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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ilit Oct 24. 2021

채식 의문

저 친구는 왜 풀만 먹고살게 되었을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빼빼 말랐을까? 
어떻게 고기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 이 맛있는 것을?  
그들은 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1. 내 인생의 첫 채식

 2019년 퇴사 후,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를 보고 발리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큰 고민 없이 바로 발리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배낭을 꾸렸다. 먹는 것은 한국에서 많이 했으니 기도하는 곳에 가서 마음을 정화시킬 목적으로 아쉬람에 들어갔다. 아쉬람은 한국어로 쉽게 말해 기도하는 곳, 명상원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고, 6시에 요가를 하고, 7시에는 아쉬람에서 제공한 음식들로 아침식사를 한다. 이 조식에 나오는 모든 음식이 채식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템페라는 음식도 이때 처음 접했고, 채식으로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2. 비건 주의자들과의 만남

1주일의 짧은 아쉬람 생활은 독소 가득한 몸을 깨끗이 정화하기에 모자랐다. 요가와 명상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도 짧았다. 구글 검색을 통해 더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고, 렘봉안이라는 작은 섬에서 요가 지도자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배편을 구해 렘봉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평생을 함께 할 친구들을 만났다. 호주,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세계 곳곳에서 온 친구들과 합숙하며 놀란 것은 그들이 먹는 음식이었다.


3. 치킨라이스를 주문하는 사람은 오직 단 한 사람

 요가 지도자 과정을 절대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됐다. 몸으로 하는 것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으나, 동이 트지 않는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아주 빡빡한 30일의 여정이었다.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단백질 섭취가 필수라고 여겼기에 매끼니 고기반찬을 찾아 먹었다. 사흘쯤 지났을때 이상함을 느꼈다. 나만 고기를 먹고 있었다. 15명의 요기니 중에 고기를 먹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가끔 엠마가 물고기 요리를 먹었지만, 순수하게 고깃덩어리를 먹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생기자 식당에 갈때마다 슬슬 친구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왜 이 친구들은 고기를 먹지 않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 사랑스러운 요기니 친구들은 비건이었다. 


4. 나도 이제 너희랑 같은 것을 먹겠어

 모두가 고기를 먹지 않으니, 고기를 먹는 내가 굉장히 야만적인 사람인 된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내가 고기 먹는 것을 나무란 적 없었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1주 정도 지나서, 나는 조심스레 베지터블 누들을 주문했다. 엘리자베스는 '자스민, 네가 웬일?'이라는 표정을 보였고, "네가 맛있게 먹길래" 라고 멋쩍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몇몇 친구들은 나의 시도에 응원을 보내주었다. 결국 2주 차부터 나는 강제 비건이 되었다. 그 뒤로 3주를 비건 식단으로 생활하며 놀라운 변화를 경험 했다. 속이 편하고, 몸이 가벼워졌으며, 집중이 잘 되었다. 게다가 피부 트러블도 사라져, 내 피부라고 믿기 힘든 계란처럼 매끈한 살결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매일 요가 수련을 하고 술도 먹지 않았기에, 비단 이 변화가 오직 채식 식단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몸의 변화는 뚜렷했다.


5. 돌아온 한국에서 만난 첫 채식주의자 한국인

 한국에 돌아와서는 계속 식단을 유지하지 못했다. 퇴사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몸과 마음이 바빴다. 여유가 없었다. 사시 변명이고 주된 이유는 은연중에 '고기를 안 먹는 사람 = 유난떠는 사람' 이라는 한국식 사고방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던 때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던 시기라 예민했다. 유별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비건이 머리와 몸에서 잊힐 무렵, 나의 첫 한국인 채식주의자를 만났다. 채식은 외국 친구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날려준 친구였다.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물어보면 수줍게 도시락을 싸왔다고 말하던 아이였다. '와, 한국에서도 비건이 있었다니!' 멋있었다. 타인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단하고 곧은 친구로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한국에서 채식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만,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고기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 이 맛있는 것을?  
왜 채식을 하는 걸까?

채식에 대해 알고 싶어 서점을 기웃거렸다. 당시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의 허들은 높았다.

왜 비건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이고 의학적인 정보들로 전문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들이 있었지만, 나 같은 초보자, 무지한 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렵고 무거웠다. 맛난 레시피로 비건 음식을 알려주는 책들도 있었지만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역시 허들로 보였다.


 철학이니 건강이니 환경이니 어려운 내용은 내려놓고, 마음 편히 "그 친구는 왜 풀만 먹고살게 되었을까?" 일상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그런 책들이나 정보는 미비했다. 대단한 목표보다는 우리 주변의 비건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나의 단순한 호기심에서 채식의문은 탄생하게 되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그래서 시작할 수 있는 인터뷰들이었다. 다행히 친절하고 감사한 분들이 많았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내가 채식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위에 서술한 내용이 전부였다. 

채식의 단계가 최소 7단계가 되며, 간장 고추장 막걸리에도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는 것을 몰랐으며, RDS라는 단어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여섯 살의 지식수준으로 이 여정에 올랐다. 초반에는 인터뷰이들을 많이 귀찮게 했다. 여섯 살 어린아이처럼 "왜"냐는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이해가 안 되면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끈질기게 물었다. 



 이 글은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쓰였다.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친구 중 한 명이 왜 채식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과, 채식주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이다. 양 극단의 사이를 벌리기 보다는 한걸음이라도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RDS

조류에서 털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뽑는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을 하지 않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털을 채취 하여 만든 다운 제품에 발행되는 인증마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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