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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23. 2022

누구일까 마피아

EP07. 두 얼굴의 면담

헷갈려 헷갈리겠지



 3분기 면담 시즌이 밝았습니다. 모두 고개를 들어주세요. 당신은 마피아입니까, 아니면 선량한 시민입니까. 당신은 면담으로 그동안 몇 명을 죽이셨습니까, 혹은 살리셨습니까.


 면담 (面談).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행위. 어떤 면담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하는가 하면 어떤 면담은 잔잔한 물웅덩이에 돌 하나 던진 것처럼 큰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회사가 뒤숭숭할 때는 업무 시간 거진 면담하느라 보낸 적도 많습니다. 회사에서 100% 솔직한 사람은 없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다 들어봐도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일만 하기도 모자란 업무 시간을 쪼개고 쪼개 면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연봉 협상, 성과 측정, 중간보고, 이의 제기 등 많은 이유가 존재합니다만 궁극적인 이유는 ‘속내가 궁금해서’ 혹은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이 둘 중 하나입니다. 둘 다 썩 업무와 상관없는 뒤가 구린 이유들 뿐이죠.


일명 '면담카페'로 불리던 그곳.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면담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오픈된 회의나 캐주얼한 커피챗을 선호합니다.) 은밀한 공간에서 상급자와 하급자 이 둘이서 하는 얘기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과 정치칠과 가스라이팅이 혼재하겠습니까. 정신줄 한 번이라도 놓으면 내가 방금 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나왔는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면담 전에는 마인드맵을 짜서 이야기가 샛길로 새는 걸 방지하고 녹음기를 켜 증거를 남겨두는 치밀한 (재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고밀도 정치 심리 게임



 그동안 저의 면담은 아주 다이내믹했습니다. 면담 한 번으로 고참 PD 한 명이 짤리기도 했고, 우리 팀 팀원들의 피드백 라인이 더 심플해지기도, 잠시 리프레시 휴가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내 사람들과 어떤 고난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최고 의사 결정자가 구성원 하나하나의 업무 효율 극대화에만 신경 쓴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일이지요.


 업무를 위한 면담이 아닌 정치질을 위한 면담이 시작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물론 어느 면담이나 서로 듣고 싶은 얘기만 하고 심연 깊이 있는 본심은 숨기는 정치색을 띕니다. 하지만 그 정치색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면담 후 후련해지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여갑니다. 흘러가는 듯이 말한 게 커다란 돌이 되어 다른 사람이나 다른 팀이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거나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못하고 겉치레식 해결 방안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보면 이러다 제 명에 못 살겠구나 할 정도로 속이 아파옵니다.


 화자는 한 명인데 들은 사람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경우도 큰 문제입니다. 이런 곳일수록 구성원 개개인의 정보의 양과 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불투명해질수록 희소성은 올라가며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현상도 극심해집니다. 업무 능력과는 별개로 오로지 정보의 양으로 회사 생활을 하는 이들이 활개를 치는, 정치질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비정상 속의 정상인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혼자 맑으며, 뭇 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로써 추방당했다오.

-전국시대 정치가 굴원의 말


 상황이 분명 잘 못 돌아가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고 오히려 ‘문제가 있는 건 너’라는 소리를 듣고 나를 탓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는 그네들의 가스라이팅에 물들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나 일의 고통과 슬픔에 관해 논했습니다. 몇 달간 철야 작업은 할지언정 사람 스트레스는 없어서 살겠다는 친구에게 철야는 없어도 사람 때문에 미쳐 돌아버리겠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비정상인이 가득한 곳에 정상인이 들어가면 미쳐 버리는 거”라고요.


이미지 출처: EBS 딩동댕대학교 유튜브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회사나 마음만 다치는 면담 때문에 고통받고 계시다면 잠시 그 상황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하루 8시간 동안 몸과 시간을 바치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초연해지는 건 어렵겠죠. 그래도 회사가 내가 되고 내가 회사가 되는 그런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합니다. 주기적으로 회사 밖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회사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이제 못 버틸 것 같다 싶으면 퇴사 절차를 밟는 것이고요.






입맞춤 필수



 모든 면담은 변화를 초래합니다. 그동안 저도 셀 수 없는 면담으로 선량한 시민을 죽이고 마피아를 살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면담 전에 주변 사람들이랑 입 한 번 맞추고 들어가는 걸 추천합니다. 적어도 주변 사람들이 나중에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그 이유는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다음 면담의 주제는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와 내 주변 이들이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부디 흘러가길 바랍니다.


여전히 지독하게 일하고 최애 덕분에 살아가는 19. OCT.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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