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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나 Nov 30. 2020

7. 빨간 핸드폰

엄마는 자주 영종도에 왔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늘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 위주로 식당을 알아보았다. 회, 생선구이, 간장게장 등등. 잘 먹는 엄마의 모습에 뿌듯했고 만족스러웠다. 두어 달 후 수녀님이모와 외숙모가 인천에 방문하셨다. 제대로 식사를 대접해야 하기에 유명한 한정식집으로 초대를 했다.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가 이상했다. 밥 한 숟갈도 겨우겨우 먹었다. 그 다음날 또 영종도에서 엄마가 맛있게 먹었던 식당으로 수녀님이모와 외숙모를 모셨다. 역시 이날도 엄마는 잘 먹지 못했다.


평소 병원에 자주 다니던 엄마였고 온갖 내시경에 피검사 등을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와 오히려 답답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몸은 자주 안 좋은데 엄마 몸은 다 정상이란다. 너무 깨끗하단다. 그래서 엄마의 이런 이상들은 전부 예민한 성격 탓이라고 넘겼다. 엄마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 입원생활이 길어졌을 때도 원인을 도통 찾지 못해 결국엔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려고도 했었다. 나는 병문안을 갈 때마다 늘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 마음을 편히 가지고 제발 이제 일 좀 그만해. 좋은 생각만 하고 지금은 먹는 게 중요하니 먹고 싶은 거 찾기 전에 먹을 수 있는 것만이라도 먹어.”

그렇다. 엄마는 입원을 하고 몸의 뼈가 점점 진하게 드러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신경을 썼고 외출이라도 해서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런 엄마가 미칠 듯 답답했고, 잔소리만 해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엄마가 일을 안 해도 되게끔 해주지 못하는 못난 내가 한탄스러웠다. 걱정이 되는 한편으론 죽을병도 아닌데 맨날 저러는 엄마가 귀찮았다. 엄마가 병원으로 나를 불러도,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도 바쁘다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온갖 검사를 받아도 원인을 찾지 못하던 중 혹시나 찍어본 정밀 MRI에서 이상소견이 나왔다. 뇌에 종양이 보인다는 것이다. 아마 이 종양의 위치 때문에 엄마가 잘 먹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살까 봐 걱정했던 사람이었는데 느닷없이 뇌종양이라니. 우리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뒤늦게 엄마가 주변인들에게 보낸 문자를 보니 겁이 난다고 쓰여 있었다. 무섭다고 쓰여 있었다. 엄마는 두려워했다. 담담한 척했지만 무지 두려웠을 것이다. 어두운 입원실에서 밤 새 얼마나 무서웠을까.


수술을 앞두고 엄마 핸드폰 바꿀 시기가 되어 내가 대신 새 핸드폰으로 바꿔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빨간색으로 바꿔왔다. 희망은 있었다. 수술만 잘되면 엄마는 잘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으니까.


12월 12일 엄마는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결국 엄마는 새로 바꾼 빨간 핸드폰은 며칠 써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뇌수술은 수술만으로도 너무 위험했기에 우선은 엄마가 후유증 없이 수술을 마치기만을 바랬다. 다행히 엄마는 수술 후 마비가 오는 곳도 없고 시력도, 언어능력도 다 정상이었다. 하지만 정작 달라져야 할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먹는 것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더더욱 안 좋아졌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다. 뇌수술의 후유증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 것도 잠시 엄마는 더 안 좋아진 것이다. 단순한 뇌종양이 아니었다. 암이 뇌로 전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암이 어디 암인지, 무슨 암인지 모르겠단다. 이젠 더 이상 가죽밖에 남지 않은 엄마를 겨우겨우 달래 가며 또 다른 검사들을 해보았지만 끝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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