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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누구에게는 아픔일 수 있다

함순례, 봄인데 말이야 ㅡ복희

by 원더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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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봄이 누구에게는 아픔일 수 있다. 며칠 전 세월호 10주년이 지났고,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으며 눈물을 훔쳤다. 시 구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 다 나오지 않은 슬픔일 수도 있고, 그때의 억울함과 분노가 이제는 무뎌지고 흐물해져 흘러내리는 생리혈 같은 것일수도 있다. 이 시집은 언제쩍 화재와 크레인 전복 사고를 연상한다. 시인은 어떤 마음에서 시어를 엮을까. 궁금해진다.


진은영 시인처럼 함순례 시인의 이 시에서도 분명, 현실이 녹아있다. 배경이라고 하면, 재개발아파트라는 힌트. 이 시는 내 우물처럼 깊고 좁은 세계를 벗어나 크고 너른 세상이 있다는 걸, 그 세계에서 나보다 힘든 이 있다는 걸 보라고 일러준다. 그런 시가 유행하던, 트랜드로 하던 그런 때가 아마, 내가 대학을 다니기 전, 운동권의 그 시기라고 하지만, 언제나 빈 내 그릇을 채우기에 바빴던 나는 사회를 외면했다. 지금은 고국을 떠나, 더욱 그렇지만, 거리에 반비례하게 그런 사고들에 마음이 더 아프다.


4년 전에 읽고 필사한 시를 다시 읽는다. 이제 행과 연의 구분이 중요하다. 필사했던 것이 부정확해서, 시를 찾아 헤맸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은 전자책이 없다. 매일 아침마다 가도 적선을 해주시는 블로그 이웃에게 시를 달라고 부탁했다. 공교롭게도 가지고 계신 시집 중에 없어서, 나를 위해 시집을 구매하고 사진까지 올려주셨다. 인터넷 이웃이라지만, 이런 베품에 뭉클해진다.



*명조체가 시다.

봄인데 말이야

-복희

아파서

많이 아픈 몸으로 너는 누워 있고

간단없는 통증에 글썽이는 눈 파르르 떨고 있고

간단없다: 계속하거나 이어져 있던 것이 끊이지 아니하다.


-봄인데 말이야 눈이 오는 것 같다. 봄인데 생동하는 봄인데 말이다. ‘너’는 누워있다. 그 통증이 끊이지 않는다. 파르르 떨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선하다.


너는 누구일까?

나는 걷고 있지


-너는 아파서 누워 있는데 나는 걷고 있다. 독자를 환기를 시키고, 나와 너의 관계를 궁금하게 한다. “봄인데 말이야” 뒤에 복희라는 글자가 신경 쓰인다. 어쩌면, 너란 문자 그래도 복희일지도 모른다.


성내천변은 거대한 반란지대

희고 노란 봄년들이 발칙하게 손을 흔들고

재개발아파트 허물어진 얼굴로 그런 봄년들을 멀거니 내려다보는데


-이 시에서 “봄년”이라는 단어를 최고로 꼽는다. 봄 꽃, 대신 봄년이라고 확 질러 버리는 이 상스런 말이 뇌리에 박힌다. 류근 시인의 <폭설>에 보면,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 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속엣말, 진심이 모든 장르의 문학에 통한다. 지르지 않고 참고 있는 모든 이들을 대신해서 질러 주는 노래 불러주는 시인의 몫이다.


-묵은 아파트들이 발칙하게 아름다운 봄처녀와 대조적이다. 둘이 서로 마주한 모습을 보는 게 긴장감마저 든다. 이제 분명하게 드러났다. ‘너’는 재개발 아파트, 혹은 묵은 것들, 구시대적인 건물이나 제도일 수도 있겠다. 무너뜨리고 고치고 새로 지어야 하는 대상. ‘나’는 앞서 가는 시대, 미래라고 보자. 봄을 맞아 봄년들은 밝아오는 편에 섰다. 그리고 허물어진 그 시대에 맞선다. 그 반대편에 재개발 대상 아파트가 볼썽스럽게 허물어져 있다.


저 무장한 발랄함도 긴 겨울을 건너온 통증이니까

아프다는 건 열망이 남아 있다는 거니까


-재개발을 앞둔 그 흉직한 모습, 그리고 그걸 철거하려는? 그런데 봄년들이 무장하고 발랄하게 손을 흔든다. 그것은 허물어진 그 시대를 변하지 않겠다는 반항같다. 1연에서 말한 그 아픔과 통증은 다름 아닌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는 찬란하게 걷고 있지


-두 번째는 찬란하게 걷는다. 나는 봄볕을 받아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걷고 있다.


이 도도한 무늬들 온몸에 빨아들이는 거지

오랜 시간 천천히 낡아간 집이 더디게 새 둥지를 틀 듯

거머리가 꿈틀꿈틀 나쁜 피 핥듯


-이 연의 주어는 나다. 찬란함과 도도한 무늬들은 비슷한 심상을 그린다. 나는 그렇게 화려하게 변화를 앞장서고 주도한다. 그러나 복희는 아프다. 그 생동하는 변화의 흐름에서 인간은? 복희라는 이름으로 대변한 인간들은 고통받을지도 모른다.


“함순례 시인은 이번 시집<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에서 도시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몸집이 불어나고 있는 맨발의 걸인, 쇼윈도에 갇힌 젊은 청춘, 소낙비에 기울어도 심장이 파닥거리는 ‘무서운 여자들’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향해 뻗은 수많은 에움길을 모더니즘 형식으로 전유하며 리얼리즘과의 결합을 꾀하고 있다.” 시집 소개 中


지금 밖은 온통 새살, 새살 돋아나는 봄인데 말이야

병든 살을 도려낸 네 발에 고스란히 이식할 거야

너, 살아오면

함순례,<나는 당신이 말할 수 없는 말하고>


-봄이어서 새살은 돋지만, 새 살이 돋기 전에는 상처와 부스럼을 제거해야 한다.

네가 살아오면, 그럴 가능성이 없는 마치 역설적으로 말한다. 복희는 행운과 기쁨을 말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고통받고 있어서 언제 획득할지 모르는 요원한 꿈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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