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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Apr 02. 2024

3월의 텃밭에서 주운 말들


-뭘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씨 뿌려요.

-좀 이르지 않아요?


-이건 무슨 감자예요?

-설봉감자(씨감자)요.

-아, 설봉요.

-설봉이 뭔진 알아요? 반찬 해 먹는 거 아니고 쩌 먹는 거. 아무 데나 없어요 우리가 강원도에서 직접 사 온 거예요.

-얼만데요?

-키로에 오천 원.


-감자 싹 나오는 데를 두 군데 남기면서 잘려야뎌. 요로케 자르면 되겄네.


-엄마, 내 추측하건대... (뭐라 뭐라...)


-머위 모종을 하나만 사서 뭐 하게요? 반찬 해 먹을려면 몇 개는 심어야지.

-번지잖아요.

-번져도 반찬 해먹을려면 하나론 안 되지. 강된장에 싸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나물로 무쳐도 맛있어요. 된장에다가...

-그럼 두 개 더 사야겠다.

-그래, 하나 가지곤 안 되지. 반찬 하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러니까 된장에다가....


-밭에 나무 심지 마요~~~~!

-저쪽 밭에서 파온 거예요~~~~!

-밭에 나무 심어놓고 내 밭이라고 우기는... (뭐라 뭐라...)


-강낭콩을 뿌렸는데 왜 안 나오죠?

-함 파봐유. 호미로다. 이봐, 여기 싹 나오네. 잘 덮어놔유.

-그러네요. 나왔네요.

-날 따셔지면 온통 나올거여.


-뭐 하세요?

-고추 심을 자리 만드는 거여.

-아, 네.




제 텃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텃밭에 작년 가지나무가 바짝 마른 채로 서 있습니다. 주인분께서 가지를 하도 예쁘게 키워서 가며 오며 눈길을 주던 나무들입니다. 다른 텃밭들은 거의 모두 땅갈이를 끝내고 고랑을 만들어 모종을 심고 씨를 뿌리느라 생생한 흙빛과 흙향기를 사방으로 방사하고 있는데요. 이 밭은 얼었던 땅이 녹아 부풀고 갈라져 혼자 겨울입니다. 혼자 작년에 머물러 있네요. 부지런하신 주인분께서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 괜히 마음이 쓰입니다.


저 나무들은 한 시절, 참으로 혈기왕성했습니다. 보랏빛 열매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하늘을 향해 보란 듯이 찬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들어 검은빛이 되어버린 잎사귀들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겠다는 듯 가지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했던 그때를 추억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요, 추억은 다만 제가 하는 것이겠지요.

 

나무는 죽어서도 품위 있습니다. 이런 줄기들로 나의 자태를 이루었노라, 찬란한 삶이란 이렇게 사는 것이노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 역시 저 혼자 생각이겠지요. 나무는 제 할 일을 충실히 마치고 지금도 의젓합니다. 충실함이란 이렇게 생명을 마지막까지 뿜어내고 소진하여 결국 마른 가지로, 하나의 형태로 꿋꿋이 남는 것으로 최종 완성되는 것인가 보다, 저 혼자 또 생각해 봅니다.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3월 31일 : 적상추, 치커리, 쑥갓, 머위 모종을 심었다. 열무 씨를 파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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