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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Mar 14. 2021

아들이 사과하는 법

주말 어느 날 부자간 다툼의 기록

주말 오후면 언제나 그렇듯 놀이터로 외출을 하는 길이었다.

오늘은 딸은 아빠와 학원 수업을 가고 아들은 엄마와 놀이터를 가던 평소와 반대로, 딸은 엄마와 학원을 아들은 아빠와 놀이터를 가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 아들은 싫다고 투정 부렸지만 변경은 어려웠기에 아빠는 스케줄을 강행했고 그렇게 집 앞에서 각자 갈 길을 향했을 때였다. 엄마 바라기인 7살 아들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아빠는 밥 먹을 때 화도 내고, 혼도 많이 내고, 그네도 쎄게 밀지 못해서 싫은데... 엄마랑 가고 싶은데...."

"...... 왜? 아빠랑 가는 것 싫어?"


그러자 아들은 좀 더 큰 목소리로 항변했다.


" 응! 아빠는 밥 먹을 때 화도 내고, 혼도 많이 내고, 그네도 쎄게 밀지 못해서 같이 가기 싫어! 엄마랑 가고 싶은데!"


왠지 나름 애들한테 잘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머릿속에선 악역으로만 기억에 남는 것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에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억울함에 아빠는 아들에게 심술을 부렸다.


"그래? 그럼 집으로 돌아가자."

"아니지~!! 그래도 놀이터는 가야지!"

"......"


솔직히 미안하다며 애교를 부릴 줄 알았는데 너무 당당한 아들의 요구에 잠깐 대응할 말을 잃었다. 아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빠의 손을 잡아끌었고 아빠는 할 말을 고르며 아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뭔가 어색해진 부자 사이에는 놀이터를 향하는 동안 침묵만이 맴돌았다. 5분 정도가 흘렀을까? 참지 못한 아빠는 다시 물었다.


"아빠 싫어?"

"응."

"엄마 좋아?"

"응"

"......"


그제야 아빠는 아들이 성질을 부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7살 난 아들이 성질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으면서도 피는 못 속인다 싶어 왠지 뿌듯(?)했다. 생각에 잠긴 아빠와 여전히 성난 아들 사이엔 또 다시 침묵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번에 침묵을 깬 것은 아들이었다.


"그래도 아빠가 죽으면 난 슬퍼. 그러니까 죽지 마."

"...... 그래"


급발진하는 아들의 멘트가 영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툭 던진 한 마디에 살짝 기분이 풀리는 아빠였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그래도 아들이 아빠를 위하는 것 같아 괜히 주책맞게 간질간질 코 끝이 찡해졌다. 이제는 아빠가 대답을 할 차례였기에 아빠도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여기선 위험하니까 킥보드에서 내려."

"응"

"손"


아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걸었다. 둘 사이에 여전히 대화는 없었지만 공기는 사뭇 누그러졌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놀이터 앞에 다 왔을 때 아들은 말했다.


"나 사과한 거다."

"그게 사과한 거야?"

"응."

"알았어. 그럼 사과받은 거다."

"응"


아들은 쿨하게 대답하더니 아빠의 손을 뿌리치고 그네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외쳤다.


"뭐 해~빨리 와서 그네 밀어줘~!!


애들이 크다 보니 무심하게 툭툭 뱉는 말들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힘들고 때론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역시 언제나 아이들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의 저 무심한 한 마디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론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 끝없는 쫑알거림의 고통은 감수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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