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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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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뇌 신경과 방문

오보라 씨는 몇 시간 뒤, 눈을 떴다.


공황장애 약에 정확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심장 근육이 조여오던 것이 발작까지로 이어지지 않았던 걸로 보아서는 도움이 되긴 되는 것 같긴 했다.  


호흡곤란은 가신 듯했으나, 오른쪽 얼굴, 목, 어깨, 팔, 다리, 발가락 끝까지 마취주사를 맞아 마비된 느낌이 오보라 씨를 지배하고 있었다. 발작이 발생하는 것이 화산 폭발이라면, 지금 오보라 씨의 상태는 보글보글 끌어 오르는 용암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라도 다시 발작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보라 씨가 한 것은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보라 씨는 오른쪽 팔과 다리가 자신에게 잘 붙어 있는지 가끔 확인해야 했다.


‘난 정말 공황장애인 걸까? 그러기엔 오른쪽이 마취되는 증상은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고민은 늘 의학지식이 충분치 않 자신을 탓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나, 응급실을 포함하여 이미 여러 개의 병원을 다녀왔지만 수확이 없던 오보라 씨는 돌아오는 토요일로 예정된 정신과 진료를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 아니 그곳에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과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만, 사실 그 보다 오보라 씨가 그 순간 더 고민했던 건 또 다른 발작이 비상약이 주어질지도 모르는 토요일까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새벽 내내 오보라 씨는 증상이 발현했던 작년 이후 하고 또 했던 짓이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이 증상을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했다.


안면 마비

백신 부작용

우측 마비


혹시 이전에 놓친 글이 있을까 싶어 보고 봤던 글들이지만 또 샅샅이 뒤졌다. 그때 단어를 조금 바꿔서 검색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오보라 씨 머릿속을 스쳤다.


편측 마비


검색을 누르자 의학 기사들과 블로그 글들이 쭉 떴다. 블로그에는 병원 홍보 글이 더 많은 듯하여 ‘편측마비 뇌졸중 아니어도 나타날 수도’라는 기사 글을 하나 클릭했다.


편측마비는 뇌졸중의 전조 의상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뇌졸중과 상관없이 편측 마비를 겪으시는 환자들이 있다. 자율신경계 이상 활동으로 발생하는 신경병을 겪는 환자들은 편측 마비를 겪을 수 있다.


기사를 읽던 오보라 씨는 어떤 한 단어에 그물에 잡힌 물고기처럼 걸려버렸다.


‘자율신경계 이상?’


무슨 말인지 다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 의사라면 외상이 아니어서 환자의 진술에 의지해야 되는 편측마비를 병으로 인지해줄 것 같았다. 적어도 오보라 씨가 너무 예민해서 이렇게 말한다거나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실로 혼자서 남에게 보이지 않는 이 증상과 싸우고 있는 오보라 씨는 참으로 외로웠다.


다행히 기사에 등장한 그 의사가 있다는 병원은 오보라 씨의 집에서 아주 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보라 씨는 이런 정보를 찾고도 자신만 좀 더 참으면 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내일 아침에 바로 저 병원에 가볼까?’

‘내일 나는 이 몸상태로 출근을 할 수 있는가?’

‘내일 내가 주도하는 미팅 있는데…….’

‘며칠 기다리면 정신과 예약인데 좀만 더 참아볼까?’

‘여기도 가면 원인은 모른다고 하는 것 아닐까?’

‘그래도 호흡곤란 상황이 오늘 당장 또 오면?’


오보라 씨는 안 그래도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오보라 씨의 머리는 돌고 도는 생각들의 샅바싸움에 과열되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일단 다시 잠을 자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오보라 씨의 노력은 30분 뒤에 깨는 것으로 만족되어야 했다.


아침에 마리를 학교에 넣은 오보라 씨는 이제 정말 결정을 해야 했다.


“회사? 병원? 회사? 병원?”


오보라 씨는 이번에도 직감을 따르기로 했다.

‘평소에 오보라였으면, 이런 것으로 회사 늦으면 주변에 민폐 된다고 쓰러져도 회사에 가서 쓰러졌을 텐데, 이 상태로 회사에 갔다가 또 발작이라도 발생하면 더 민폐가 될 것 같아’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오보라 씨는 회사와 반대로 가는 전철을 탔다. 오보라 씨가 그토록 애증 하는 보라 다움을 벗어난 행동을 해야 해서 마음에 거슬렸지만, 보라 다움도 보라 씨가 죽으면 소멸될 하나에 불과했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묘비에 이 사람은 평소에 남은 배려하여 절대 민폐를 끼치지 않았고 이렇게 쓰일지도 몰라. 도대체 그게 나한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보라 다움을 포기되는 아니 살짝 훼손해야 되는 순간이었다.  오보라 씨는 전철에서 지훈 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지훈 님, 저 아침에 병원에 들렀다 가게 되어 한 시간 가량 늦을 것 같습니다. 저녁에 메이크업하겠습니다.  


지훈 님은


많이 아프신 건 아니에요? 오늘 미팅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라고 말씀하셨지만 오보라 씨는 회사를 빠질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그럼요, 진료 보고 가겠습니다.


오보라 씨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의 중간보고인 만큼 이번에 확실히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남기고 싶었다. 물론 오른팔만 오보라 씨를 도와준다면 말이다. 오보라 씨는 이 순간에도 오른쪽 입이 마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해보려 노력했다.


인터넷에서 건물 외관 사진을 보고 왔지만 오보라 씨가 도착한 병원 건물은 생각보다 더 웅장했다. 물론 응급실 때문에 방문했던 대학병원들보다는 작았지만, 꽤 상급병원으로 분류될 것 같았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데스크에 서 있는 직원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오보라 씨는 이미 몇 층으로 가야 되는지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눈이 마주친 직원분이 민망할 까 봐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신경과 가려고 하는데.”

“네, 3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저 직원분이 저 자리에 서 있는 것에 보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오보라 씨는 훼손된 보라 다움이 회복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3층에 문이 열리고 오보라 씨는 위에 걸려있는 안내판을 읽었다.


“뇌… 신경… 과”


돌고 돌아 다시 신경과라니 헛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오보라 씨는 이제 그게 치과여도 상관없으니 오른쪽 마비의 실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무언가를 찾아야 만 했다.


“오늘 처음 왔는데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을까요?”

“제가 백신 2차 접종 이후 편측 마비, 우측 마비가 있어서요.”

“아, 네. 혈압 먼저 재시고 이 종이 먼저 작성 좀 부탁드릴게요.”


간호사는 마치 이런 증상을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는 듯이 오보라 씨를 대했고, 오보라 씨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혈압 재는 일은 물론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오보라 씨에게는 살짝 불편한 일이었다. 저혈압의 소유자인 오보라 씨는 혈압 기계에서 늘 에러 결과지를 받아야 했다. 두 번 에러가 나자, 간호사는 수동 혈압계를 가져와서 혈압을 재주 었다. 그냥 저혈압인 것뿐이었지만 오보라 씨는 간호사에게 자신이 일을 더 시키게 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혈압을 재고 자리에 앉아서 간호사가 작성해 달라고 준 종이를 보았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진료실 안에서 환자분들이 본인 불편한 증상을 자세히 조리 있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진료 전 증상을 미리 적는 것은 최대한 환자분의 증상을 이해하고 의사한테 물어보고 싶은 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 적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귀찮더라도 자세히 적어주시면 진료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1.    언제부터/ 어느 부위가/ 어떻게 불편하지 자세히 작성해주세요.

2.    저한테 묻고 싶은 질문들을 적어주세요.



‘보통 병원에서는 체크박스로 되어 있는 설문 같은 거 하라고 하지 않나? 여기는 서술을 하라고 하네. 특이하네 그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대충 하는 법이 없는 오보라 씨는 저려오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페이퍼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보라 씨는 MBTI에서 TJ를 소유한 사람답게 자신의 증상이 나타났던 시점부터 최대한 디테일하게 설명을 담았다.


작년  

l  여름에 백신 2차 접종 며칠 뒤, 오른쪽 턱에 마취주사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발생하여 오른쪽 몸 전체로 퍼져나감

l  대학병원 응급실 내원 후 뇌졸중으로 의심되어 신경과 입원 후 MRI 진행했으나 뇌졸중이 아니라고 하여 아스피린 처방 후 퇴원

l  가을, 겨울은 이따금씩 오른쪽 마비 증상이 왔다 갔으나 전체적으로 괜찮아졌다고 판단



올해

l  초 여름 빨래 널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다시 동일한 현상이 발생 다만, 마비가 오른쪽 몸에서 멈추지 않고 심장 쪽으로 번져서 호흡곤란이 와서 응급실 갔으나, 원인이 없다고 하여 근육이완제 맞고 퇴원

l  며칠 뒤, 동일한 호흡곤란 증상이 와서 다시 응급실 방문하였으나 또 원인이 없다고 하였고 담당의사가 신경과와 정신과 방문 추천함

l  호흡곤란 형태가 공황장애와 유사하게 보여서 정신과 예약했고 이번 토요일에 방문 예정

l  내과, 가정의학과, 한방병원, 산부인과 등 방문하였으나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한 상태

l  현재, 오른쪽 턱부터 발가락 끝까지 마취된 느낌이 계속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


여기까지 질병 보고서를 작성해 버린 오보라 씨는 2번에서 질문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의사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라……”


Q. MRI 검사를 여러 번 했는데 이상 없다고 나왔습니다. 여전히 뇌이 상일 수 있나요?

Q. 공황장애 일 수도 있다고 해서 이번 토요일에 정신과 예약을 했습니다. 호흡곤란이 공황발작이라면, 오른쪽 마비 증상은 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는 걸까요?


오보라 씨는 자신이 ‘뇌신경과’를 찾아왔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증상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 줄 누군가를 찾으러 왔다는데 집중한 듯했다.


“오보라님, 다 쓰셨을까요?”

“아, 네.”

“그럼 핸드폰에 녹음 어플 좀 켜 두실게요. 진료 내용 녹음하실 거라서.”

“네? 녹음이요?”

“네, 원장님께서 진료 후에 다시 들어 보라고 하실 거예요.”


갈수록 점점 특이한 병원에 잘못 온건 아닐까 생각을 하던 때, 간호사가 오보라 씨를 호명했다.


“오보라님, 진료실 들어가실게요.”


의사 선생님의 방은 한쪽 벽면이 두꺼운 의학서적들로 가득했고, 창문은 블라인드를 내려서 빛이라고는 형광등과 컴퓨터에서 나오는 빛이 전부였다. 오보라 씨는 이런 암실 같이 답답한 공간에서 종일 일하시는 의사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빨간 버튼 좀 눌러볼까요?”


녹음 시작 버튼을 누르고도 37초가 지나도록 의사 선생님은 오보라 씨가 방금 작성한 페이퍼를 읽고 있었다. 그 사이 오보라 씨는 의사 선생님 앞에 명패를 스캔했다.


‘닥터, 김보미’


43초가 되자 닥터 김은 오보라 씨의 페이퍼에 엑스표 2개를 쳤다. 그 단어는 MRI와 공황장애였다.


“로딩이 많아요?”

“네? 회사 업무 말씀이실까요? 이직한 지 얼마 안돼서 좀 낯설긴 한데, 업무량 자체는 밤샘하고 그럴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지금 오보라님 나이가 젊어서 그렇지 종이에 쓰신 증상만으로는 중풍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증상이에요. 이 신경병이라는 게 눈에 안 보이다 보니까 잘못하면 갖다 붙여요. 한의원에서는 기화열이 약하다고 하고 정신과에서는 우울증이라고 하고. 일단 몇 가지 검사를 해보고 다시 이야기 나누도록 하죠”


닥터 김의 첫인상은 오묘했다.


‘보통 진료실에 앉으면 맨 처음 질문이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을까요 아닌가?’


오보라 씨는 오보라 씨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깬 닥터 김에게서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간호사는 오보라 씨에게 검사 항목에 따라 어디로 가서 검사하면 되는지 쓰여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그 리스트에는 비디오 안진 검사, 뇌혈류 초음파 검사, 신경전도 근전도 검사, 기립성 심장 박동 검사, 적외선 체열 검사가 라고 쓰여있었다..


제일 처음에 진행된 건 비디오 안진 검사였다. 간호사는 마치 가상세계에 접속할 수 있을 것 같은 헤드셋을 머리에 씌워주었으나 눈앞에는 암흑만 있을 뿐이었다. 간호사는 헤드셋을 낀 상태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누웠다 섰다를 반복시켰고, 검사는 약 3분 정도만 소요되었다. 간호사는 그 자리에서 녹화된 영상을 보여주며 검사 결과를 설명해 주었는데, 요약하면 안구가 떨리고 틱 같은 게 있어서 신경이 불안하다고 하는 것 같았다.


뇌혈류 초음파 검사와 근전도 검사, 기립성 심장 박동 검사는 누워서 동그란 패치를 붙여서 진행했기 때문에 새롭지는 않았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이 병원에서 이런 검사들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에 오보라 씨는 그저 감사했고, 왠지 이 검사들이 다 끝나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들기 시작했다.


마지막 적외선 체열 검사를 위해서는 속옷만 제외하고 모두 옷을 벗어야 했다. 뭔가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이 미로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거라는 우습지만 살짝 설레기도 했다.


이미 지훈 님께 말한 시간은 넘어가고 있었지만, 오보라 씨의 적어도 오후에는 미팅에 참석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그때까지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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