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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Aug 21. 2022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

국내편

제목에 일기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 본격적인 버거 일기는 서울에 온 이후, 그것도 서른이 지나서야 시작됐다. 고향인 부산에서는 맥도날드를 많이 먹었을 뿐 그 외의 시도는 딱히 없었다. 버거를 좋아하긴 했지만 일종의 생명 유지 장치라고 해야 할까. 발품을 팔아가며 미식을 즐기는 용도의 음식은 아니었다. 


21세기가 열리고 스타벅스와 아웃백이 외식 시장을 장악하던 시절에도 버거는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음식이었다. 초등학생들의 생일잔치, 피자의 하위 호환, 반장이 되면 반에 돌리는 음식 정도랄까. 그 시절에 기억나는 버거라고 하면 딱 하나가 있다. 크라제 버거. 수제버거라는 단어를 당시에 썼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스타벅스를 의식한 듯 어두운 녹색으로 ‘Kraze’를 뒤집어놓은 로고가 기억이 난다. 쓸데없이 높이 쌓아 올려 위태위태한 버거 가운데 나무 이수씨개를 꽂아 고정시키고, 나이프와 포크가 같이 나왔다.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맛이었지만, 2002년에 버거 단품을 만원에 팔던 패기만은 기억한다. 


20대를 부산에서 보내고, 2009년에 첫 입사와 함께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나 서울 지하철 노선도가 어느 정도 눈에 익었을 무렵,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서울 사람들은 맛집에 미쳐있다. 서울에서 “홍대 가자”는 말은 줄을 서서라도 먹어야 하는 뭔가가 홍대에 있다는 의미다. 맛집 없이는 절대 아무 곳도 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홍대에서 뭘 할지 모르니 혼자 밥을 먹고 나간 적도 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니 식당의 링크나 지도 공유가 쉽지 않던 시절이다. 


실제로 서울에는 맛집이 많다. 그렇지 않은 곳은 오직 강남뿐이다. 경기도로 오가는 모든 버스의 종착지인 강남만이 무채색의 중립을 유지하고 있을 뿐, 그 외 서울 메트로가 지나는 모든 지역에는 맛집이 있다. 어느 순간 나도 “을지로 갈까?” 하면 을지로에 무슨 식당이 있는지부터 찾아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서래마을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한날은 꽤 설레었다. 오늘은 또 어떤 맛집을 가게 될지 기대감에 낮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서래마을이라는 이름부터가 감미롭다. 뭔가 조선의 마지막 대령숙수의 후손이 그 뜻을 이어받아 만든 가게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울에서도 꽤 부촌에 속한다고 하더니 찾아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함지박 사거리에서 동광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심한 경사를 오르고 있으니 부촌이 아니라 달동네인가 착각이 들었는데, 그때쯤 꼭꼭 숨겨져 있던 마을이 나타났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낮은 주택과 인파가 적은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착과 동시에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드는 강남과는 전혀 달랐다. 거리 곳곳에는 불어로 된 간판이 즐비하다. 그제야 이곳이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마을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름과 실제 모습의 반전이 기가 막힌다. 고급빌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담장을 따라 은행나무가 가득하다. 가게들은 저마다 고풍스러운 갈색 피아노나 귀여운 소품으로 입구를 장식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에스카르고와 머스터드 같은 식재료를 사용한 고급 음식을 팔 것 같은 느낌이다. 


짧은 도보여행을 마치고 다시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어느새 해가진 거리를 따라 작은 공원에 닿았을 때, 1층에 홀로 조명이 켜진 가게가 눈에 띄었다. ‘BROOKLYN’이라고 적혀 있는 간판만 봐서는 뭘 하는 곳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버거 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언가 뭉클함이 밀려왔다. 아. 버거를 좋아하는 부산 촌놈을 위해 서울 한복판에 있는 프랑스 마을의 버거 가게에 데려오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기 애인가.


메뉴판을 받고 나서야 정확한 가게 이름을 알 수 있었다. Brooklyn The Burger Joint. 버거는 패티의 무게를 선택할 수 있는데 큰 것을 고르면 버거만 만원이다. 테이블 10개 남짓한 작은 골목식당치고는 꽤나 비싸다. 심지어 감자튀김 가격도 버거와 비슷하다. 통째로 들고 먹기 적절한 작은 패티에 가게 이름이 들어간 브루클린 웍스와 치즈 스커트를 주문했다. 이왕 온 거 감자도 가장 비싼 베이컨 치즈 프라이즈 with 사워크림으로 주문한다. 잠시 가게를 둘러보니 손님들이 먹는 음식이 대부분 똑같다. 손님에게 받은 주문서를 붙여놓는 주방 선반을 가득 채운 온갖 스티커를 제외하면 특별히 인테리어 랄 것도 없다. 주방이 있고, 평범한 테이블이 있다. 그걸로 끝이다.

감자칩이 먼저 나왔는데, 그 맛이 정말 박수를 받을만하다. 길고 굵게 썰어 튀겼는데, 바삭한 튀김옷에 깔끔하게 떨어지는 감자 맛까지 완벽에 가깝다. 다만 치즈와 같이 부어진 사워크림의 양이 과도하게 많았다. 지나친 신 맛이 감자의 고소함을 오히려 해친다. 


개인적으론 사워크림을 살짝 걷어내고 치즈 7, 사워크림 3 정도의 비율로 먹을 때가 가장 이상적이었다. 잘게 부수어져 토핑 된 베이컨도 의외로 역할이 분명하다.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감자튀김을 먹는데 재미를 불어넣는다. 감자튀김을 살짝 베어 물면 나오는 뜨겁고 촉촉한 단면에 치즈와 베이컨을 찍어 먹으니 일어서서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버거는 플라스틱이나 종이박스가 아닌 제대로 된 접시에 올려져서 나왔다. 참깨가 가득 뿌려진 번 중앙에는 이쑤시개가 꽂혀있고, 버거는 위태위태하게 크다. 첫인상은 거의 크라제 버거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막연한 실망을 기대로 바꾼 건 두 번째로 나온 버거 ‘치즈 스커트’다. 마치 잘 익은 계란 프라이 같은 노란색의 동그란 무언가가 버거 안에 들어있다. 지름이 매우 커서 버거가 올려진 접시를 거의 가릴 정도였는데, 그 정체는 구운 치즈였다. 왜 ‘치즈 스커트’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한 번에 이해가 된다. 튀어나온 노란 겉 부분을 포크로 톡 치면 와사삭하고 부서지면서 부드러운 치즈 냄새가 난다. 시중에 파는 치즈 과자처럼 바삭하고 짭조름한 맛이다. 


그 외의 재료는 브루클린 웍스와 치즈 스커트가 거의 똑같다. 양상추 아래에 깔린 토마토와 통양파, 그리고 패티에서 녹고 있는 슬라이스 치즈. 대부분의 버거가 이렇게 생겼지만 이 집의 치즈는 유독 노랗다. 선명하고 밝고 오묘하다. 마치 톰과 제리가 나오는 만화 속의 등장하는 치즈처럼 아름다운 색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빨갛게 보이는 토마토가 선명한 대비를 이뤄 식욕을 돋군다.

불안해 보이는 이쑤시개를 뽑아버리고, 버거를 눌러 먹기 적당한 크기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도 턱이 아플정도로 최대한 입을 벌려야 아슬아슬하게 속재료가 삼단분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버거의 맛은 부드럽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소스의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재료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아삭하게 씹히는 양상추와 양파, 촉촉한 촉촉한 토마토의 맛이 굵고 선명하다. 야채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두꺼운 듯한 느낌이다. 속이 가득 차서 선이 굵은 맛이라고 할까. 특히 양파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 덕에 패티 아래 위로 들어간 치즈의 느끼함과 짠맛이 단숨에 제압당한다. 


먹다 보니 패티의 기름이 손목을 타고 흘렀다. 포장지가 따로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기름을 닦기도 전에 접시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크라제 버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화한 21세기형 버거의 맛이다. 


‘수제버거’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2010년의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가 내가 처음으로 먹은 수제버거였던 거 같다. 버거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각양각색의 버거 가게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부터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래마을의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물갈이되었지만 브루클린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식당의 맛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사실이야 말로 클래스를 증명하는 게 아닐까. 몇 해 전에는 10주년을 기념해 스크래치 쿠폰으로 굿즈 경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브루클린의 등장 이후로 버거라는 음식에 관심이 쏠리면서 가격도 같이 치솟았다. 이제 버거 세트를 만원 이하로 먹을 수 있는 곳은 거의 맥도날드뿐이다. 브루클린은 그중에서도 비싼 축에 속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로수길에 있는 24시간 매장을 밤에 방문하곤 하는데, 거의 치킨 값에 달하는 버거 세트를 10분 만에 다 먹고 나면 허무할 때가 있다. 그래도 다양하고 개성 있는 버거 가게들이 점점 늘어나도록 앞장서 준 브루클린에 감사한다. 아무래도 좀 더 긴 호흡으로 버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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