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무게』
동네 책방에서 동화 읽는 모임을 몇 년 째 해오고 있다. 신뢰하는 기관 추천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이 책을 누가 선택하고 읽자고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냥’, ‘뭐’, ‘그다지’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감상이었던 것 같다. 사실 당시 나는 이현 작가의 책이 좀 밋밋하고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이기도 했다. 2017년 『푸른 사자 와니니』를 중간에 읽다 그만둔 기억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모임 이후 종종 생각이 났다. 책 표지 그림이, 악당의 무게라는 제목이. 그래서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눈물이 났다.
주인공 수용이가 악당을 맞닥뜨린 첫 만남부터 눈물이 났다.
들개!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배에는 빨간 스프레이 자국이 있는 몸집이 큰 개.
하지만
‘네 다리로 흙바닥을 굳게 딛고 서 있는’
‘컴퍼스로 그린 원처럼 좌우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 듯 안정된 자세’
‘검은 구슬 같은 두 눈동자’
‘아무런 표정도 없고 피도 눈물도 없이’
‘나를 똑바로 보고 있는’
들개 ‘악당’은 당당해서 멋졌다.
하지만 안쓰러웠다.
악당과 수용이 지키는 2미터 여의 거리가 있다. 다가가면 뒤로 물러나고 뒤로 물러나면 앞으로 다가오며 거리를 유지하는 수용과 악당은 그렇게 관계를 맺어갔다. 때론 물끄러미 서로를 응시하며 때론 먹이를 주며. 수용이 감기에 걸려 악당을 보러가지 못한 며칠, 악당은 정말 수용이를 보러 동네로 내려온 걸까? 악당의 컹컹 짖는 소리를 들은 듯도 한 밤, 수용이는 밤의 무서움을 떨쳐내며 편안히 다시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악당은 사람을 공격한 미친개, 빨리 잡아 죽여야 할 모두의 적이 되어 버렸다.
책을 읽으며 수용이가 도움을 청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청하듯 말을 꺼냈지만 ‘아빠는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말을 하고 방으로’ 향했다. 뜨끔했다. 어른들은 얼마나 쉽게, 얼마나 자주 이렇게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윽박지르는지. 나도 거기서 자유롭진 못하다. 경찰도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모두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국 수용은 친구 한주도 끌어들이기 싫어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결과는 악당의 죽음이었다.
수용은 수도 없이 되 뇌일 것이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일 내가 그랬다면’ 하고 말이다. 몸이 축 늘어진, 뼈와 살이 있는 생명의 무게와 가루가 된 악당의 무게, 그 무게의 차이를 온 몸으로 느낀 수용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베치 바이어스의 장편 동화 『검은 여우』를 좋아한다. 『악당의 무게』는 동물과 아이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라 반가웠다. 반려견, 동물보호, 생태계보전 등 동물과 자연을 다룬 동화는 많지만 『악당의 무게』는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섣불리 동물의 마음을 짐작하거나 환상으로 넘어가지 않으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들과 우리에게는 서로의 영역과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고, 그러므로 그것을 서로 존중하자고 이야기한다. 조금은 거칠게.
오윤화의 그림처럼 하늘로 간 악당이 봄 연둣빛 새싹이 돋은 숲 속에서, 인간이 배에 남긴 스프레이 자국을 지우고 ‘개’의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래본다.
* 『악당의 무게』이현 글, 오윤화 그림, 휴먼어린이
* 『검은 여우』베치 바이어스 글, 햇살과 나무꾼 옮김,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