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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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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입원실 705호


“Disorders of autonomic nervous system, unspecified”


라는 병명이 오보라 씨의 침대 앞에 붙었다. 뇌신경과 간호사가 오보라 씨한테 알려준 병실은 702호였는데 7층에 올라가 보니 오보라 씨의 병실은 705호였다. 어차피 1인실을 쓸 건 아녔으니, 오보라 씨에겐 호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보라 씨는 며칠 있어야 되니 창문 자리이면 하고 작은 소망을 가져보았지만, 결과는 입구 가장 가까운 벽이 오보라 씨의 차지가 되었다. 오보라 씨는 가운데 침상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그 와중에 생각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오보라 씨는 입원의 통과 의례인 링거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또 오늘은 몇 번 바늘로 찔리게 될까?’


그때, 병동 간호사가 간단한 건강 상황을 체크하러 왔다.


“평소 복용하시는 약 있으실까요?”

“아니요.”

“수술하신 적 있으실까요?”

“자궁근종 수술한 적 있습니다.”


간호사는 그건 큰 수술이 아니잖아요 라는 표정으로 오보라 씨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오보라님, 뇌신경과에서 문자로 안내드린 사항이 있다고 하니 확인해주시고요. 링거를 점심 먹고 나서 연결할 게요.”


‘오, 링거 없는 자유를 2시간이나 더 누릴 수 있다니’


사소한 기쁨에 찬 오보라 씨는 문자를 확인했다. 뇌신경과에서 보낸 문자는 2개였다.  


[Web발신]

오보라님 진단명은

1) 편두통(2-30대) 의증

2) 편마비 성 편두통 의증

3) 자율신경 실조증(교감신경 항진증)


가족력이 있고 특정 유발요인이 있습니다. 편두통은 한쪽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뇌혈류 및 뇌신경의 이상입니다. 뇌혈관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주변 뇌신경이 발작을 하는 질환입니다. 편두통은 소아, 성인, 중노년 시마다 증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계절별로 증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보라 씨가 1년이 넘게 찾아 헤맨 그놈의 이름이었다. 오보라 씨는 이제 그놈은 정체가 드러났으니 전세 곧 역전될 것 같이 느꼈다. 투명망토를 입은 적과 싸우고 있던 오보라 씨였는데, 이제 그놈의 투명망토를 뺏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문자는 닥터 김이 오보라 씨에게 낸 숙제였다.
 
 

[Web발신]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 책을 읽고 반납해주세요.

뇌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오보라 씨는 그제야 간호사가 건네고 간 책에 눈이 갔다.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 딱 내 애기긴 하네. 근데 신경과랑 뇌신경과랑 뭐가 다른 건가?’


오보라 씨 인생에서 ‘신경’이라는 단어는 종종 소환된 적이 있었으나 뇌라는 단어는 정말 발음도 존재도 낯설었다.


문자를 다 읽고 둘러싸인 커튼을 걷자 그레이스 케어라고 쓰인 옷을 입은 간병인으로 보이는 분이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젊은 아가씨가 웬일로 입원을 했소?”


라고 오보라 씨 침대의 쓰인 문구를 슬쩍 보셨지만 정보를 얻지는 못하신 것 같았다.

‘아, 제가 백신 부작용……’이라고 다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닥터 김과 한 바탕 나누고 온터라 기운이 없던 오보라 씨는 그냥 웃으면서


“과로했는지, 좀 쉬어야 한다고 하네요. 하하”


라고 상황을 넘겼다.


“근데 신경과 환자가 어째 병실을 일루 받았네? 신경과 병실은 702호인데. 워짜든 잘 왔어. 잘 왔어. 거기보다 여기가 나아. 거기 다 신경과 환자들이라서 얼마나 날카로운지 티브이도 못 틀게 해. 한 번은 내가 이 할머니 운동시킨다고 복도 같이 돌아다니니까 시끄럽다고 들리게 말하면서 문을 쾅 닫는 거 있지? 아가씨 일루 오길 잘했어. “


오보라 씨도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 것을 선호하는 신경과 환자로써 오지랖이 넓은 이 간병인과 항상 틀어져 있는 티브이가 있는 병실로 배정받은 것이 잘된 것인지는 그때까지는 잘 판단할 수 없었다.


그제야 병실은 둘러보니 6인실에 4명의 환자가 있고, 창가 침대는 아까 간병인이 말씀하신 할머님의 침상이었다. 할머님은 오보라 씨의 엄마 나이보다 조금 많아 보였는데 허리 수술을 하셨는지 지지대를 이용해야 걸으실 수 있는 것 같았다.


오보라 씨와 눈이 마주친 간병인님은 TMI와 FYI를 오가며 생중계를 이어갔다.


“이 할머니는 2주 전에 허리 수술을 하셨어. 내가 2주 동안 봐드렸는데 이제 내일모레 퇴원하셔서 딸네 집으로 가신다네. 딸이 여기 금방 어디 사신다고 했지?”

“잉, 우리 손자가 공부를 잘해서 이 동네로 이사 왔어.”

“그런데, 이 딸네 집에 침대가 그 손자 쓰는 거 하나밖에 없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 우짠디? 손자가 비켜준다 그러우?”


할머니의 얼굴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할머니는 화장실에 가시겠다며 간병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할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간병인님은 아까보다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저 할머니가 서울에 사는 딸은 하나 인디, 장사를 해서 엄청 바쁜가 봐. 그래서 그 집에 가는 거 저렇게 어려워하더라고. 손자 공부할 때 자기가 방해될 까 봐 그런지 눈치도 보시고. 에휴, 내가 여기서 봐주는 동안 몇 주 더 회복하고 가면 좋겠는데, 또 병원비도 걱정되나 보더라고.”


오보라 씨는 병실에 도착한 이후 순식간에 마치 미니 시리즈 한편 시청을 끝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른쪽 마비 증상의 적어도 병명이 밝혀졌으므로, 오보라 씨는 그것 만으로도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오보라 씨는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자신만 자유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여전히 오른쪽의 저림이 존재했지만 말이다.


평소에는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을 일이 없는 오보라 씨 건만, 간병인님이 틀어 둔 뉴스에 어느샌가 집중하고 있는 오보라 씨였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왔다.


“밥 왔습니다.”


카트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자, 간병인님은 재빠르게 나가서 2개 트레이를 동시에 들고 오셨다. 그러면서 하나는 오보라 씨 책상 위에 얹어주셨다.


“아, 저는 제가 해도 괜찮은데.”

“내가 하는 김에 하는 건데 뭐 어뗘, 괜찮아, 괜찮아. “


비록 오보라 씨의 증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지만, 환자복을 입고 어려운 영어 명칭의 병명을 달고 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 자신을 위해 준다는 것은 오보라 씨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고요함과 바꾼 시끄러움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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