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로 일하는 것은 예전에도 어려웠지만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국내외 비즈니스 환경이 급속도로 변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세대 간 갈등,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조직 내 구성원들을 리드하는 방법도 그에 못지않게 빠르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무리 꼰대이거나 독재자 같은 상사의 언행이라도 “우리 부장님 스타일”이라는 중립적인 개념으로 설명하고 또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꼰대”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널리 통용되면서 자칫하다가 “꼰대”로 낙인찍히면 팀원들로부터 배척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MZ세대 팀원들보다 지금 팀장이나 임원으로 일하는 X세대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리더십이 이렇게도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해마다 리더십에 대한 책과 강연이 넘쳐나고, 그때그때의 사회현상과 성공사례에 따라 유행하는 리더십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제가 팀장으로 일하던 몇 년 전 시절에는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기보다는 운동선수와 코치의 관계처럼 구체적인 피드백을 통해 직원을 동기 부여하여 성장시킨다는 코치형 리더십이 각광받았었습니다. 지금 저희 회사의 대표님은 올해 여름 부임하시면서 “직원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해주고 진심으로 도움을 주겠다”며 봉사형 리더십을 천명하셨습니다. 코치형 리더십이든 봉사형 리더십이든, 예전의 호통치는 권위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 구성원의 성장을 돕는 마음으로 소통하겠다는 수평적인 리더십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MZ세대 동료들과 팀장님들과의 사건사고에 대해 수다 떨다 보면, 직원들이 바라보는 리더의 관점은 이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 우리 팀장님이 실천하고 있는 리더십이 코칭인지 봉사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보스에 대한 도덕적인 기준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출근 후 커피 바에서, 점심시간에 밥 먹으면서, 회사 사람들 단톡방에서 MZ세대 직원들이 자신의 상사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을 소개합니다. 이는 우리가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우리의 상사들을 평가하던 기준이기도 합니다.
멘토냐 꼰대냐
아카데미상 수상에 빛나는 윤여정 선생님이나 패션계의 대모 밀라논나 선생님 같은 70대 멋쟁이 어르신들을 멘토로 삼고 열광하는 MZ세대들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MZ세대는 기성세대의 얘기라면 무조건 질색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어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청춘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멘토냐 꼰대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다행히도 답이 명확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나를 위해서 이 얘기를 하느냐, 본인을 위해서 하느냐”를 살펴보면 됩니다. 나를 위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멘토, 나를 위해서 얘기한다고 하면서 본인을 위해서 얘기한다면 꼰대인 것입니다.
팀장님들의 “라떼는 말이야” 무용담을 접어두고, “요즘은 뭐가 재미있어?” 하고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주세요. 직원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보스가 되려면,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팀장은 입을 다물고,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업무 관련해서 지시를 할 때, “MZ대리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하고 의견을 물어보고, MZ대리의 입장에서 이슈를 풀어나가는 게 좋습니다. 직원의 일하는 태도나 정신력,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경과보고하는 데 시간을 쓰지 말고, 구체적인 현안과 문제 해결 위주로 이야기하다 보면 대화가 잘 풀릴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실무에서 일하는 담당자인 MZ대리가 문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따라서 MZ대리가 내놓은 문제 해결책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보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경우에는 전폭적으로 서포트하는 것이 좋습니다.
능력 있는 보스냐 인간적인 보스냐
두 가지 모두 좋습니다. 능력 있는 보스와 일하면 많이 배울 수 있고, 업무추진력이 좋아서 에너지가 샘솟습니다. 업무가 잘 진행되고, 웬만해서는 업무가 위험에 빠지지 않으므로, 팀 분위기도 좋습니다. 단, MZ세대의 눈에는 자신의 보스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잘 파악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팀장의 자리에 앉으면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눈에는 그런 점은 잘 보이지 않고, 내가 올린 결재를 깔아뭉개고 피드백이 늦다는 불만만 갖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한편, 인간적인 보스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직원들이 케어 받고 있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합니다. 생일파티, 핼러윈 파티 같은 소소한 행사 챙기기는 물론, 팀 안에서 축하할 일이 생기면 손수 요리를 해서 팀원들과 나눕니다. 팀원들의 육아나 병가, 가족 돌봄과 같은 개인적인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업무와 개인사를 병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합니다. 단, 팀 내에서 누군가를 편애한다는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은 직원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호의를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MZ세대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100이면 100, 모두 인간적인 보스를 반깁니다.
지금 팀장이나 리더의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은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이 능력 업적주의를 지향하는지, 직원을 살뜰하게 챙기는 인간적인 스타일인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둘 중의 한 가지 미덕을 꼭 갖추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진정성이 있냐 뒤통수를 치느냐
팀장님들은 MZ세대 팀원들에게 얘기하기 전에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 이야기가 내 실적을 위한 것인가, 아님 직원 본인을 위한 것인가?’ 만일 팀장님 본인의 실적을 위해서 하는 얘기라면 솔직하게 MZ세대 직원에게 털어놓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 부서 실적 때문에 얘기하는 건데… “하고 말하면 다소 속상하고 섭섭한 이야기라도 이해 못 할 MZ세대가 아닙니다.
본인을 위해서 얘기하는 게 뻔한데, 마치 직원을 위해서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게 최악입니다. 팀장은 스스로 잘 이야기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직원은 팀장의 본심을 귀신같이 알아차립니다. 처음 한두 번은 속아 넘어갈지 몰라도 팀장이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MZ세대들에게는 자신의 당한 일에 대해 열띠게 토론하고 같이 분개해주는 동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메일도 같이 돌려보고, 회의시간에 한 얘기도 핸드폰에 녹음되어 있습니다. 상사와의 대화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완벽한 보스가 되기는 어렵지만,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보스가 될 수는 있습니다. 오늘날의 상사-부하 관계가 맹목적 충성을 맹세하는 사수-부사수 관계가 아닌데, 거기서 신뢰까지 잃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팀을 위해 싸우느냐 양보하느냐
당연한 얘기지만, 직원들은 팀을 위해, 자신을 위해 싸워주는 보스에 열광합니다. 지금 제가 같이 일하는 보스가 바로 이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회사 모든 직원들이 제 보스의 이 점을 가장 부러워하고, 모두 저희 부서에 오고 싶어 합니다. 제 보스는 우리 부서에 필요한 것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주장합니다. 제가 다 조마조마할 지경입니다. 그 바람에 다른 팀장들 사이에서는 불평도 듣고, 심지어는 사장님으로부터 “좋은 팀플레이어가 되는 법”이라는 책을 읽어보라는 충고까지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용감하게 외쳤다고 합니다. “나에게 팀은 내가 맡은 부서의 우리 팀뿐이고, 나는 지금 팀 플레이를 아주 잘하고 있어요!”라고.
제가 새로이 깨우친 것이 바로 "팀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리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리더이고자 했습니다. 우리 팀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고 싸우기보다는 다른 팀과 타협하고 협의해서 모두가 좋은 쪽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고 했었지요. 저는 그게 회사를 위해서도 우리 팀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팀 사람들에게는 제가 섭섭하고 야속했을 것입니다. ‘내 보스가 나를 위해 싸워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 싸워줄 것인가?’라며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깨달았고, 그때 우리 팀이었던 친구들에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팀원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 확실하게 보이는데, 그때는 그렇게 몰랐습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지금의 팀장님들은 모두 멋진 리더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