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우 Oct 15. 2023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나를 ㅠㅠㅛㅛ하게 하는 것들 - 쓴다는 것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편지를 쓰기 전 나는 당신의 호칭을 어떡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 앞으로 쓰는 편지에서 당신을 그저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부른다면 너무 사무적이거나 심지어 무례하게까지 느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씨 혹은 도스토예프스키 선생도 여전히 지나치게 딱딱한 감이 없잖아 있고, 표도르나 페쟈 정도의 호칭을 쓰자니 우리 사이가 그리 막역하지는 못하지요.

  러시아인의 언어생활은 이럴 때 편리합니다. 개인을 그 사람의 성씨로 함몰시키지 않음으로써 얼마간의 사사로움을 유지하면서도 이름 뒤에 부칭을 첨가함으로써 점잖은 거리감 또한 나타낼 수 있다니요.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당신이 러시아인인 것이 다행입니다.

  다만,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나는 당신의 호칭 앞에 “친애하는 나의”라는 단서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친애한다는 말에 더해, 일차적으로는 이 편지의 수신인인 당신을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로 한정하고 싶어서입니다.

  참으로 그러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푸슈킨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더 자연스러운 어순은 ‘я[나는] любил[사랑했소] вас[당신을]’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я вас любил”이라 쓰기를 고집했던 까닭은, 사랑한다는 말조차 자신과 그이 사이를 가로막길 원치 않았던 까닭이라고요.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당신이 나에 대해 어찌 생각하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신의 글에 대한 흠모 외에도 내게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사인에 대한 애정이 제법 있습니다. 사실 내 방에는 당신의 초상이 한 장 있는데, 당신이 살았고 임종했던 그 집, 센나야 광장이 가까운 쿠즈녜츠키 골목 5번지에서 가져온 것이지요…

  순간 나는 구력 1880년 6월 8일, 푸슈킨 동상의 제막식에서 당신이 행한 연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러시아인의 운명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유럽적이며 전세계적이다. 진정한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 전적으로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종국에 이를 역설할지어다) 전인류의 형제가 된다는 것, 말하자면 전인全人[всечеловек]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1)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리둥절하실 수도 있겠군요.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지는 않으시겠으나 당신에게 더 익숙할 지명은 소러시아일 테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라니,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려우실 것도 같습니다.

  당신의 표현을 빌려 짧게 말씀드리자면, 역사의 한 단계에서 “니힐리스트”들이 승리했다고 해둡시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에서 차르는 사라지고 아메리카에서와 같이 대통령이 국가의 수반이 되었으며, 소러시아는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의 사람들이 말하는 ‘러시아’는 당신이 살던 시대의 대러시아만을 말합니다. 대개는 그렇습니다.

  개전 소식이 들려온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모 일간지 국제부 기자의 기사 작성을 도운 바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의 연설을 다루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밝힌 연설이었지요. 안타깝게도 기자는 러시아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부탁을 받고 연설문의 번역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를 해주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기자 본인에게 들은바, 부장이 내 이름을 감수자로 기사에 명시하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내게 “타이틀”이 없다는 이유에서라나요. 내가 기자에게 해준 부가 설명의 내용과 “타이틀”이 있는 다른 감수자의 이름은 기사에 잘 들어갔고요. 당신이 쓴 『죽음의 집의 기록』에 등장하는 죄수들이라면 이런 상황에 적합한 멋들어진 욕설 몇 마디를 알려줄 수 있었을 텐데, 19세기 풍의 상스러운 러시아어 표현에 내가 취약하다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А впрочем, черт с ним!..” 2))

  이러한 경과로 읽게 된 푸틴의 연설문을 보며, 나는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러시아의 raison d'état라고 할까요, 아니면 더 거창하게는 Weltgeist라고 할까요──각각 한국어로 국가이성, 세계정신이라는 점을 모르지는 않으나, 당신을 따라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섞어 쓰니 나름의 재미가 있군요──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아무튼 나는 이 모든 사태에 당신이 관찰하고 피력했던 모종의 정신이 내재해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현대 러시아의 주요한 정치적 이론가이자 철학자인 두긴은 러시아의 확장적 행보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제민족 보편의 “유라시아 문명”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문명”이 보편성을 지녔다는 주장의 연원을 당신으로부터 찾습니다. “유럽에서 우리는 타타르인이었으나, 아시아에서 우리는 유럽인이다.” 3) 당신의 말이니 기억하시지요? 당신이 말하는 “우리”는 러시아, 혹은 러시아인을 뜻하지요. 두긴에게는 유럽인이자 아시아인인 ‘우리’ 러시아인이야말로 세계를 포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 곧 “전인”입니다. 4) 이는 언어와 종교 등 대러시아와 소러시아의 공통분모로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일치를 피력하는 푸틴의 시선 5) 과 일정 부분 일맥상통한다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예언한 바는 “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재통합을 향한 형제애와 우리의 형제적 염원의 힘”으로 이루어지리라고 첨언했던,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당신으로서는 내가 당신의 지론을 두긴이나 푸틴의 정견과 관련짓는 일이 불쾌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문장에서 당신은 “우리의 운명은 보편성[всемирность]” 6) 이라고도 단언했습니다. 일단은 보편성이라고 새깁니다만, все-мир-ность란 전-세계-성으로 이해되지 않습니까? 비록 그 수단에 있어서는 저들과 입장이 상이할 수 있겠으나, 전세계로 확장되는 보편 제국, 그것이 곧 러시아의 운명이라는 견해를 당신도 힘주어 외쳤던 것 아닙니까? 하여 내가 “전인”이라 옮긴 “всечеловек”, 즉 전적-인간[все-человек], 달리 말해 완전한 인간이란 곧 전적인 러시아인과 동치가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나는 당신에게 편지 쓰는 일을 멈추고 얼마간 당신의 책을 읽다가 돌아왔습니다. 『악령』 말입니다. 마리야 치모페예브나가 성모를 일컬어 “축축한 대지의 위대한 어머니" 7) 라고 부르는 유명한 장면부터 샤토프가 스타브로긴의 뺨을 후려치는 대목까지 읽었습니다. 참 흥미로운 소설인데, 『죄와 벌』만큼 널리 읽히지 않는 까닭은 등장인물이 더 많고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 어렵기 때문일까요?…

  Passons! (당신이 창조한, 스체판 트로피모비치의 말버릇이지요?) 앞에서 전쟁이나 정치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내가 당신과 논하고자 하는 바는, 작가라는 것에 관해서입니다.

  2021년 11월 11일은──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당신의 생일은 어찌나 기억하기에 편한지요──당신이 태어난 지 정확히 20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한동안 닫혀 있었던 당신의 모스크바 생가는 극적이게도 바로 그날 재개장했는데, 첫 방문객은 푸틴과 러시아 문화부 장관이었습니다. 현장에서 푸틴은 당신이 푸슈킨에 관하여 남긴 연설을 인용했을 뿐 아니라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우리나라의 자유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라는 단평을 남겼다 8) 고 하더군요.

  정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 왜 다시금 푸틴을 거론하느냐고 당신은 묻고 싶을 수 있겠습니다. 진실로 나는 당신과 정치 그 자체를 논할 의사가 없습니다. 이는 당신의 영향력을 드러내기 위한 예화일 뿐입니다.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당신의 반감을 푸틴이 들어 말한 것은 현대 러시아의 정치지형 내에서 당신으로부터 파급되는 권위를 자신에게 결부하려는 시도이겠습니다만, 여기에서 방증되는 것은 당신의 위대함일 따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어쨌든 푸틴은 일국의 대통령이며, 그것도 구 러시아 제국의 차르와 비견될 수 있는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입니다. 그런 자마저 탄생일에 일정을 맞춰 생가로 걸음하도록 하고, 그것으로부터 제 권위의 원천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작가의 이름입니다.

  당신의 장편소설들을 읽어본 적 없거나 읽어도 왜 위대한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조차 그들이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쯤은 대체로 잘 압니다. (당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일부 인사들을 제하면 다소 예외적으로, 나보코프가 어디선가 당신의 장편소설에 관해 신랄한 평가를 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러시아 문학 강의』일 듯하긴 하나 정확한 출전을 확인하지 못하겠군요. 그가 쓴 『롤리타』에는 러시아에서 차르 제정이 무너진 후 아메리카로 도망쳐 택시 기사가 된 어느 백작이 짧게 등장합니다. 나보코프에게는 미안하지만, 왠지 발기부전을 연상케 하는 망명객의 뒤틀린 공격성이라고 할까, 아마 당신에 대한 그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은 대목일 겁니다. Oh, fire of his loins!) 그러니 당신의 장편소설에 관한 말은 길게 늘어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제야 밝히지만 이 글은 지면에 발행되는 공개 서한이기도 하고, 분량을 한정할 필요가 어느 정도 있거든요. 뒤늦게 말씀드려 죄송하긴 하나, 이 편지가 공개되어 부끄러울 일이 있다면 그것은 죽은 당신이 아니라 산 나의 몫이니 양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의 장편소설들은 장대하고 심원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와 영원, 죄악과 구원, 민족과 종교, 러시아와 세계, 인간과 신… 근원적인 대립항들의 일그러진 대위법이지요(사족이지만, 그로스만이나 바흐친을 운운할 것도 없이 당신의 글이 그로테스크하다는 점에는 누구든 동의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바로크’와 연결하는 언설은 유라시아적 현상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를 서구의 정전 내로 포획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음험한 시도가 아닌가──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 내 흥미를 끄는 것은 당신이 연재한 『작가 일기』입니다.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당신은 이미 내가 여러 차례 인용한 연설문을 『작가 일기』에 수록했습니다. “유럽에서 우리는 타타르인이었으나, 아시아에서 우리는 유럽인이다.”라는 문제적 문장도 당신이 타계하기 전 발간한 『작가 일기』 최후의 권호에서 출현하지요. 게다가 여기에는 「우스운 사람의 꿈」과 같은 단편이 실린 적도 있습니다.

  어떤 견지에서 당신이 『작가 일기』 연재 중 썼던 다수의 정치적 시론 등은 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 없는, 일종의 잡문입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그렇듯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이를 “작가 일기Дневник писателя”라는 이름 아래 묶었다는 점에 나는 주목하고자 합니다.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혹시 당신은 어느 정도 (당신이 그에게서 돈을 빌린 바 있고, 채무 관계가 없었더라도 성격상 쉬이 어울릴 수 있었을 것 같지 않은) 투르게네프의 「잉여인간 일기Дневник лишнего человека」를 의식했던 것이 아닙니까? 당신도 잘 아시겠다시피 이 투르게네프의 단편은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치세 이래 존재했던, 러시아의 사회적이고 문학적인 한 전형에 “잉여인간”이라는 이름을 선사했지요.

  당신으로서는 잉여인간들을 산출했던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위한 대안으로 칼라일식의 영웅, 혹은 “위대한 인간Great Man” 9) 을 호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소설 도처에서 불현듯 엄습하는 나폴레옹의 형상만 보더라도 명백하지요. (결례일지 모르겠으나, 비단 당신이 아니더라도 나폴레옹이란 이름은 19세기 러시아인들이 품었던 집단 트라우마이자 스톡홀름 증후군의 부호 같더군요…) 그렇다고 당신이 잉여인간을 긍정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과도한 의미 부여일 가능성을 감수해야 할지라도,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혐의를 제기해볼까 합니다.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당신은 ‘잉여인간의 일기’의 대척점에 있는 ‘작가의 일기’, 다시 말해 ‘쓰는 인간писать-тель’의 일지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을 품었던 것 아닙니까? 구태여 “은밀한 욕망”이라 적는 것은, 당신의 아내이자 당신의 말년에는 당신이 쓴 글들의 출판과 유통을 사실상 총괄했던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회고록에서도 내 논지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한 까닭입니다──기실 이는 제 수사적 질문이 근거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는 자기 고백이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정황 증거는 있습니다. 당신과 비슷한 시대의 러시아인들이 ‘작가писатель’라는 말을 어찌 인식했는지 살피면 되니까요. “이에 있어 대중은 옳다: 그들은 러시아의 작가들을[в русских писателях] 자신의 유일한 지도자이자 보호자이며 구원자로 본다[…]” 10) 벨린스키가 구력 1847년 7월 15일에 고골 앞으로 보낸 서한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가 이 편지를 썼을 때 당신은 겨우 25세였고 《페테르부르크 연감》의 지면에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페테르부르크 연감》의 편집장이자 발행인이었던 네크라소프가 「가난한 사람들」의 수고를 다름 아닌 벨린스키에게 건네주며, “새로운 고골이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11) 는 것은 이미 하나의 전설이 되지 않았습니까…     


*     


  예상보다 편지는 길어지고, 나는 그새 『악령』을 더 읽었습니다. 이제 스타브로긴이 비르긴스키의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악령』이 당신의 고골에 대한 오마주라는 시선 12) 은 굉장히 설득력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로 ‘고골레스크’한 작품입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과 고골은 벨린스키와 같은, 러시아판 ‘586 선배들’──당신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나 나로서는 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겠습니다──에 의해 발탁되었지만 정치적으로나 문예론적으로나 그들의 ‘사회적’ 기대를 걷어차 버렸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두 분 다.

  그러나 당신은 벨린스키, 네크라소프, 또는 게르첸 등의 부류와 여전히 교집합을 유지합니다. 당신은 이런 식의 표현을 반기지 않을 것 같지만, 거대담론을 다루는 문학에 대한 욕망이 그것입니다. 민족을 다루겠다는 욕망, 인간을 다루겠다는 욕망, 세계를 다루겠다는 욕망, 신을 다루겠다는 욕망… 당신의 장편소설들은 이렇듯 거창한 욕망들로 들끓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당신을 위대한 작가라고 부르는 이유이며, 이 위대함은 당신이 내놓은 『작가 일기』에서도 선연합니다.

  당신의 시각이 옳았는지는 사소한 문제입니다. 최소한 당신을 논할 때만은 예컨대 푸틴 따위가 옳은지도 내 알 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태어난 지 200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러시아가, 세계가 당신을 호출할 수 있고 또 호출한다는 점, 당신의 욕망으로부터 연원하는 이 호출에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문학에 투신한 인간들 가운데 위대하다고 일컬을 수 있을 당신 사후의 인물로는 일단 단눈치오가 떠오르는군요. 혹은 1942년 일본에서 《문학계》의 주최로 열린 좌담회에서 “근대의 초극” 13) 을 논하던 이들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비록 단눈치오의 시들을 당신의 소설들과 비교하기가 쉽지 않긴 하더라도) 단눈치오의 문학적 성과는 당신에 비해 떨어지는 듯하고, 심연에 대한 그의 번뜩이는 감각은 좋지만 그것이 곧 심원한 정신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또 니체의 직관과 통하는 바가 있는, 근대와 그 이후에 대한 당신의 세계사적 예견 앞에서 소위 《문학계》 그룹이나 교토학파, 일본낭만파 등은 모자란 친구들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군부가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서 어떠한 의미를 발견했을 뿐이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의 축에서도 그 인식이 뒤떨어졌고 사유의 깊이에 있어서도 덜떨어진, 서구에 대한 열등감이 추동했던 자들입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인도의 영향을 배제한 동북아의 지적 전통하에서 과연 추상적 사유가 가능한지에 대하여 의문이 있습니다. 똑똑해 봤자 혜강이나 루쉰 수준이겠지요. 이건 제 얼굴에 침 뱉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것을 어떡합니까…)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단눈치오와 근대초극론자는 차치하고 한국 문학은 더더욱 모르시겠지요? 춘원 이광수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당신과 비교하자면 시시한 작가입니다(그의 탓만은 아니고 환경의 탓도 있겠지요).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그의 고민이나 욕망, 그리고 그의 글을 좋아합니다. 「방황」이나 「소년의 비애」 같은 그의 초기작들이 충분한 문학사적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도 하고요. 실상 춘원이 없었더라면 문어로서의 한국어는 지금과 같지 못했을 것이므로, 당신에게 쓰는 이 서한도 굉장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춘원의 시대에 한국(더 일반적으로 쓰이던 표현은 조선)은 일본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독립운동세력과 관계하며 상하이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사장을 맡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춘원은 식민지 조선으로 귀국하여 「민족개조론」을 발표합니다. 한국사에서 악명 높은 글입니다.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조선에서는 대대적인 독립운동이 발생했는데, 이에 관해 그는 “再昨年 三月一日 以後로 우리의 精神의 變化는 무섭게, 急激하게 되었습니다. […] 無知蒙昧한 野蠻人種이 自覺없이 推移하여 가는 變化와 같은 變化이외다”라고 평가하니 말입니다.

  춘원은 같은 글에서 “朝鮮民族은 너무나 뒤떨어졌고, 너무도 疲弊하여 남들이 하는 方法만으로 남들을 따라 가기가 어려운 處地에 있으니 […] 이것을 救濟할 길이 무엇인가. 오직 民族改造가 있을 뿐” 14) 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판단은 추가로 내리려 하지 않겠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그의 「민족개조론」 본문의 상당 부분은 너무나 순진한 분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더 쓰기에는 나의 지력과 지면이 아깝습니다.

  다만 나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내 시대의 한국에서 춘원 이광수와 같은 작가라도 출현할 수 있을까요? 어느 작가가 있어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는 글을 쓴다면, 그것이 발표될 권위 있는 지면을 얻을 수 있을까요? 발표된다면, 조소나 격분과 같은 정념 외에 진지한 고찰로써 그것을 대해줄 독자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애초에 고작 민족 개조와 같은 규모의──제게는 한국이라는 국가, 한민족이라는 민족조차 더는 거대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습니다──사유나마 가능한 작가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런 작가가 존재할 수 없다면, 나머지 ‘작가’들의 ‘문학’은 도대체 어찌 돼먹은 ‘문학’일까요?…

  혹자는 벨린스키 등이 언급하는 작가들의 출현이 19세기 러시아나 일제 치하 한국과 같은, 시민사회와 공론장이 미발달한 사회에서 문학에 과잉된 권위가 부여되는 기형적 현상이라고 치부할 것입니다. 가능한 해석입니다만, 현대 한국의 시민사회, 그 공론장 내부에서 얼마나 고상하고 이지적인 논의가 오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민사회라느니 공론장이라느니 하는 것이 있기라도 하다면 말이죠.) 사회가 발전함으로써──발전하긴 하는 걸까요?──그 발전에 따라 문학이 위대해지거나 시시해지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 사회의 문학이 너절해지기 전, 먼저 그 사회의 인간과 사유가 하찮아집니다.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서울에는 비가 내리는데, 나는 약간 울적해지고 말았습니다…     


*     


  서한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 앞으로 편지를 쓰는 동안 세 권의 책을 돌아가며 읽고 있었습니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이 서신에 인용한 다른 문헌들도 읽었다고는 해야 하겠습니다만.) 한 권은 앞서 밝혔듯 당신의 『악령』이고, 다른 두 권은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과 『형이상학』입니다. 마지막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한국어로 옮긴 판본인데, 곧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해를 영어-라틴어 대역본으로 읽어볼까 합니다.

  괴이한 조합의 독서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조합이 탄생하는 까닭을 당신은 요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당신이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어보진 못하셨겠지만요). 당신과 소화 데레사와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있는 것τὸ ὄν’에, 참된 존재에 이끌린 사람들이니까요. 특히 당신과 소화 데레사에게서 두드러지는 것은 진실로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경멸과 진실로 있는 것에 대한 사랑인데, 나는 당신들의 이 사랑에 에로틱함이 있다고 느낍니다. 통속적인 용례에서도 그러할 뿐 아니라, 그것은 존재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상승과 하강의 운동을 반복하다가 종국에는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돌파하는 에로스입니다.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궁극적으로 내가 편지로써 당신에게 묻고 싶었던 바는 아래와 같습니다.

  과연 나의 시대에도 작가는 위대해질 수 있겠습니까? 혹은, 참된 작가란 것이 존재 가능하겠습니까?

  당신은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으로부터 답을 받으려면 기나긴 세월이 지나야 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오늘날 작가가 위대해질 수 있을지, 작가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알지는 못해도, 어떤 믿음만은 지니고 있습니다.

  자서전을 보니 소화 데레사는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을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준주성범』은 나도 읽어 보았습니다만, 처음 볼 때는 그 지극히 엄격주의적인 어조에 짓눌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분은 토마스 아 켐피스가 남긴 몇 줄로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소화 데레사도 자서전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을 인용했더군요.

  당신은 소화 데레사가 채 열 살도 되기 전에 죽었고, 『준주성범』도 읽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만은 당신도 끄덕이며 좋아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 구절 안에 나의 모든 믿음이 있습니다. 고로 나의 편지는 하기 인용구로써 이만 줄입니다.

  친애하는 나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나를 지켜봐 주십시오. 그럼, 이만.     


*     


“Amor vult esse sursum, nec ullis infimis rebus retineri. Amor vult esse liber, et ab omni mundana affectione alienus […] Amans volat, currit, lætatur, liber est, et non tenetur. […] Amor […] de impossibilitate non causatur, quia cuncta sibi licere posse arbitratur.” 15)


사랑은 위로 오르고자 하기에 그 무엇에도 붙잡히지 않는다. 사랑은 자유롭고자 하기에 세상의 다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 […] 사랑하는 이는 날고, 뛰고, 기뻐하고, 자유로우며, 잡혀 있지 않다. […] 사랑은 […] 모든 것이 자신에게 허용된다고 믿기에, 불가능을 호소하지 않는다.     

     

당신의,

현우


작가의 말

  편지를 마친 후에야 생각이 났다. 단언하건대, 도스토예프스키 사후 가장 위대한 작가는 솔제니친이다. 그는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행한 연설 중 도스토예프스키를 언급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에 등장하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말에 대한 그의 해석과 그가 상정하는 진선미의 삼위일체 16) 와 관련하여 내게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솔제니친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오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나의 한계, 혹은 나와 두 사람의 분기점일 것이다. 우리 세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따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직관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Всё поджог! Это нигилизм! Если что пылает, то это нигилизм![모든 것이 방화다! 니힐리즘이다! 무언가 불탄다면, 그것은 니힐리즘이다!]” 17)


1) Фе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в пятнадцати томах,  «НАУКА», 1996, Т. 14, с. 439.

2) ibid., Т. 5, с. 43.

3) ibid., Т. 14, с. 509.

4) 이상 Александр Дугин, Четвертая политическая теория, 《Амфора》, 2009, с. 241 참조.

5) Владимир Путин, Об историческом единстве русских и украинцев, 2021.7.12. (http://kremlin.ru/events/president/news/66181, Получено 15 окт., 2023) 참조

6) 이상 Фе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op. cit., Т. 14, с. 439.

7) ibid., op. cit., Т. 7, с. 140.

8) 이상 Владимир Путин - об обвинениях Запада в причастности к миграционному кризису: Мы здесь совершенно ни при чем, 《Союзное Вече》 , 2021.11.15. (https://www.souzveche.ru/articles/politics/60248/, Получено 15 окт., 2023) 참조.

9) Thomas Carlyle, On Heroes, Hero-Worship & The Heroic in History: Six Lectures, James Fraser, 1841, p. 21.

10) Виссарион Белинский, Письмо к Гоголю, Н. В. Гоголь в русской критике: Сб. ст., Гос. издат. худож. лит., 1953, с. 249.

11) Юрий Манн, Гоголь. Книга 3 : Завершение пути. 1845—1852, РГГУ, 2013, с. 20.

12) Elizabeth Welt Trahan, The Possessed as Dostoevskij's Homage to Gogol': An Essay in Traditional Criticism, Russian Literature, Volume 39, Issue 3, North-Holland, 1996, pp. 397-418.

13) 河上徹太郎 外, 『近代の超克』, 冨山房百科文庫, 1979 참조.

14) 이상 이광수, 「민족개조론」 (https://ko.wikisource.org/wiki/%EB%AF%BC%EC%A1%B1%EA%B0%9C%EC%A1%B0%EB%A1%A0, 2023년 10월 15일 접속.)

15) Thomas à Kempis, De imitatione Christi, Lib. Ter. (https://www.thelatinlibrary.com/kempis/kempis3.shtml, Retrieved 15, Oct., 2023.)

16) 이상 Александр Солженицын, Нобелевская лекция 참조. (http://rushist.com/index.php/rus-literature/5611-solzhenitsyn-nobelevskaya-lektsiya-chitat-onlajn, Получено 15 окт., 2023)  

17) Фе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op. cit., Т. 7, с. 481.



이전 08화 빨간 네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