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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가든 Oct 29. 2022

100% 주관적인, 남친 같은 회사 고르는 법

100% 주관적인, 내가 원하는 회사 고르는 법

헤드헌터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을 때나, 링크드인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잡 포스팅을 보면 이직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회사 다이어리의 맨 뒷장을 펼치고 적기 시작합니다.  연봉, 업무, 향후 성장성, 회사 내 인간관계, 보스와의 관계, 출퇴근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지금 회사의 장단점, 지원할 회사의 장단점을 1, 2, 3, 4 번호를 달아 적다 보면 – 지금 우리 회사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며, 지원할 회사도 좋기만 한 건 아니구나, 하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결국 어디에도 드림 컴퍼니는 없구나’하는 새삼스러운 현실에 시무룩해지기도 하지요.  

    우리가 원하는 직장의 기준을 들이댔을 때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완벽한 회사가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그 완벽한 회사를 좋아하게 될까요? 이는 마치 외모, 학력, 성격, 집안, 센스 등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남자 친구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데도 전혀 케미가 느껴지지 않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평소에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한 가지가 확실히 맘에 드는 상대도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언가’가 맞아떨어진 것이겠지요. 결국 우리가 사귀는 남친은 원래 우리의 이상형과 다른 존재인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도 그와 비슷하여, 자신에게 맞는 회사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꿋꿋이 비바람을 뚫고 출근을 한다는 건, 적어도 지금 우리가 다니는 회사와 내가 어떤 면에서든 ‘케미’가 맞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그 케미가 무엇일까요? 과연 내게 맞는 회사는 어떤 스타일의 남친일까요?   


잘 나가는 남친 같은 회사  

회사 브랜드 파워가 막강해서 동창회에 가서 얘기하면 “우와, 진짜 좋은 회사 다니네!”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회사입니다. 회사 명함에 찍힌 로고조차 명품 같습니다. 회사 내 사정은 밖에서 보기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이기에 헤어질 수가 없습니다. 대신, 회사가 속을 썩이고 열받게 해도 참고 잘 견뎌내야 합니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좋은 회사를 다닐 수 있겠어?’ 하는 생각에 그만두려야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부디 이 잘 나가는 회사가 내게 좀 친절하기를 바래봅니다.


    내 눈에 콩깍지 같은 회사  

 “어떤 회사 다니세요?"하고 누군가가 물을 때,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회사입니다. 연봉이 얼마에, 보너스가 어떻고, 회사 건물이 어디에 있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좋은 회사의 기준과는 동떨어져있지만, 내게는 괜찮은 회사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듯, 얼마짜리 집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창가에 제라늄 꽃이 핀 화분이 놓여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살고 있는,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이라고 설명해야 하는 곳입니다. 남들 눈에는 허름하지만 내게는 미슐랭 별이 붙은 레스토랑만큼이나 훌륭한 맛집인 곳입니다. 줄 서는 사람이 없어서 언제 가도 내 자리가 있는, 내게 힘을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회사이지요. 회사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고요? 그것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맞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대한 나만의 사명감이나 소속감, 회사가 추구하는 이상과 비전, 회사가 나를 인정하는 수준, 내가 회사를 편하게 느끼는 조건 등 나만의 주관적인 그 무엇이 말입니다. 

    이런 인연을 만나는 것은, 정말, 큰, 행운입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남편 같은 회사  

 2006년, 외국계 회사 론칭 멤버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론칭 멤버로서의 영광도 잠깐, 회사가 두 번이나 합병되는 과정에서 사장님은 물론, 직원 한 명 한 명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조직의 영욕의 세월을 함께 겪었습니다. 엄혹한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합리한 일이나, 억울한 사정, 분노하는 직원, 배신과 반전의 드라마가 왜 없겠습니까. 자기 자신만 살아남은 것도 괴롭고, 퇴사한 사람들 업무를 떠맡는 것도 힘들겠지요. 이 친구는 만날 때마다 “진짜 더 이상 못 다니겠다”며 우리에게 당장 그만둘 것처럼 얘기하지만, 지난 16년간 같은 레퍼토리를 들어온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 회사가 문을 닫는 날이 오면 회사 셔터를 내리고 나올 최후의 1인이라는 것을.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내 삶에서 회사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어진, 남친이라기보다는 남편에 가까운, 회사가 있습니다. 나만큼 이 회사를 잘 아는 사람이 없고, 나만큼 이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써야 할 것처럼 화가 나다가도, 그래도 내가 없으면 이 회사 일이 안 돌아갈 거 같아서,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회사가 잘 나가면 오히려 그만두기 쉬울 텐데, 회사가 어려우니 더더욱 의리를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열받는 일이 있어도 용서할 수밖에 없고, 참고 인내해야 하는 아름다운 인연이지요. 길 건너편 잔디가 더 파랗게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똑같다는 평범한 진리를 진작에 깨달은 사람에게만 맺어지는 인연일 것입니다.


    연애세포 자극하는 애인 같은 회사  

  나의 관심, 호기심,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나를 항상 자극시키고 성장시키는 자기 계발 에너지 드링크 같은 회사입니다. 새로 론칭하는 사업, 스타트업 같은 회사가 여기에 속합니다. 일은 장마철 호우처럼 쏟아져내리고, 최저시급에 가까운 열정 페이를 받고, 스톡 옵션은 받았지만 언제 행사할지 모르며, 세상에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다 보니 맨땅에 헤딩하기 일쑤입니다. 야근은 기본, 주말근무도 밥먹듯이 하고요. 세상만사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고 내가 하는 일이 내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게 너무 재미있습니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평소에 애정하고 덕질하던 분야에서 일하며 성덕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자기 계발하는 데 돈 받는 셈이며, 컴퓨터, 커피, 전기까지 공짜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일주일 내내 회사에 붙어 있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일과 재미가 결합된, 이상적인 회사입니다! 

    단, 자신의 애정과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진하여 번 아웃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불같은 연애라고 해서 영원히 갈 수야 있겠습니까. 불꽃같은 연애를 즐길 수 있는 회사라면 잘 사귀고 잘 헤어지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이상은 100% 주관적인, 저의 회사 기준입니다. 직관적이고 솔직합니다. 그래서 내가 다니는 회사를 남친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나와 회사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신선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모두가 원하는 회사라고 해서 나한테 맞는 건 아니거든요. 다른 회사에서는 스타플레이어였던 직원이 새로운 회사에 가서는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또한 이 기준은 회사와의 관계를 계속할 것인지 헤어질 것인지 고민할 때에도 도움이 됩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잘 맞으면, 다른 것들은 조금 삐걱거려도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생기지요.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연애, 취업, 결혼 등 인생의 사이클에 맞춰서 다른 스타일의 남친을 사귀게 되듯이, 회사도 우리의 업력에 따라 다른 스타일의 회사를 좋아하게 됩니다. 일을 시작하던 2-30대 때는 1번 잘 나가는 남자 친구와 같은 회사를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TV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을 선망했기 때문에 남들이 다 아는 유명한 방송사가 제일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그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분야를 정하게 된 후에는 그 장르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는 회사, 즉, 4번 연애세포 자극하는 남친 같은 회사로 옮기게 되더라고요. 저는 제가 가장 마지막까지 다닌 회사를 치열하게 연애하다가 헤어진 남친처럼 여깁니다. 회사를 그만둔 지 5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 회사 뉴스를 보면 아직도 애증의 감정이 남아있음을 느끼지요.   

    오늘도 지친 몸과 마음으로 퇴근하는 MZ세대들에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어떤 남친 스타일이지?’ ‘나는 어떤 남친 스타일을 원하지?’하고 물어보길 권합니다. 회사는 남친으로 비유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 52시간제가 되었다고 해도 – 우리는 여전히 남친보다 회사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tvN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구글 수석 디자이너 분의 충고를 기억합니다. “회사와는 썸을 타야지, 연애를 하면 안 됩니다. 회사에 올인을 하니 배신감을 느끼고 화가 나는 법이거든요.” 네, 어떤 남친이 되었든, 상처받는 연애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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