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시인
이 시는 고명재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건>에 수록되어 있다. 읽고 좋아서 책갈피를 넣어둔 시들이 많았다. 이 시는 그런 시가 아니다. 시를 읽고 기록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되새겼다.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란 한 가지 사물을 보고 과거와 미래, 시공간을 넘어 ‘기억의 다발’들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장석주의 대추 한 알 같은) 즉, 시인은 가공할 만한 상상력을 가졌다. 그래서, 미물도 두려워하고 공경하니 삶은 고달프겠지만 독자는 그 덕에 시를 읽을 수 있으니 감지덕지.
화자는 미더덕을 보고 할머니(엄마, 이모, 누구나 가능하다)를 떠올리고, 그와 함께 한 시간까지 소급한다. 그리고,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그 시간의 아름다움과 그 존재에 대한 기억의 아름다움을 더 가지고 싶은 게 시인의 마음이다.그러므로, 한 마디.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라고 한다.
재밌는 점은, 미. 더. 덕의 음절을 하나씩 곱씹다가 이어서 발음해 보면, 미더덕이란 이름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말이 탄생한다. 아름다울 미 자에, 더덕 하고 하면, 더 달라고 조르는 것 같지 않은가.
당신에게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젖은 것들의 물주머니를 보고 있으면
당신을 데려간 물혹이라든가
개구리라든가
젖이 늘어진 어미 개라든가(측축한 촉감)
비릿한 어촌에 걸어둔 청어의 눈 속에
부푸는 하늘 안쪽의 짙푸름이라든가
미더덕을 보는 화자의 눈에서 시작한다. “젖은 것들의 물주머니”는 미더덕, 더 나아가면 자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더덕을 보고 있으면, 엄마, 할머니, 혹은 화자가 사랑했던 그러나 지금은 여기 없는 사람이 떠오른다. '물혹', '촉촉한 개구리', '젖이 늘어진 어미 개' 은 그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그 사람을 상기시킨다.
“부푸는 하늘 안쪽의 짙푸름”은 청어의 눈을 닮았다. 축축하고 푸르다. 그 색은 청어의 몸, 은색과 대조되어 더욱 푸르다 못해 짙푸르다. 어쩌면, 이것은 그리워하는 사람의 늙은 눈일 수도 있고, 지금 미더덕을 보고 그리워서 촉촉해진 나의 눈일 수도 있다. 또 청어의 촉촉한 눈 속에서 그 짙푸름, 하늘이나 바다 같은 것, 즉 좋은 추억이 떠오른다.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헐떡대면서 좀 더 살아볼 것처럼
부푼 몸으로 누운 채 검은 양말을 벗고
벌써 끝이 났다고 장례가 참 헛헛하다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미더덕은 나다. 나는 울고 있다. 더 사랑받고 싶다. 그것보다, 그 사람과 함께 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누구를 사랑하는 일은, 그를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삼 년 상을 하며 그 사람을 잃은 슬픔을 더 뭉갤 수 있다.
나에게 삼년상을 허락해줬으면
조선시대의 물렁한 마음으로 되돌려줬으면
그러면 홍시를 먹다가 씨앗을 물고
축축한 입술 감나무 한 그루 불릴 수 있는데
당신이 심어둔 집 앞의 나무를 본다
당신이 묻힌 뒷산에 냉이가 번진다
더덕을 캔다 나무 방망이로 흰 다리를 찧는다 은행을 줍고 전어를 굽고 오징어를 썰다가 눈이 올 땐 달을 보며 군밤을 파먹는다
우리가 함께 입을 벌린 순간들
(먹는 행위가 동사로 거듭나는 찰나를 포착한 표현)
제철 음식을 한 번 되돌릴 시간을
무심한 세월 속에 당신(할머니)와의 추억은 무성하다. 시간의 흐름을 축축한 홍시를 먹고 남은 씨앗으로 감나무를 자라게 할 수 있다고 기발하게 표현했다. 우주가 먼지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처럼, 황당무계하지만 시간을 소급해 보면, 실로 그러하다. (이런 상상력이 과연 시인을 만들고 시인을 연명케 한다.) 나무가 자랄 만큼의 시간, 뒷산에 냉이가 필 만큼의 시간, 제철이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나는 지나왔다. 세월은 무심했지만, 그 속에서 당신을 추억할 수 있다. ‘함께 입을 벌린 순간들’. 즉 함께 마주 보고 먹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들이다.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터뜨릴 것처럼 아름다움은 물이 아닌가.
한때의 바다를 손에 움켜쥔 채로
으드득 떨며 얇은 미닫이문을 열면
구겨진 요 위에
폭발하는 수평선
복수(腹水)를 안고 뒤뚱뒤뚱 걷는 사람들
5연에서 화자는 다시 미더덕으로 돌아온다. 미더덕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 닮았다. 복수와 물혹은 같은 병을 앓았거나 미더덕이 바다를 움켜쥔 모양을 형용했다. 바다는 그러니깐 아름다움의 근거다. 아름다움은 시간이다. 기억이다. 모든 이들은 그걸 껴안고 살아간다. 바닷물이라는 것은 그런 슬픔이다. 그것때문에 뒤뚱뒤뚱 걷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있다.
도토리 속엔 도토리 줄기가 푸르게 자라고
미더덕 속엔 짙푸른 고래가 웅크려 있고
내 머릿속엔 수류탄 같은 기억의 다발이 있어서
다디단 행복이 입속을 뒤집어놓을 때
노란 침으로 베개가 흠뻑 젖었다
당신을 떠올리면 세상이 좋아서
나는 기어코 풍선을 터트려버렸다
씨앗-감나무, 도토리-상수리, 미더덕-고래에서 보면, 작은 것에 큰 세계가 숨어있다. 미더덕에게는 큰 고래가 있다. 고래가 사는 곳은 미더덕과 다르지 않는 바다다. 그 바다에는 큰 기억들이, 수류탄같이 폭발력을 가진 기억들이 있다. 청어의 눈에서 짙푸름을 보았던 것처럼 좋은 추억이 있다.
마지막 시구가 핵심이다. 세상이 좋아서, 풍선 그 재미난 장난감도 터트리고, 그 부푼 마음도 터트릴 수 있다. 이렇게 막 나가고 천진난만한 심상은,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다>에서 "눈","개"."아이"로 표현된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따라오는 행복한 기억이 세상을 예쁘게 만들고, 나는 그 세상이 좋아졌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면 안 되겠나.
미더덕을 보고 할머니를 생각하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나는 사랑을 더 가지고 싶고,)
아름다움을 터뜨릴 것처럼 그 부푼 마음을 가지는 게 화자가 바라는 것이다.
미더덕은 바닷물을 품고, 바다는 짙푸름이고, 그때 할머니와 함께 한 아름다운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면 시계(시계)는 더 확장된다.
할무이, 우리 그때 좋았지요.
할무니, 어디 갔어?
할무이, 보고 싶다.
…
미더덕. 당신과 함께한 아름다운 시절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