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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Oct 25. 2024

철문 앞에서

철문 앞에 우두커니 섰다. 오늘이 마지막. 앞으로 마음을 곤두세우지 않고 이 문을 일별 할 수 있어 홀가분하다. 황금 버튼을 살짝 눌렀다. 잠자코, 문이 열리기 기다린다. 이 높고 두터운 아이보리 벽과 차고 단단한 연회색 철문이 나와 그 세계를 오래도록 갈라놓았다. 콘서트 홀 조형미술품 빨간 오토바이는 허리를 길게 늘어뜨려 날아오를 듯하다. 공용 주차장 좌우로 늘어선 푸른 벚나무 이파리를 본다. 봄이면 다른 도시 어디보다 바삐 벚꽃이 피고 지고, 가을이면 서둘러 단풍이 지고 떨어졌다. 이 여름이 가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다.


몇 해나 보았어도 여전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주소가 청동 명패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어슷하게 봐야만 보이는 알파벳, 그 아래 볼록한 버튼은 빛에 반사되어 미세한 스크래치가 광선처럼 번쩍거렸다. 사람들의 손길로 반드르르해진 문고리는 노란 테니스 공 같다. 겨울에는 전기 통한 것처럼 찌릿했고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사늘하게 찼다. 지금까지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린 시간을 더해본다. 매일 2분씩 두 번, 매주 다섯 번, 매달 스무날, 6년.   


6년 전 이 문 앞에 여기 섰을 때 남편에게 살포시 몸을 기댔어도,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의 팔짱을 끼고 손목을 갈대처럼 늘어뜨렸다. 기분을 묻는 그의 눈을 은근하게 피하고, 마음을 졸였다. 아이가 독일에서 어린이집에 가는 것만으로도 떨려왔다. 비비 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파우더를 톡톡 치고 입술을 살짝 바르고 셔츠가 구개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머리를 촘촘히 다시 묶고 안경에 묻은 먼지를 소매로 싹싹 닦아 냈다. 평소와 달리 살짝 들뜬 듯 웃는 걸 보니 남편은 이 변화가 신나는 것 같았다. 


빌라라는 이름에 맞는 높은 천장, 세월을 가늠하게 하는 짙은 갈색문과 철제문손잡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담당 선생님이 1층 식당과 부엌으로 안내했다. 계단을 오르면 껴 맞춘 나무판자들이 끼익 비명을 질러댔다. 벽에는 아이들의 작품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2층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아침 인사를 하는 놀이 공간과 공사장, 역할극 방, 아이들 각자의 신발장과 옷걸이 그리고 화장실까지 훑었다. 3층으로 올라갔다. 비서 사무실과 선생님들의 휴식 공간,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침실이 있다고 했다. 내 아이도 거기 마련된 자기 침대에서 낮잠을 자게 될 거라고. 3세 이하 유아들이 잠들어 있는 방을 지나면서 우리는 발 뒤꿈치를 들고 살포시 건물 끝 사무실에 들어갔다. 


프라우 윈터라고 했다. 코 피어싱을 했고, 부드럽고 얇은 흑발과 대조적으로 흰 피부와 진한 갈색 눈동자 선명했다. 스무 살에 무척 예뻤을 거고 중년인 지금도 여전히 예쁜 그녀는 <빨간 머리 앤>의 다이애나를 닮았다. 당황하면 얼굴이 겨울 눈 속에도 빨간 들장미 열매 빛(Hagebutte)으로 붉어졌고 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우리 어린이집은 지역 00 회사에서 연계 지원되고 있으므로 직원들의 자녀들만 입학할 수 있어요. …….” 이어지는 설명 중에도 그녀는 이따금 내 얼굴을 보고 이해하는지 묻는 눈빛을 보냈다.  

“금방 이거 무슨 말이야?” 반복된 무언의 질문에 압박을 느끼고, 상황 파악이라도 해야 해서 남편에게 물었다. “뭐 어떤 거? 여기는 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과 세 살 이상을 돌보는 유치원으로 나눠져 있어. 아침에 오면 똑같이 모닝 크라이스라고 해서 모여 앉아 인사를 나누고, 유치원 아이들은 각자가 원하는 방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놀 수 있대.” 미리 알아 두면 좋은 사항이 빠진 것 아닌지, 아무래도 남편이 대충, 자기 관점에서 비교적 중요한 부분만 간추려서 통역한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집에서 무슨 언어를 쓰세요? 영어, 아님 중국어?” ‘영어’라는 말은 내가 아는 영어 발음과 흡사했으므로 알아들었다. “아이와 어떤 언어로 소통하냐고 물으셔.”“우리는 영어로 하고, 저는 아이와 한국어로, 남편은 독일어로 해요.” 나는 영어로 답했다. 프라우 윈터는 몇 가지 서류를 가리키며 이어서 설명했다. 남편은 친절한 눈으로 예의 바르게 들었다. 서류의 명조체로 된 제목을 보고 그 뜻이 무엇일까 그들이 무슨 이야기하는 것일까 추측했다. 추측과 확증 간격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 공간을 떠나 무중력에 떠 다니는 것 같았다. 프라우 윈터는 다시 몇 번 내 표정을 살피더니 남편 눈을 보고 안심했다. 


“여기에 사인하면 돼요.” 그 소리에 잠을 깨듯 눈을 번쩍 떴다. 프라우 윈터는 빳빳한 흰 종이에 공란을 검지로 가리키며 파일을 내밀었다. 거기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걸 눈치챘다. “당신은 여기다 사인하는 거야.” 남편은 자기가 먼저 사인하고 뒤에 남은 공간에 사인을 하라고 알려줬다. 


“이게 다 뭐야?” “우리가 동의한다는 말이야.” “뭘 동의하는데?” “그러니깐 아이가 여기에서 생활하게 부모로서 동의하고, 그런 전반에 있어서 선생님과 상의를 하고 협조하겠다는 말이지.” 그런 내용이라면 적극적으로 사인을 해야 하겠다. 다만, 그 전반을 언급하기 전에 구체적인 내용을 나는 하나도 설명받지 못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남을 기다리는 게 하는 건 싫다. 슬쩍 위의 내용을 훑었다. 잘 모르겠지만, 볼펜을 꼭 쥐고 사인했다. 독일인 이름 옆에 한국어 이름 사인은 유난히 이상해 보였다.


“궁금한 거 있으세요?”프라우 윈터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남편도 어린이집은 처음이라 마땅한 질문이 떠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때 아이의 안위를 위해 남편이 나 대신 까다롭고 주도 면밀하게 질문하길 바랐는데 그는 원체 아무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털털한 남자였다.


어린이집을 나오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아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한 거야?” “이것저것.” “뭐가 궁금해?” “나는 한 개도 못 알아들었으니깐 뭐가 궁금한 건지도 모르겠어. 중요한 이야기 전부? 기억나는 거 모두.” “아이가 어떻게 적응하고, 선생님들이 하는 역할, 그리고 유치원 일상이 어떻게 짜여 있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등에 대해서 들었어. 다음 주부터 아이의 적응 기간이 시작될 거야. 아침 아홉 시에 데리고 가고, 첫날은 한 시간 어린이집에 같이 있으면 돼. 파일 안에 시간이 적혀 있을 거야.”


“내가 가야 하는 거지?” 남편의 설명을 이해하기 전에 나는 어린이집 적응을 걱정했다. 돌 배기 아이의 첫 사회생활 적응이 아니라, 그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몇 시간 동안 버텨야 할 나 자신을 염려했다. 낯선 이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말도 못 하는데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 아이와 소통하는 걸 나를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아침에 도착하자 프라우 윈터는 어린이집 적응 시간표를 주며 설명했다. “하루에 30분씩 늘려 갈 거예요. 첫 주는 계속 엄마가 함께 있어 주셔야 하고요. 2주 때는 엄마가 잠시 사라지거나 한 시간 동안 떨어지는 훈련을 하고. 최종적으로 3주 후에는 여기서 낮잠까지 자게 돼요. 시간이 걸린답니다. 뭐 궁금한 거 없으세요?”


“아니 없어요.”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었다. 물끄러미 다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 아이를 관찰하다가, 아이와 놀아주는 프라우 윈터의 옆모습을 보았다. 가끔 그녀는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나는 선생님 얼굴을 훔쳐보는 것으로도 까끄름했다. 궁금한 걸 영어로 물어볼 수 있었지만. 시간은 당시에는 분명하고 당연하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든다. 예전에 배운 단어는 생각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꺼낸 대체 단어는 의미와 어긋나 다른 단어를 찾으려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물어볼 때마다 어법을 정리하느라 얼굴이 빨개지고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녀는 거울에 비친 민망한 자신만큼 거북스러웠다. 그 마음을 잘 알았으므로, 그 당혹함을 덜어줄 수 있다면 최대한 적게 물어야 했다. 


커피를 마시고 남은 통에 구멍을 뚫어 저금통을 만들었다. 아이는 그걸 가지고 놀았고, 선생님은 아이들이 크기가 다른 동전들을 집어서 구멍에 맞추는 것이 손가락 근육을 훈련하는데 좋으며, 땡그랑하고 떨어지는 소리로 청각을 깨운다고 알려줬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설명이 끝날 때마다 어색한 정적이 끔찍이 두려워 다른 화제를 재빨리 생각하려 했다. 말하려는 화제가 지극히 사적인 것이 아닐지 조심스러웠다. 괜히 말을 했다가 실수하는 것보다 아예 입을 꾹 입을 다물겠다고 또 그게 서로에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망설이며 침묵하는 나를 읽은 듯이, 선생님은 장미 빛으로 얼굴을 붉혔다. 여러 번 눈을 깜박이고 내게 다가오는 발걸음이 주춤거렸다.  


아이와 놀아주려고 했다. 아이와 노는 법을 모른다는 걸 숨기고 싶었다. 타인에게 초보 엄마처럼 보이는 것도,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정체가 이미 탄로 난 것 같았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나는 엄마지만 그걸 배우지 않았고 본 적도 없다. 한국이었다면 누군가를 보고 흉내라도 냈을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선생님과 즐겁게 대화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매일 30분씩 늘어갈수록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지 않은데 그런 척하는 연기는 갑갑한 갑옷이고 거기에 늘어지는 철제 장신구를 단 것처럼 가중되어 밑으로 가라앉았다. 또 사소한 일이 신경 쓰였다. 적응기간 동안 아이의 기저귀는 내가 갈아야 하는 건지, 아이들을 픽업하는 쳐다보듯 마는 듯하는 엄마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지, 화장실을 자주 써도 되는지, 집에 갈 때 실내화는 어디에 두고 가야 할지. 집에 돌아갈 때 아이 옷걸이 앞에 벗어 둔 내 핑크색 실내화가 불편해 보였다.

 

적응 기간 동안, 다른 아기들을 담당하는 젊은 선생님 한 명이 나를 보고 본 체 만 체 했다. 아기 기저귀를 가는 게 사명이라는 듯이 할리우드 여배우처럼 허리에 아기를 걸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같은 공간, 2미터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그녀가 나를 보고 외면했다. 눈빛은 적막하고 추웠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보는 것처럼 일별하고 고개를 돌렸다. 지나가면서 얼굴이 스쳤고 인사한 적이 있건만그게 무슨 대수냐고, 되묻는 것처럼. 


“너네 무슨 얘기했어?”라고 물으면 비밀을 숨기기 위해 우르르 도망가는 같은 무리 친구들. 내가 청소년이었더라면 끈질기게 물었을 것이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비밀을 캐기 위해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다. 하얀 얼음 밑은 텅 비었다. 밟으면 파삭하고 얼음이 깨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그걸 깨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상쾌한지. 내가 깨지는 얼음이라면? 한 번은 무심했겠고, 두 번은 우연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고 세 번째는 불쾌했다. 기분이 저조하면 그 시선에 마음이 철썩 들러붙는다. 무례한 사람들. 그런 대우를 당한 게 분통이 터져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이런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하나.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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