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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Sep 03. 2023

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코스모스> 1장


이제껏 나는 지구가 온 세상이라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밤하늘 별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은 해도 드넓은 우주를 연상하지는 않았어요. 거의 전적으로 지구 차원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왔죠. 아니, 더 좁은 차원이라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좁게는 서울, 좀 더 넓게는 한국, 좀 더 넓게는 타국 차원으로 생각이 넓어지기는 했어도 우주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코스모스>를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건, 아마도 이 좁은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상징적인 갑갑증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주적 관점에서 봤을 때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듯 우주의 주인공도 아니고 우주의 중심도 아닙니다. 칼 세이건의 말을 빌자면, 지구는 코스모스의 변방에 위치한 암석과 금석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바위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간신히 태양 빛을 반사하고 있기에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그 존재를 알아볼 수 없는 작고 부서지기 쉬운 청백색의 세계 말이지요.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의 지구와 인류가 아주 하찮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어요.


인류는 아직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해서
될 성싶은 떡잎 임에 틀림이 없는
특별한 생물 종이다.


1장의 내용은 크게 두 주제로 구성돼 있습니다.

- 우주에서 지구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주제부터 파악하자는 얘기지요.

- 인류가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건 아주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타고나기를 호기심 덩어리입니다!




코스모스는 너무 거대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길이 단위로는 가늠이 안 됩니다. 그래서 광분과 광년 같은 단위로 설명을 하는데, 광분이란 빛이 1초에 가는 대략 30만 킬로미터를 말하고, 광년은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말합니다. 태양은 지구에서 8 광분 거리에 있습니다.


코스모스는 광대하고 냉랭하며 텅 빈 암흑의 공간이라고 해요. 우리는 우주를 상상할 때, 아름다운 은하와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쉽게 떠올립니다. 하지만 코스모스는 아주 외로운 공간입니다. 코스모스에서 무작위로 한 구석을 찍을 때 행성이나 그 주변을 찍게 될 확률은 10의 33승, 즉 1 다음에 0이 33개 붙는 큰 수만큼 시도했을 때 1번 일어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그래서 우주에서 행성을 만나는 일은 ‘가슴 시리도록 귀하고 아름다운’ 사건인 것이지요.


우리의 지구는 코스모스의 변방에 있습니다. 우주의 중간쯤으로 알고 있는 곳은 성운들의 세계로, 지구에서 80억 광년(!) 떨어진 곳입니다. 성운이란 은하들이 집단을 이루며 한데 어우러져 있는 세계고, 은하는 기체와 티끌과 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십억 개에 이르는 별들이 무더기로 모여있습니다.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대략 1000억 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그러니 코스모스에서 태양은 아주 아주 평범한 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이 광대한 우주에 우리 같은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없으란 법이 있을까요? 칼 세이건이 다른 어떤 주제보다 먼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이 주제인 듯싶어요. 그는 우주가 ‘생명으로 넘쳐난다’는 가정에 열렬히 한 표를 던집니다. 그건 ‘아주 그럴듯한 가정‘이라고 말하면서요. 그리고 우주 탐험으로 그걸 알아내고 싶다!라는 것이 그의 꿈인 것 같습니다.


지구가 속한 은하수 이름을 아시나요? 저는 몰랐습니다. 몰라도 사는 데 큰 문제가 없었네요. 하여간 우리는 은하수 은하에 속해있습니다. 은하수 은하에는 다양한 성격의 별들이 4000억 개 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 많은 별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는 건, 마치 새떼가 서로 부딪힘 없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요. 이 많은 별들은 복잡하면서도 질서 정연하고 우아한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많은 별들 중에서 인류가 알고 있는 별은 아직까지는 태양 하나뿐입니다.


우리 지구가 속해있는 은하수 은하



스스로 빛을 내는 별, 즉 태양 같은 항성들은 여러 개의 행성들을 거느린 항성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항성계와 항성계 들은 서로 수 광년 거리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칼 세이건의 말대로, 항성계 하나하나는 우주의 ‘외딴섬’입니다. 우리의 태양계 안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은 아마도 지구가 유일하고요.




이제 코스모스의 변방, 하찮은 작은 행성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차원으로 내려올 차례입니다.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베타’라고 불린 한 인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베타는 영어로 치자면 B. 만년 2등이라는 뜻인데,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해요. 그의 이름은 에라토스테네스. 그는 나무 막대기 하나로 지구의 둘레를 거의 정확히 알아낸 인물입니다. 다들 중학교 과학시간에 그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예요.


그는 어느 날, 나일강 근처 시에네 지방에서는 6월 21일 정오에 수직 막대기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는 글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날은 깊은 우물 속에 태양이 비춰 보인다고도 적혀있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사는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똑같은 길이의 막대기를 수직으로 꽂아놓으면 그림자가 생겼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무 상관도 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그는 과학자였지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결과, 그는 지구가 곡면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기하학의 원리를 이용해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까지의 거리를 근거로 지구 전체의 둘레를 계산해 냈습니다!



에라토스테네스의 발견이 있은 뒤, 용감하고 대담한 선원들은 조막만 한 배로 대항해를 시도했고 드디어 마젤란이 지구를 일주해 내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뒤이어 지구 탐험 사업들이 왕성하게 이루어졌고 마침내는 콜럼버스가 미지의 서쪽 바다 즉 대서양으로 뛰어들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합니다. 콜럼버스의 첫 항해는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과 아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다고 해요. 그의 계산을 바탕으로 콜럼버스는 아무도 나설 생각을 하지 않던 대서양으로 뱃머리를 향했으니까요.


칼 세이건은 말합니다. “현대는 인간이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우주로 과감히 나아가 지구 이외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위대한 시대다…. 지구는 에라토스테네스가 예측한 규모와 모양 바로 그대로였으며, 대륙들의 윤곽선은 옛 지도 제작자들의 능력과 솜씨를 새삼스럽게 확인해 주었다. 에라토스테네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들이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면 모두 무릎을 치며 좋아하지 않았을까?”


책에서는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는 대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나오는데, 생략하겠습니다. 단, 그곳에 장서가 무려 50만여 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상선은 관리가 검문을 했는데 검문의 목적은 밀수품 적발이 아니라 책 때문이었다는 것만 얘기하지요. 책 두루마리가 발견되면 그 즉시 빌려서 베낀 뒤에 사본은 도서관에 보관하고 원본은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해요. 그 대단한 도서관이 이제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는 사족입니다.




고대인들은 세계가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주의 나이는 그들이 추측했던 것보다 더 오래되어, 약 150-200억 년이라고 밝혀져 있습니다. 과거에 에라토스테네스의 발견을 토대로 지구 탐험에 나섰던 용감한 항해사들처럼 이제 인류는 우주로 용감하게 첫발을 내디딥니다. 코스모스의 변방, 아주 하찮은 푸른 별에 사는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한’ 인류가 말이지요.


글을 마치기 전에 칼 세이건의 이 말을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제 떠나려는 탐험에는 회의의 정신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에만 의존한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로 빠져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탐험은 상상력 없이는 단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여정의 연속일 것이다. 회의의 정신은 공상과 실제를 분간할 줄 알게 하여 억측의 실현성 여부를 검증해 준다.‘


참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회의와 상상력. 우리의 양손에 꼭 쥐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게 아닐까, 나는 생각합니다. 비단 우주 탐험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 꼭 있어야 할 것으로 말입니다. 의심은 흔히 악덕으로 오인되곤 하지만, 진실에 이르는 길은 의심하는 이성이라는 표지판을 따라가야 할 때가 많지 않나요. 그리고 삶에서 상상의 세계가 빠진다면 웃음도 사랑도 공감도 연대도 희망도… 신성함도 경건함도 모두 빛을 잃은 암흑의 세계가 될 것 같습니다. 캄캄하고 외롭고 광대한 코스모스처럼 말이지요.


이상이 1장의 내용이었습니다. 아주 많이 생략했어요. 생각보다 읽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20대 때 재밌게 읽었던 기억은 모두 가짜였나 봐요. 어쨌든 그래도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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