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나 Nov 30. 2020

4. 프로필 사진

방과 후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날이 많았다. 혼자 있는 집이 편했고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이 좋았다. 북적거리는 가족모임이 불편했고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묻는 부모님의 관심이 난감했다. 그 정도로 나는 말이 많지 않았고 혼자인 게 편했다. 인천으로 이사 와서 엄마와 언니, 나 이렇게 셋이서만 생활할 때는 경제적 자유는 없었지만 생활적으로는 매우 자유로운 편이었다. 할머니와 아빠와 함께 살 때와는 전혀 달랐다. 늦잠도 마음껏 잤고, 식사도 내가 하고 싶을 때 했고, 외박을 해도 괜찮았다. 가끔씩 있는 엄마의 금전과 관련된 잔소리와 간섭을 빼면 정말 자유로운 20대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추측컨대 엄마는 아마 엄청나게 외롭고 괴로운 갱년기를 보냈을 거다. 엄마가 혼자 방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그 당시의 자유로운 청춘을 만끽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몸 쓰는 힘든 일을 하니 짜증이 늘고 그 스트레스를 나와 언니에게 푼다고만 생각했다. 나를 위해 애쓰는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했지만 “그러니 나중에는 너희들이 나를 책임져야 한다.”라는 말에는 부담을 느꼈다. 


특히나 결혼 후에는 더욱 심해졌다. 마치 시집살이에 힘들어하는 며느리와 같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챙기지도 않던 집안 행사들이 생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마다 만나려고 하는 엄마가 버거웠다. 내가 말도 없이 외박을 해도 연락 한 통 안 하던 엄마였다. 학창 시절 수능날까지도 도시락 한 번을 안 싸주던 엄마였고 내가 밥을 차려줘야만 그때서야 식사를 하던 엄마였다. 그러던 엄마가 변했다. 무얼 먹고 싶은지 묻고 계속해서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어 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는 한다.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막내딸. 싸가지 없고 매정한 년이라고 욕도 많이 했지만 엄마는 나를 매우 좋아했다. 늘 잘 웃고 긍정적이고 말썽 한 번을 안 피운 나를 언제까지나 아기 막내딸처럼 여기고 좋아했다. 그런 막내딸이 결혼을 해서 떨어져 지내니 보고 싶었을 거다. 이젠 자식이 결혼도 했으니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었을 거다. 아들 없는 집에 든든한 사위가 생겨서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싶었을 거다. 외식은커녕 중국집 배달음식에도 돈을 아끼던 엄마가 늘 나와 사위를 데리고 외식을 하러 다녔다. 언니랑 내가 같이 바람 쐬러 가자고 해도 늘 거절하던 엄마가 시시때때로 나와 사위를 데리고 나들이를 다녔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 자식 내외, 손주들과 함께 하하 호호 웃는 모습. 때마다 자식들이 찾아와 용돈도 두둑이 챙겨드리는 모습. 그런 것들을 엄마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고 싶었을 거다.


그 나이가 되면,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변할 수도 있겠다고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내가 30년을 겪은 엄마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부담스럽고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한숨부터 나왔다. 오늘은 또 왜? 두 번 전화가 오면 한 번은 받지 않았다. 엄마와 계속 같이 살고 있는 언니가 있음에도 늘 나만 찾는 엄마가 귀찮았다.

이전 04화 3. 도깨비 아줌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