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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나 Nov 30. 2020

5. 내 손을 잡은 아이

남편의 일 때문에 영종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늘 차로 10분이면 닿는 거리에 살던 엄마와 제일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나는 내심 기대를 했다. 거리도 좀 더 멀어지고 통행료도 비싸니 자주 만날 일이 줄어들겠지? 나의 예상은 아쉽지만 틀렸다.


하필 그때 나는 잠시 일을 쉬고 있던 터라 엄마를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통행료도, 기름 값도 아깝지 않은지 영종도에 참 자주 놀러 왔다. 결혼하고 그나마 처음으로 번듯하게 지내는 자식의 집구석이 마음에 들었을 테다. 복잡한 시내가 아닌 탁 트인 마을은 마치 여행을 온 듯 한 기분도 들게 해 주었을 테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회 한 점을 먹으며 엄마는 행복해했다. 서해바다의 낙조를 바라보며 엄마는 행복해했다.


더욱 잦은 만남에 피곤하고 괴로웠지만 나도 조금은 애를 썼다. 언제부턴가 엄마가 도통 식사를 하질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도 입이 짧고 까다로운 편이었지만 좋아하는 메뉴나 수준이 좀 괜찮은 식당에서는 알차게 잘 드셨다. 그러던 엄마가 어떠한 산해진미에도 영 힘들어했다. 그렇다 보니 먹고 싶은 건 여전히 많고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엄마는 계속해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나에게 통보했다.

“김포에 있는 물 횟집이 맛있다더라.”

“일산에 있는 한정식집이 너무 맛있다더라.”

나와 남편은 열심히 엄마와 함께 그런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먹지 못했다. 기계적으로 엄마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었지만 나의 짜증은 늘어만 갔다. 도대체 왜 못 먹는 건지, 이렇게 깨작거릴 거면서 왜 오자고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은 돈대로 깨지고 나와 같이 시달릴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하루는 김포에서 유명하다는 물 횟집에 갔다가 영종도로 돌아왔다. 그 집에서도 여전히 엄마는 몇 입 먹지도 못했다. 난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영종도에도 물 횟집 많은데 굳이 거기까지 갔건만 엄마는 먹지도 않고 이게 뭐야.”

이대로 헤어질 수도 없기에 영종도에서 유명하다는 카페에 갔다. 주문한 음료를 받으러 남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가 소녀처럼 걸으며 말했다.

“엄마는 너무 행복해”

내가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기계적으로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대해도 엄마는 그저 그런 시간 하나하나가 그렇게도 좋았나 보다.


순간 나도 엄마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 지금처럼 큰 문제없이 엄마랑 맛집도 다니고 차도 마시러 다니고 하는 게 행복이지.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엄마를 부담스러워했던 건 개인주의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나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혼해서 대단히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그런 못난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기가 싫었다. 내 속사정을 하나하나 다 알 리 없었던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많은 것을 원했는데 그걸 다 들어주지 못하는 나의 현실에 엄마를 만나는 게 괴로웠던 것이다. 조금만 애를 써도 엄마는 이렇게나 행복해했는데 이 못난 딸은 성격 탓만 하고 상황 탓만 하며 엄마를 너무나 멀리했던 것이다.


행복해하는 엄마의 작고 야윈 손을 잡고 걸으니 마치 아이처럼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그 와중에 나는 이 아이를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보살펴야 할까 하는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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