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고개를 돌려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다. V자로 열을 지어 날아가고 있으니 철새인 듯싶다. 무릎을 굽혀 가슴께로 당기고 앉은 자세, 골몰히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고요히 안으로 침잠하고 싶을 때 자주 하는 자세다. 편안하고 좋다.
옆에 한 아이가 있다.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었다. 여자 아이인지 남자 아이인지 잘 모르겠는데 옆으로 땋은 머리가 내려와 있으니 여자아이인 것 같다. 헌데 뭐, 별로 중요하지 않다. 계절은 가을쯤일까?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일까? 머리칼을 부드럽게 흩날리는 바람, 길게 누운 옅은 그림자, 고요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남자는 무슨 생각에 빠져 있을까?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여러 그림책 중 나는 이 그림 때문에 이 책이 좋다. 『나그네의 선물』은 알스버그의 다른 이야기에 비하면 정적이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해가 길게 누운, 누렇거나 옅은 주황빛으로 물든 나무와 너른 들판이 자주 반복되는 그림 또한 ‘흑백의 양감’과 ‘클로즈업’이라는 알스버그 그림의 특성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색 톤은 60년대 달력 그림처럼 투박하고 조금 칙칙하다. 인물들도 예쁘지 않고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한 곳에 고요히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미풍의 감촉을 느끼며 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는 시간을 보여주는 이 그림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면 남자와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엉덩이를 툭툭 털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발걸음은 이전의 발걸음과는 다를 것이다. 특별히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 조금 전까지 어깨를 짓누르고 머리를 아프게 하던 복잡한 문제는 조금 멀어졌다. 물론 내일이면 다시 부딪혀 해결해야 할지 모르지만 이런 ‘조금의 시간’이야말로 일상으로 다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준다.
책 속 그림
한 남자가 차에 치었다. 사슴같은 사람이었다. 말도 못하고 갈 곳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교통사고 후 돌봐준 가족과 함께 지낸다. 농사 일을 돕고 식사도 같이 하며 하루 하루 즐겁게 보낸다. 모든 게 어리숙하고 어설펐지만 동물과는 친구처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는 뭔가 이상한 걸 느낀다. 저 먼 풍경은 가을이 깊어졌는데, 남자가 있는 곳은 가을이 오지 않았다. 계속 여름이었다. 아! 남자는 무언가를 깨닫고 다음날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그 후 그곳에도 가을이 왔다. 남자는 누구였을까?
알스버그의 이야기는 대개 이렇다. 주인공은 현실에서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고 잠시 환상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 환상의 세계라는 것은 단순히 꿈도 아니고 정말 상상도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일인 것 같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 꿈, 상상이지? 책장을 덮으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이거 뭐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이야기가 온통 거짓말 같기도 하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라고 물으며 현실과 환상을 구분 짓고 뭔가 납득할 수 있는 단서를 찾거나 이해를 하려 애쓰는 순간, 우리는 알스버그의 그림책에서 저만치 밀려난다. 그냥 딱 거기까지!
오묘한 기분을 느끼는 것, 굳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가 잠시 미지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작은 틈을 만나는 것, 그것이 알스버그의 그림책이 우리에게 주는 꿈이며 재미며 힘이다. ‘환상’ 그것은 ‘누군가에게는(지난한 삶을 이어갈 힘을 주는) 선물’일 수 있다.
“내 그림이 아주 사실적이라고요? 그건 내 이야기가 주로 판타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스토리가 어쩐지 이상하고 믿을 수 없다 싶을 때,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면 그림이라도 실제처럼 보여야지요. 그래서 실제 인물을 캐릭터로 쓰기도 하고, 원근법이나 명암을 지킨답니다. 환상을 믿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논리의 실패로 비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선물입니다.” - 알스버그의 공식 홈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