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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가든 Oct 29. 2022

퇴사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개구리 켈소의 선택>의 9가지 방법 중 “다른 회사로 간다”는 초이스가 가장 마음에 들 때, 그 외 다른 선택지로는 도저히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 우리는 드디어, 회사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됩니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예시했듯이, 행복한 직장은 모두 닮아 있지만, 불행한 직장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법이니까요. MZ세대 직장인들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하고, 이번 생은 이번 한 번 뿐이라고 하며, 과감하게 사직서를 던집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두고 난 후,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겪은 선배로서, 회사와 이별 후 우리가 겪게 되는 주변의 변화들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미리 아는 것은 회사와 쿨하게 헤어진 후, 이별을 극복하고 새 출발을 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개목걸이 출입증의 위력   

 대학 친구의 아들이 자기의 장래 희망은 “삼성전자 출입증 목걸이를 하고 구내식당에서 밥 먹는 것”이라고 했을 때 우리 모두 그 아이의 구체적인 희망에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소위 개목걸이라고 불리는 회사 출입증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바로 퇴사하는 순간이지요. 그게 뭐라고 그걸 걸고 있는 사람들은 당당하고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인 것 같고, 그게 없으니 불완전하거나 소외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 허전함과 상실감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퇴사 후 달라진 인간관계를 받아들이는 법   

회사 다닐 때는 인싸 중의 인싸였지만, 퇴사와 함께 따끈따끈하던 인기는 빠르게 식습니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고,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직원들도 연락이 뜸해지고, 명절에나마 단체 카톡 문자로 전하는 인사 외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습니다. “내가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는 마음에 서운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 통해 회사 동료들이 내 흉을 봤다는 소식을 들으면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배신감에 잠을 못 이룹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살았던 지난날의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내 인생이 다 부정당한 것 같아 우울합니다. 

    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잘못해서, 또는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다 배은망덕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들 새로운 챕터를 살아갈 뿐입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하고 새로운 모험을 선택한 것이고, 그들은 회사를 안 그만두었으니 계속 회사를 다니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였으니, 계속 같이 걸어갈 수 없는 것이지요.  

    2013년 초특급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 천송이의 명대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습니다. “내가 이번에 바닥을 치면서 기분 참 더러울 때가 많았는데,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어. 사람이 딱 걸러져. 진짜 내 편과 내 편을 가장한 적. 인생에서 가끔은 큰 시련이 오는 거, 한 번씩 진짜와 가짜를 걸러 내라는 하느님이 주신 큰 기회가 아닌가 싶어.” 이러한 정리정돈의 마음자세도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나에게 큰 상처를 주고 쓰라린 배신을 맛보게 한 상대는 당연히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합니다. 상처는 가깝다고 믿고 소중하게 여겼던 동료에게서 받게 되니까요.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나를 흉보고 험담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너무 상처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너그럽게 넘겨버리는 게 좋습니다. 내 청춘의 빛나는 시절을 함께 보내며 열심히 일했던 기억만을 소중하게 남기십시오. 

    그 외에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멀어지고 조용해진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아끼고 밀어줬던 후배라 하더라도 상처받지 말도록 하십시오. 우린들, 우리보다 앞서 회사를 떠난 보스나 동료에게 회사 다닐 때처럼 자주 연락하고 안부 전하고 챙기면서 살지 못했듯, 후배들도 그럴 뿐입니다. 저도 예전 상사에게 “한번 연락드려야지” 마음만 먹으면서 4-5년을 훌쩍 흘려보냈듯이, 그들도 그럴 뿐입니다. 내가 가끔 예전 상사 떠올리면서 “그래도 내게 참 고마운 분이었는데…” 하고 생각하듯이, 그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달라진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   

바다에서 파도를 즐기며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예비 서퍼들은 모래 해변에서 일정 시간의 서핑 수업을 받고 부푼 가슴을 안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마음 같아서는 비치보이스의 “서핑 USA” 팝송에 맞춰 스릴 만점의 파도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초보 서퍼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바다에 빠집니다. 파도를 타는 기술이 부족하기도 하고, 파도에 올라타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제대로 된 파도를 고르지도 못합니다. 총체적 난국이지요.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제대로 된 파도를 골라 제대로 된 타이밍에 올라타서 제법 파도타기를 즐깁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곧 다시 바다에 빠집니다. 파도타기 실력이 대단히 좋은 것 같아도 조금 더 파도를 오래 탈 뿐 바다에 빠지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서퍼들의 운명이란! 

    그러니 좀 더 오래 파도를 탔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습니다. 몇 초 후에는 어차피 똑같이 바다에 빠질 신세이지요. 파도를 제대로 못 탔다고 해서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에게 적합한 파도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각자의 파도타기를 합니다. 임원 승진을 한 동료는 지금 멋지게 파도를 타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고, 제대로 서핑보드에 오르지도 못하고 바닷속에서 짠물을 들이켜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합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바다를 바라보면 크고 작은 파도들이 계속해서 내게 손짓을 하는 것이 보입니다. 어서 오라고, 힘을 내서 올라타라고. 

    언젠가 각자의 파도를 멋지게 타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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