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나 Nov 30. 2020

8. 말 못할 비밀

엄마는 언제부터 본인의 미래를 예감했을까? 훨씬 일찍? 아니면 꽤 늦게까지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까. 수술 후 안 좋은 분위기를 감지한 건지 엄마는 말도 하지 않고 눈도 뜨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 한 건지 정말 눈뜰 힘도 없었던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포기라는 선택지를 골랐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대로 오래 살아봤자 의미 없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꾸역꾸역 살아봤자 우리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자식에겐 힘이 되는 건데 엄마는 몰랐나 보다. 내가 응석받이 막내딸이었다면?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철부지 딸이었다면? 엄마는 좀 더 힘을 냈을까? 본인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딸내미 곁에 더 있어줘야 한다며 살기 위해 발버둥 쳤을까? 엄마의 이른 죽음이 모두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 가슴이 죄어온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후에도 엄마는 여전했다. 엄마는 그렇게 우리에게 아무런 작별인사도 해주지 않고 아주 조용하고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그런 엄마의 귓가에 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 외할머니가 엄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수술 후 딱히 차도가 없는 상황에 외할머니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에겐 비밀. 이 사실을 알면 엄마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에서 둘은 정말 만났을까? 외할머니는 아마 깜짝 놀랐겠지? 아니 우리 딸이 왜 벌써 왔니! 하며 엄청 속상해하시겠지?


엄마는 그렇게 온기를 이 땅에 벗어던지고 차가워졌다. 

따뜻한 봄이 찾아온 3월의 날이었다.

이전 08화 7. 빨간 핸드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