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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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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닥터 김의 진단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자 닥터 김은 엑스레이 결과지 같은 사진을 오보라 씨 앞에 있는 스크린에 띄웠다.


“오보라님, 원래 사람들의 혈류 속도가 40이 정상인데, 지금 오보라님은 50이거든요. 많이 빨라요. 그리고 오보라님 자율 신경이 어느 정도 기민해져 있냐면, 이 사진이 정상인데 오보라님 지금 이래요.”


닥터 김이 보여준 스크린에는 적외선 체열 검사 결과로 보이는 사진이 두 장 있었다. 정상인은 온몸이 초록색을 띄고 있었고 오보라 씨의 검사 결과를 말해주는 사진은 말 그대로 시뻘건 색이었다.


“왜 저는 저렇게 빨간색으로 찍히는 건가요?”


오보라 씨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교감신경이라고 하는 건, 좀 어려운 내용인데 쉽게 설명드리면 무조건 차의 엔진이 과열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

“엔진 과열이요?”

“오보라님이 뇌에 쉼을 주지 않고 계속 쓰신 바람에 연결된 신경까지 고장 났다고 생각하시면 쉬울까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업무 로딩을 물어보고, 엔진 과열 이야기를 해서 또 스트레스 이야기인가 싶던 오보라 씨는 귀가 번쩍 뜨였다. 어릴 때 애기를 물어보는 닥터 김에게 오보라 씨는 뭔가 들킨 것 같기도 했지만 뭔가 이 의사는 다를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어, 네. 초등학교 때 길가다 어지러워서 쓰러진 적 몇 번 있었어요. 그땐 빈혈이다 그런 애기를 많이 듣고는 했는데 커가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편두통 DNA는 원래 가지고 있었는데 증상이 발현이 안되다가 외부 자극이 오면서 증상이 발현된 거거든요. 일단 백신이 기존 편두통을 악화시킨다는 논문이 쫙 나와 있어요. 일반인들이 모를 뿐이죠. 백신 맞고 편두통 심해진 사람이 한 두 명인가요? 그렇지만, 다들 본인이 예민해서 그렇다면서 참고 버티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백신이 오 보라님이 원래 가지고 있던 편두통 DNA를 자극한 거고 백신 맞기 전엔 견딜만했던 사소한 자극들에도 이제는 신경이 반응하게 되었다는 뜻이에요”


오보라 씨가 응급실과 수많은 병원에서 만났던 의사들과 달리 백신이 접종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줄 수 있다고 말해 준 것 만으로 오보라 씨는 증상이 다 사르르 녹아내린 것처럼 느꼈다.


“오보라님, 지금 이렇게 되면 고온 다습한 환경을 못 버텨요. 이 DNA가 특정한 상황에 처해지면 여기 쓰신 발작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지금 쓰신 대로 라면, 작년 여름에 처음 증상 나타나고 겨울엔 괜찮았다가 다시 날씨가 더워지면서 발생한 거잖아요? 일단 뇌 MRI도 찍어보아야 할 것 같고 며칠 입원하셔도 되겠어요?”


“입원이요?”


오른손이 저리는 것을 넘어 덜덜 떨리는 그 순간에도 오보라 씨는 회사 미팅과 가족, 토요일 정신과 예약을 생각했다.


“근데 저 MRI는 많이 찍어봤는데 이상이 없다고 나오긴 했었어요.”


오보라 씨는 어떻게든 약만 타고 회사로 가려는 마음에 항변해 보았지만 닥터 김의 다음 말은 오보라 씨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MRI라는 게 러시안룰렛 같은 거예요. 그때 찍은 것은 딱 그 시점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 앞 뒤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거예요. 찍는 시점에 증상이 찍히면 치료를 할 수 있는 거고, 아니면 ……”


오보라 씨는 여태까지 MRI까지 했는데 이상이 없다는 것으로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에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닥터 김의 말을 들으니 다시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할게요. 몇일이면 될까요?”


그 와중에도 미팅을 몇 일로 미뤄야 할지 고민하는 오보라 씨였다.


“지금 우측 저림 증상이 심해서 오셨는데, 그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계시는 게 제일 좋죠. 뭐 걱정되는 일 있어요?”


“아 회사랑 집이랑 걱정되긴 하죠. 그럼 입원하면 증상이 다 사라질 수 있나요? 작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래서 영영 고치기 힘든 건가 싶었어요.”


오보라 씨의 횡설수설을 지켜보던 닥터 김이 한 마디는 오보라 씨가 결정을 촉구하기에 충분했다.


“고쳐보죠, 고쳐보면 되죠. 뭐.”


그 말 한마디에 오보라 씨는 닥터 김이 그렇게 든든 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닥터 김은 환자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 말하는 것 같지 않고, 스스로 정말 이 병에 대해서 자신이 잡아볼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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