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놀이가 뭐에요?
아이 둘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엘 다녔습니다. 4살 때 성미산을 오르다 작은 바위가 나오면 아이는 그 위에 올라서서 ‘고추장 먹고 힘내라!’ 라고 말하고 모둠발로 뛰어 내렸습니다. 고추장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넣어 말하기도 합니다. 말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에 힘을 얻어 두 발을 모으고 무릎을 구부려 끙차 뛰어내리는 겁니다. 말의 힘입니다. 그리고 옆에는 한 손을 잡아 주고 있는, 혹 넘어지면 자신을 일으켜 줄 누군가가 있습니다. 조그만 아이의 마음이 든든함을 얻고 뿌듯해집니다. 이렇게 어린이집을 다니며 아이들이 귀로 들려주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에 아마를 가면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낮잠을 재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전 꼭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분자분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스르륵 잠들어야 하는데, 책을 읽으려면 조그만 불빛이라도 있어야 하니 아마 재우는 내내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은 그 탓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저는 두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내내 책읽기로 버텼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놀이를 하는 겁니다. 입 밖으로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낮 간지럽고 닭살 돋고 어색하고 별 재미도 감동도 못 느꼈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아? 그냥 어색하고 힘들어! 였지요. 신입 모둠 때 『가자가자 감나무』를 읽어도, 지회에 말놀이를 하는 분들이 계셔도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마포지회에서 2019년 회원교육으로 말놀이 워크샵 3회를 가진 후 말놀이가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놀이로 아이들을 만날 때, 말놀이 모둠에서 공부할 때, 지부에서 마련한 말놀이 워크샵에 참여할 때마다 말놀이가 성큼성큼 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글로 읽는 이야기의 세상이 아니라 귀로 듣고 말로 하는 또 다른 세상이 내 앞에 펼쳐졌습니다.
2. 그림을 그리다.
별 하나 뚝 따 행주로 닦아서 망태에 넣어서 동문에 걸고
별 하나 뚝 따 행주로 닦아서 망태에 넣어서 서문에 걸고
별 하나 뚝 따 행주로 닦아서 망태에 넣어서 남문에 걸고
별 하나 뚝 따 행주로 닦아서 망태에 넣어서 북문에 걸고
말놀이를 오래 하진 않았고 그리고 매번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말놀이가 신비한 경험을 선사할 때가 있습니다. 잔상이 오래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느낌을 잘 붙잡고 동글동글 머리나 입으로 굴려 봅니다. 처음에 저에게 말놀이는 그림이었습니다. 말놀이를 하다 보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고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별 하나 뚝 따 행주로 닦아서 망태에 담아서 동문에 걸고’ 아이 목에 걸고, 내 목에 걸고, 천장에 걸고, 창문에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집 거실이 어느새 반짝 반짝 빛나는 별이 하늘하늘 매달린 곳으로 변했습니다. 눈이 부시게 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아이를 안고 이 별 노래를 불렀습니다. 황홀하고 따뜻했습니다.
반듸불 -윤동주-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으려
숲으로 가자
그믐밤 반듸불은
부서진 달쪼각
가자 가자 가자
숲으로 가자
달쪼각을 주흐려
숲으로 가자
윤동주의 <반듸불>을 지회원들과 함께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외웁니다. 눈이 저절로 감깁니다. 눈앞에 울창하고 어두컴컴한 숲이 펼쳐집니다. 회원들과 손을 잡고 숲속을 거닐며, 희미하지만 바안짝 바안짝 빛나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조그만 달 조각을 주우러 걸음을 옮깁니다. 바스락 바스락 나뭇잎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손을 잡고, 까르르 웃기도 하면서 밤 숲속을 거니니 기분이 청량하고 좋았습니다. 청명한 밤 숲 속에 내가 그리고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3. 말의 아름다움
저 달이 둥둥
산 너머 온다
앞 산 위로
달맞이 가자
저 달이 둥둥
물속에 잠겼네
뒷 강물 속으로
달맞이 가자
‘둥둥’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두우웅 소리 내 봅니다. 입안에서 맴도는 공기가 진동하고 펴져 가슴까지 울립니다. 몸통을 소리통으로 해서 ‘둥’이라는 소리가 입으로 울려 나옵니다. 둥글둥글 포근하고 따뜻하게 주변을 감싸는 소리입니다. 대학교 때 풍물패를 하였습니다. 들어가 처음으로 북을 배웠습니다. 앞 뒤 가죽으로 막힌 둥그런 판을 그냥 막대로 치면 되니 가장 쉬워 보일 법도 합니다. 하지만 북을 잘 치는 건, 북 소리를 제대로 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상북을 치는 선배가 제대로 내는 북소리는 어찌나 멋지던지! 멀리까지 울리고 퍼져 나가는 북소리는 공기의 진동을 타고 심장을 울립니다. 그래서 ‘둥 두둥 둥 두둥’ 북소리를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라고 한다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전율이고 감동이었습니다. ‘동’도 아니고 ‘덩’도 아닌 ‘둥’과 함께 만난 달맞이 말놀이로 몸을 통과해 나와 울리고 퍼져 다른 이의 마음에 가 닿는 ‘둥’을 다시 만났습니다. 말과 소리의 아름다움과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