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가 괴로운 것 보면 아직 마음 치유가 되지 않았나 보다.
지금까지의 글들 - 남편의 뇌종양 수술 이야기 - 은 담담하게 쓸 수 있었는데, 이번 글은 쓰기도 전에 마음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열어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조금 빠르게, 조금 느리게.
잘 털어버려 냈다고 믿어왔던 그때의 기억들을 소환해 내자 영혼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의 응어리가 아직 많이 남아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커다란 창문만 열고 나가면 프라이빗 수영장이 그리고 그 너머로 스페인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호텔 방 안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낮잠을 자고도 하루 12시간 넘게 잘 수 있는 잠 복을 타고난 나는 그날, 그 스페인의 호텔에서 10분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인플루언서 이벤트를 위한 준비를 했다. 세심하게 준비했기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행사 첫날, 프랑스와 독일에서 온 인플루언서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스페인의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호텔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친환경 컨셉으로 트렌디하게 꾸며져 있어서 인플루언서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들은 매우 만족해했고, 내가 준비한 이 행사가 다른 회사의 이벤트와는 다르다며 내게 개인적으로 와서 연신 칭찬을 해주었다. 많이 웃고, 많이 떠들었다. 삐에로 가면을 쓴 채. 꽤 긴 저녁 식사가 끝났고, 모두들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행사장에 남아서 뒷정리를 한 후, 웃음은 사라지고 공허함만이 남은 적막한 호텔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보려 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이리 움직여 보고, 저리 움직여 보았다. 어떻게 해도 불편했다.
이곳에 나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왜 나는 이곳에 온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나는 이곳에 정말 오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어젯밤은 진통제 없이 잠이 들었을지, 오늘 아침에 눈을 뜨긴 했을지, 발작은 없을지, 소변줄을 때고 소변을 볼 수 있게 될지,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등의 걱정과 고민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 내가 사람들을 만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밝게 웃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가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일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마케팀 팀장인 내가 참석하지 않아 다른 직원들이 힘들어질 것을 생각하면 가야만 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책임감이 나를 옭아매었다. 힘든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 테니까. 다들 그렇게 힘든 일 겪으면서 살아가는 건데, 별 것 아닌 일로 유난 떤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만일 이 일로 업무 성과가 떨어진다면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들이 물거품 될 것 같았다. 나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한다고. 좋은 성과를 내었다고.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그런 말이 참 듣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아침 8시까지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서 집에서 새벽 5시 반에 나와야 했다. 날이 짧아진 독일의 늦가을.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달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새벽하늘에 떠있었다. 달을 보고 출근해, 달을 보고 퇴근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할 정도로 쉬는 시간 없이 일을 했다. 공허하고 텅 빈 마음과 달리 뇌와 손이 참 바지런히도 움직였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조금 웃어보기도 했다. 출근길 기차역에서 지연이 되어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갑자기 쌀쌀해진 칼바람에 오들오들 떨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퇴근길 창문 너머로 지는 빨간 석양을 보며 울기도 했다. 베니의 흔적이 곳곳이 남아있는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기운도 마음도 남아있지 않았다. 베니의 냄새가 베인 티셔츠를 잡고 우는 것 말고는.
주말에는 기차를 타고 3시간 거리에 있는 베니가 있는 재활병원을 갔다. 맛없는 독일 병원식에 질린 베니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떡볶이, 불고기가 그리고 한국식 양념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음식을 하고, 식지 않도록 보온용기에 잘 담아 포장을 했다. 깨끗이 빨래한 옷을 여행용 캐리어에 넣고 주말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호자가 병실에서 함께 잠을 자면 안 되는 독일의 병원 문화 때문에 근처 호텔방에서 홀로 잠을 청했다. 낯설고 어두운 호텔방에서 잠을 뒤척이다가 울기도 하고, 성경을 읽기도 해 보았다. 적막하고 차가운 공기가 싫어 CCM을 틀어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시청해 보기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에 돌아와 식탁에 앉아 라면이나 감자칩 과자를 먹으며 대충 배를 채우고 있다 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웬만해서 나본적 없던 뜨거운 코피가 스르르 흘러나왔다.
몸과 마음의 상태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지만, 업무 성과와 매출은 매일 최고 기록을 찍었다. 회사는 나날이 성장했다. 입사 당시 총 직원 세명, 마케팅 담당자는 나 혼자 뿐이었던 회사는 남편이 뇌종양 수술을 하고 재활병원을 퇴원을 하는 5개월 남짓 사이에 스무 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회사가 되었다. 더 크고 좋은 건물로 이사도 갔다. 웹사이트 판매의 90% 이상이 인플루언서, 어필리에이트 마케팅을 통해 직접적으로 일어났고, 매출이 계속해서 올라갔다. 입사 당시 한 달에 2-30건 들어오던 주문이, 피크 시즌에는 천 건 넘게 들어오며 고공 성장을 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성과를 보여주면 인정해 주겠지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인정받고 싶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무서운 열심을 부렸다. 그놈의 인정이 뭐라고.
하지만 나는 끝내 그토록 받고 싶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몸의 병보다 더 무서운 마음의 병이 들어버렸다.
* 이 글은 주관적인 시각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의학적인 내용 등에 있어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거나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