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겨울인데도 햇살이 흔한 걸 보니 한국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해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강제로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퍽이나 위안이다. 한국에서의 햇볕이란 누구나 사시사철 아침에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갈 정도의 부지런함만 있다면 만끽할 수 있는 공공재라면, 독일에서의 해는 비싼 돈을 주고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사치재다. 그래서 독일인의 햇볕은 충전식이다. 4-10월의 여름 시즌 동안 햇볕 아래에서 태닝과 피크닉을 하며 따스함을 잔뜩 충전해 놓아야 11-3월의 회색, 하얀 하늘을 견뎌낼 수 있다.
독일의 겨울, 혹은 모든 위도가 높은 유럽 국가의 겨울은 매우 우울하다. 날이 매우 짧고, 그나마도 겨울 내내 구름이 껴서 해를 보기 힘들다. 독일의 겨울을 처음 겪는 사람들은 흔히 '독일에 철학자가 많은 이유가 겨울 날씨 때문이라더니'라는 감상을 말하며 혀를 내두른다. 10월, 11월경에 파란 하늘을 보게 된다면 독일인들은 올해 마지막 햇살일지도 모른다며 짐을 챙겨 해를 쬐러 눕기 좋은 곳으로 놀러 간다. 해가 뭐 대수라고, 하고 그 날의 햇살을 허투루 넘겨버렸다가는 다음 여름까지 반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남유럽을 제외한 서유럽, 북유럽의 겨울 일조량은 대체로 처참한 편이다. 2017년 12월 벨기에 브뤼셀의 일조량은 11시간 이하를 기록하면서 매우 어두운 12월로 기록됐다. 하루가 아닌, 한 달 내내 해가 난 시간의 총합이다. 그래도 평소에는 12월 기준 하루 평균 1.5시간 정도는 해가 나는 곳인데 말이다. 독일 겨울날은 오후 네시 반 경이면 완전히 저무는데, 두께를 가늠할 수 조차 없는 구름이 해를 가리면 3시에도 한밤중이 되기도 한다. 독일에서 살기 전 내 '날씨 좋다'의 정의가 쨍하고 푸른 하늘을 보는 날이었다면, 몇 번의 독일 겨울을 거치고 난 다음에는 '비가 오지 않고, 하얀 하늘에 해의 위치 정도는 가늠이 가능하게 해가 구름 뒤로 비쳐라도 보이는 날'로 바뀌게 되었다.
날씨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기분뿐만이 아니다. 나는 겨울 내내 잠에서 깰 수가 없었다. 수면시간과 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만성 졸림 상태가 독일에서는 반년간 지속됐다. 분명히 깨 있고 잠도 충분히 잤는데도 내 정신의 반은 아직도 자고 있는 상태가 최소 삼 개월을 가다가, 해가 뜨기 시작하면 해소가 된다. 여름이 쨍하며 내 정신을 바짝 끌어당기는 느낌이라면, 흐린 겨울은 무한 중력으로 나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여러 북유럽 국가들이 전 세계 최다 커피 소비량을 가진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겨울 동안 인간 구실을 하려면 카페인에 대단히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날이 너무 짧고 흐리니, 나는 동지를 믿는 신자가 되었다. 일 년 내내 12월 21일 동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동지가 지나면 이제 날이 길어질 일만 남았다고 기뻐하다 보면 왜 유럽인들이 그들의 최대 명절 크리스마스를 해가 다시 길어질 희망의 날짜 즈음에 박아 두었는지 이해가 된다. 인류 문명에서 크리스마스는 겨울의 생존율을 높이는 그들만의 지혜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 지혜는 아드벤트 칼렌더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훌륭하게 작동한다.
아드벤트 칼렌더는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하루에 하나씩 열어보는 작은 선물 주머니이다. 하루에 하나씩 초콜릿을 꺼내 먹는 것이 가장 흔한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아드벤트 칼렌더를 내놓는다. 매일 하나씩의 티백을 받을 수도 있고, 화장품 혹은 향수, 심지어는 작은 도자기 장식도 오늘은 뭐가 들었을까 두근두근 설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하나의 즐길 거리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의 거의 모든 도시에 한 달간 열리는 간이 마켓인데, 도시에 따라 거대한 트리를 세우거나, 회전목마나 회전그네 같은 놀이기구를 세우기도 한다. 먹거리와 따뜻하게 데운 와인(글뤼바인)이 마켓에 서는 대표적인 먹거리이다. 난 개인적으론 크리스마스 마켓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데, 한 도시에 몇 년 살면 매 년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사람이 세우는 똑같은 부스가 서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와인 마시고 취하러 가는 맛이라는데, 술도 좋아하지 않으니 영 재미가 없다. 하지만 질리기 않는다면 분명 보고 즐길 거리가 있는, 겨울을 나는 지혜다. 보통 전구로 장식된 마켓과 트리는 아무래도 해가 있는 낮에는 영 그 맛이 살지 않으니, 어둡고 우울한 밤을 반짝이는 특별한 날로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독일 겨울은 대체로 기온이 많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지만, 항상 비가 오고 습도가 높아 특유의 오싹함을 선사한다. 한국 겨울이 쨍하니 추운 느낌이라면, 독일 겨울은 음습하게 스멀스멀 기운을 빼 간다. 가끔 추울 때는 영하 15도까지 떨어지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은 영상 0~10도 사이를 오간다. 날씨와 기온을 교환한 느낌인데, 드물게 맑은 날이 보통 좀 더 추운 것 같다. 이런 축축한 겨울은 습도가 높기 때문에, 집에 곰팡이가 피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환기를 잘하거나, 난방을 틀어 기온을 높이거나, 혹은 작은 제습기를 놓는 것이 방법이다. 한국 여름엔 수십 리터가 들어가는 거대한 제습기가 필요하지만, 유럽의 습한 겨울에는 500미리만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작은 제습기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한국인에겐 고문 같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적응과 진화의 생물이기는 한지 독일인들은 흐리고 힘든 겨울을 크게 불평하거나 죽어가지 않는다. 그들에겐 흐린 날씨가 햇볕의 결핍이 아니라 해가 나는 날씨가 선물인가 보다. 인생 디폴트를 나쁜 것에 두면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인가 싶다. 하긴, 케냐에서 온 석사 동기는 여름과 겨울에 해 길이 차이가 난다는 것 자체를 신기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장소의 습관과 문화를 세상의 디폴트로 놓게 될 만큼의 대단한 적응력이 인간에겐 있나 보다.
겨울 내내 잠에서 깰 수가 없어서 내가 다녔던 회사 제도인 유연근무제를 자체적으로 이용해볼까 하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잠에서 깰 수 있는 여름 기간 내내 초과근무를 해서 일 하는 시간을 기록하는 계좌 안에 추가 시간을 잔뜩 쌓은 다음, 겨울 내내 하루 6시간 이하를 일하는 식으로 그걸 까먹고 사는 것이다. 겨울엔 어차피 카페인의 도움을 빌려도 하루 종일 자고 있으니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름에는 정신이 비교적 맑으니 좀 더 일하는 식으로 시간을 운용하는 것이다. 이 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고 다녔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내 말을 오해했다. 여름엔 날씨가 좋아서 밖에 나가 놀고 싶으니 여름에 적게 일하고, 겨울엔 어차피 다른 할 일도 없고 우울하니 추가 근무를 하겠다는 생각이 그들의 정신에선 보다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던 거다. 하긴, 날씨가 좋아서 열심히 일 할 생각을 하는 것도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긴 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기왕이면 해를 갈망하며 살기보단 해가 너무 흔해서 해를 피하며 살고 싶다. 해가 짧아지고 우울해질 걱정도, 겨울이 오고 있다는 두려움도, 모두 지나친 집착이 되어 나를 해한다. 비록 삶이란 어디서 살 것인지를 일조량 하나로 정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캘리포니아, 기왕이면 제주도는 모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기본적인 갈망이 아닐까. 사람의 기분도 식물처럼 해를 먹어야 무럭무럭 큰다.
Henry, J. (2018). Ain't no sunshine: winter is one of darkest ever for parts of Europe,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jan/19/aint-no-sunshine-winter-darkest-eur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