등도 집중한다면 느껴볼 수 있다. 나아가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단식 이후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놀랍도록 평온해지고 감사해진다. <문숙의 자연식>이라는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한다.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것 자체가 움직이는 명상이다. 이때 음식을 만드는 마음이나 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음식 앞에서 일어나는 오관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먹는 것을 연습한다. 순수한 느낌을 통해 음식에 집착하려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가운데 자연스레 욕구가 가라앉고, 먹는다는 것이 다른 생명체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성스러운 의식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들의 몸이 나의 몸이며 나의 몸 또한 그들의 것이다. 그들이 내뱉은 숨을 내가 들이쉬고 내가 내쉬는 숨을 그들이 들이쉰다. 오늘은 내가 그들의 몸을 들이키지만, 내일은 그들이 내 몸을 들이킬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이며 모두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 있다. -<문숙의 자연식> 문숙, 샨티 (2015)
단식할 때마다 생긴 여유 시간에 그동안 생각만 해오던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충분한 삶에서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던 일, 바로 옷 반듯하고 깨끗하게 다려 입기다.
가격과 성능이 적당한 스탠드형 스팀다리미를 구입했다. 그동안은 세탁기에서 꺼내 툭 털어서 널면 잘 펴지는 옷들 위주로 입어왔는데, 좋아하는 셔츠, 마 원피스, 구김이 가던 옷들을 스팀을 쐬며 정성 들여 다려보았다. 옷들은 옷감의 결과 실루엣이 제대로 살아나는 듯 보였다. 다림질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오롯이 명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이틀을 다려 입으니 이젠 다림질된 옷만 입고 싶어졌다. 늘 생각만 하던 일이었는데, 시간이 없다던 핑계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옷에 대한 고마움, 깨끗한 옷차림이 주는 편안함과 맵시를 얻게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간헐적 단식으로 24시간이 생긴다면, 내가 다림질을 시도해 보듯 누구든 자신이 평소 하고 싶던 한 두 가지의 일을 충분히 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명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건강하다는 음식을 잘 챙겨 먹으려고 애써왔다. 틈날 때마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이번 단식은 특히 지금껏 몸에 좋다고 생각해서 해온 모든 일들이 하나로 완전히 통합되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몸에 좋은 걸 찾아 더 먹고, 더 하고, 더 챙긴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지금, 어쩌면 우리의 문제는 너무 많은 좋은 것들 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나친 것들을 빼고, 배제하고, (필요하다면) 포기하는 것이 내 삶을 더 나답게 만들어줄 수 있는 솔루션일 수 있다.
첫 단식하는 동안 차를 마셨다. 처음으로 차를 마시는 것처럼, 진하고 향긋한 차에 취하는 듯했다. 차를 통해 전해지는 태양의 에너지, 비와 바람의 에너지, 차를 덕은 이들과 다기를 만든 이들의 에너지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함께 들은 음악에서도 활기찬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늘 곁에 있었는데, 나는 과한 음식을 먹고 준비하고 정리하고 소화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쓰느라 허덕이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채우는데 에너지를 쓰느라 주변의 곱고 감사하고 아름다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단 사실도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숨을 들이쉬는 동안 코를 통해 들어온 대지의 에너지가 내 몸을 가득 채운다.
숨을 내쉬는 동안 코를 통해 내 안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정수리를 통해 환하고 강열한 우주의 에너지가 들어온다.
순수한 상태의 나는 우주 에너지가 통과하고 흘러 다니는 귀한 통로이다.
사랑의 에너지를 세상의 생명들과 주고받기 위해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오늘 뽑은 타로카드는 내게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일러준다.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