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한 우쿨마실 수업의 첫 곡은 오지은의 '작은 자유'다. '홍대 마녀'라고 불린다는,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르는 이 없다는 가수라는데 나는 잘 몰랐다. 작은 자유는 단순한 코드와 리듬이 반복되는 노래다. 처음이라 낯설었고, 단순한 반복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지은의 독특한 음색과 가사가 조금씩 귀에 들어왔을 뿐.
한 번, 두 번 계속 듣는다. 우쿨로 천천히 연주도 해본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도 나눈다.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얼굴은 모른다 하여도' '행복하길'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달걀을 쥐듯 동그랗게 오므린 손 안에 자유가 들어 있다면,
그래서 작은 자유겠지만,
작아도 괜찮다.
충분할 것 같다.
고 작은 자유가 내 손 안에
작은 조약돌처럼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동글동글 돌리면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것보다 더 큰 자유를 가질 수 있건만
가지지 않는 사람들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얼굴은 몰라도 그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특히 아이들은 더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노래 '작은 자유'의 가사를 계속 동글동글 굴리다 보니 이 그림책이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단색 면지가 아니라 갈색, 붉은색, 황토색, 초록색 등의 색줄이 가로로 죽죽 간 면지이다. 사막에 부는 모래 바람과 거기서 뜨고 지는 해의 붉은 기운을 머금은 것 같은, 척박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이 드는 면지이다.
구성은 단순하다.
두 페이지에 걸쳐 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방에서 라면을 먹는 아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아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아이, TV를 보는 아이 그런데 이런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짓는 아이, 물을 긷는 아이, 동생을 돌보는 아이, 꽃을 파는 아이도 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지만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한 아이는 쓰러져 있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 그 아이는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 왜?
그 때,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라면을 먹는 내 방에도 불어 왔다.
바람이 불었다.
이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강하고 뭉클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어떤 이는 상황을 너무 낭만적으로 다루었다고(바람 때문에?) 비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너무 특정 나라, 지역을 연상시켜서 불편하다고 하기도 한다. 한 나라 안에도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 많다며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간결해서 좋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주저리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여 주는 책.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다 읽고 나면 잠시 침묵하고 고요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 나는 이 책이 주는 고요함과 여운이 좋다.
세계의 정치나 뉴스에 그렇게 민감하진 못한 편이다. 그런데 '작은 자유'로 티벳분리독립운동을 찾아 보았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더욱 격렬하게 벌어진 2008년 독립 운동을 보고 오지은은 노래 '작은 자유'를 만들었다. 작은 자유를 자꾸 듣다 보니 가사도 의미도 리듬도 목소리도 좋아진다. 그리고 그림책 『내가 라면을 먹을 때』를 오랜만에 다시 오래 들여다보았다.
내가 꼭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작은 만남을 통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티벳독립을 위해 내가 직접 움직일 수는 없다 해도 가수는 노래를 만들어 그것을 알린다. 그림책 작가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그림책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두드린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이 두 개를 만난 나는 이렇게 글을 써 또 다른 이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작은 자유와
아이들이 행복할 것과
세상의 평화를.
사진: 아침
*『내가 라면을 먹을 때』하세가와 요시후미 지음, 장지현 옮김, 고래이야기
* <작은 자유> 오지은 작사 작곡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