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 났는데 눈물이 살짝 핑 돌기도 하고 가슴 한 편이 조금 아리면서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같았다. ‘어? 어... 이거 뭐지?’
이야기는 평범하다. 리키네 집 앞 목초지에는 아주 나이가 많은 느릅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무는 죽었는지 더 이상 잎을 피우지 않는다. 썩은 큰 가지들이 툭툭 떨어져 물건에 피해를 입히고 사람들도 위험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베기로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 무리에 끼길 원했던 리키는 한 무리 아이들에게 나무 베는 작업이 있다고 알리고 점심시간에 같이 보러 간다. 일꾼들은 마지막 단계 일만 남기고 잠시 쉬러 갔고 리키와 아이들은 나무에 매어져 있는 밧줄을 본다. 그것만 잡아당기면 나무가 쓰러질 것 같은 밧줄, 아이들은 설마설마 하면서도 밧줄을 잡아당겨 본다. 그랬더니 정말 느릅나무가 믿을 수 없이 큰 소리를 내며 천천히 쓰러져 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달아나고 리키도 무작정 뛰었다. 넘어지면서도 뛰고 또 뛰어 집에 와 오후 수업은 가지도 못하고 침대에 뻗어 버렸다.
다음날 학교에 간 리키는 자기가 아이들 무리에 끼게 되었음을 알고 그 아이들과 같이 다시 나무를 보러 간다. 무리 이름이 ‘지옥의 벌채꾼’인 아이들은 승리자가 된 듯 쓰러진 나무를 오르내리며 신나게 논다. 리키는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흐뭇했고 기분도 좋았다.
책 속 그림
그런데 저녁 때 집에 돌아와 방에서 창밖을 바라본 리키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느릅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외양간이 한 눈에 보이는 것을 알게 된 것. 항상 보던 풍경이 변했다. 느릅나무는 오랜 시간 그렇게 외양간과 리키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나무가 한 순간에 없어졌다. 왠지 모르지만 리키는 눈물이 났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잠을 깨고, 까닭 모를 슬픔을 느끼며 다시 잠이 든다.
이 짧은 단편에는 어떤 스펙타클한 갈등이나 사건이 없다. 목초지의 죽은 나무를 베는 일, 아이들 무리에 끼려 노력하는 아이,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한 번 쯤은 할법한 장난 등 주변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이것을 이야기로 쓸 만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이야기 안에서 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장황한 설명 없이, 툭툭 이어지는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가슴 깊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무가 정말 쓰러졌을 때 리키는 뭔지 말로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무에게 무언가 큰 잘못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잎을 피우지 않으니 죽은 것 같지만 그래도 생명이 있었을 나무를 자기가 밧줄을 당겨 쓰러뜨렸다. 쓰러지는 장면, 엄청나게 큰 소리, 그 후 변한 풍경. 항상 거기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던 것이 사라진 풍경은 낯설고 휑하다. 그리고 마음도 허하다.
작가는 리키가 느끼는 감정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꼭 찍어 이야기해 주지도 않는다. 아이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하지만 말로 표현 못한다 해서 감정이 안드는 건 아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필리파 피어스는 독자들이 그냥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정말로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따라 읽는데 어떤 감정이 아주 조금씩 서서히 차오른다. 신기한 경험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일 뿐인데 가끔 어떤 특별한 순간이 반짝일 때가 있다. 그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경험에서 오는 감각이다. 그런 반짝임이 있는 일상은 특별하고, 하루 하루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조금은 살 만한 세상일테다. 아이들은 아직 섬세하고 다양한 언어로 다 표현할 순 없지만 누구보다 감각적이고 본능적으로 안다. 일상에 흐르는 사랑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그것들의 반짝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