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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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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신경과와 정신과 사이

오보라 씨는 포도나무 병원이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좀 길고 발음하기 어렵긴 했지만, 크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링거를 놓는 간호사가 단 한 번 만에 오보라 씨에 링거 놓는 것에 성공했고, 둘째는 그날 할당된 링거를 다 맞으면 자기 전엔 링거를 빼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다음날 링거 처방이 나오면 다시 맞아야 했지만, 한 번에 링거 주사를 놓는 데 성공하는 간호사가 있는 병원에 있는 한, 잘 때 링거를 빼고 잘 수 있다는 소소한 행복은 오보라 씨에게 크게 다가왔다.


첫날에는 뇌 MRI와, 혹시라도 오른쪽 저림이 폐 등의 다른 기관의 이상일 것을 우려하여 엑스레이 검사를 실시했다. 입원환자의 일상은 아주 짧은 검사들과 무료함으로 채워져 있다고 오보라 씨는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 오보라 씨는 침대에 누워있다 앉아서 책을 읽다가를 반복하면서 나름의 휴식을 취했다. 오른쪽 마비 증상이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단지 일상생활을 멈추다는 것이 휴식이 될 수 있는지는 오보라 씨는 의문이 들었지만, 육아와 회사로부터의 탈출은 언제나처럼 달콤했다.
 
닥터 김이 숙제로 내 준 책은 이미 수많은 환자들이 읽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귀퉁이가 헤어져 있었다.
 
책 커버에는


“당신의 휴식은 잘못되었다. 진짜 피로한 것은 몸이 아닌 뇌다.”


라고 쓰여있는 띠지가 둘러져 있었다. 책은 제목을 접했을 때 무언가 감정을 매만져 줄 것 같은 오보라 씨의 기대와 달리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여 쓱쓱 읽히지는 않았지만, 요약하자면 바쁘면, 교감신경이 흥분하고 혹사되어, 그게 스트레스가 되고, 그 스트레스가 뇌 피로를 유발하여 소화 및 혈류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오보라 씨는 어제 닥터 김이 혈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오보라 씨는 다시 닥터 김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도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무언가를 써야 된다는 지령이 떨어졌다.


1)   당신의 진단명은?

2)   병의 원인은? (가족력/사고 습관/생활습관)

3)   개선할 방법은? (사고 습관 고칠 점/생활습관 고칠 점) 


요즘 시대에 종이에 글을 쓰는 아날로그적 방법이 치료절차에 포함된다는 것이 아이러니 기도 했으나, 또 왠지 이렇게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이 싫지 않은 오보 씨였다. 이 종이를 채워가면서 약간의 자아성찰이나 힐링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1번 항목을 채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제 신경과에서 보낸 문자를 보며 진단명을 채워갔다. 입에 잘 붙는 단어들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누군가 오보라 씨의 증상에 대해서 묻는다면 대답해야 할 익숙해져 가야 할 단어들이었다.


1)   편두통/ 편마비 성 편두통/ 자율신경 실조증(교감신경 항진증)


2번 질문의 답을 써 내려갈 때 오보라 씨는 흡사 자신이 심리상담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 병의 원인이라…… '


제시되어 있는 단어 가족력, 사고 습관, 생활습관, 호르몬 이 네 단어에 어디도 코로나 백신 접종이라는 단어가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보라 씨는 닥터 김이 환자들에게 상당한 솔직함을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력

아버지: 갑상선 수술하심

어머니: 종종 위가 아프다고 하시나 검사 결과로는 위쪽에 문제가 없다고 함

자녀: 열이 나지 않는데 어지럽다고 할 때가 종종 있음


여기까지 쓰고 오보라 씨는 남편과는 DNA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센티한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단어는 정말 추상적이었다.


‘사고 습관이라 ……’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단어들은 긍정적 사고 혹은 부정적 사고였으나, 왠지 이 단어들은 닥터 김이 환자들에게 기대하는 정답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오보라 씨의 생각은 길어졌다. 그러다가 오보라 씨는 무릎을 딱 쳤다. 오보라 씨는 사고 습관 옆에 쓴 단어는 바로 지금 오보라 씨가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 해결 관점의 사고방식’


평소에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오보라 씨는 답이 뭔지, 적어도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뭔지 고민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페이퍼를 작성하면서도 오보라 씨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오보라 씨로 하여금 회사에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게 했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가정과 회사 밖의 어페어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점에서 실로 오보라 씨의 피로도를 높이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오보라 씨는 저 문구가 닥터 김에게 직관적으로 와닿게 하기 위해 부연 설명을 덧붙이기로 했다.


‘문제 해결 관점의 사고방식: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며 스스로를 압박하고 노력을 멈추지 않음.’


그다음 단어는 가장 오보라 씨를 회개케 했던 단어였다.


‘생활 습관?’


자신의 생활 습관을 머리로 떠올려 본 오보라 씨는 본인이 그리 좋지 않은 생활습관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워서 책 보기, 새벽에 불 안 키고 휴대폰 보기, 일주일에 3-4번은 배달음식 시켜먹거나 외식, 회사에서 계속 의자에 앉자 있고 따로 운동하지 않음'


여기까지 쓴 오보라 씨는 자신이 그다지 건강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를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약간 억울해지기도 했다. 저런 사소한 습관들을 지금 오보라 씨가 겪고 있는 병의 원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는 삶의 패턴이었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모두 오보라 씨와 같은 마비 증상을 겪지는 않고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 질문에 다다른 오보라 씨의 고민은 조금 더 깊어졌다. 마지막 질문에서는 위에 쓴 사고 습관이나 생활습관에서 고칠 점을 찾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방법론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걸 의사 선생님이 알려줘야 되는 거 아닌가?’


라는 귀차니즘과 의구심이 오보라 씨를 찾아오긴 했으나, 오보라 씨는 보라 다움을 놀랍고도 빠르게 회복하고 출제자의 의도에 적합한 정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사고 습관 고칠 점: 지금의 상태에 감사하기, 발전하고 있어 보이지 않을 때도 괜찮아 하기


사실 오보라 씨의 나쁘지 않은 삶은 정말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오보라 씨는 그렇게 비관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나쁘지 않다는 것은 좋음까지 이동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 만족스러운 상태일 수는 없다고 오보라 씨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오보라 씨가 감사하고, 괜찮아하기로 쓴 것은 어떻게 보면 오보라 씨의 남편이 늘 오보라 씨에게 했던 말이지만, 오보라 씨가 깊이 공감하는 말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생활습관 고칠 점: 건강한 음식 먹고, 규칙적인 운동하기
 
오보라 씨는 이 걸 쓰면서도 과연 자신이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스쳤지만, 일단 닥터 김에게 책 잡히지 않을 만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종이 작성을 마치고 대기실에 약 5분 정도 앉아있자 오보라 씨의 이름이 불렸다.


“오 보라님, 빨간 버튼 눌러보실게요. 지금 일하는 게 싫으세요?”

“네?”


오보라 씨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뇌신경과에서 이런 말로 진료를 시작할 수 있는 건가 싶던 오보라 씨의 진짜 고민은 얼마나 솔직히 이야기해야 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못할 정도의 일은 아니니까 참고하고 있지요. “


닥터 김은 말을 이어갔다.


“오보라님, 저는 오보라님이 왜 그렇게 뇌를 혹사하고 있는 원인을 찾아야 되는 사람이라 이런 거 물어보는 거예요. 지금 쓰시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정확한 스트레스 원인은 적지 않으신 것 같아 보이기도 해서요. “


닥터 김은 여기까지 말하고 오보라 씨가 써놓은 ‘문제 해결 관점의 사고방식: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는지 계속 고민하며 스스로를 압박하여 노력을 멈추지 않음.’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을 이어갔다.


“저도 지금 환자들이 하루 종일 아픈 얘기하는 거 듣기 싫어요. 다만, 이 사람이 왜 아플까 원인을 찾아서 퍼즐 맞추기를 꼬치꼬치 하는 과정을 좋아하죠. 하시는 일에서 본인이 그 일을 할 만한 이유 하나만 찾으면 돼요."

“아, 그런가요? 그냥 늘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아이를 낳고부터는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이 생활비, 교육비를 버는 게 목적이긴 했죠. 그런데 이게 신경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본인의 병명은 가장 크게 편마비 성 편두통이에요. 원래 가지고 있던 건데 백신을 이후 더 작은 자극들에도 발현 되게 된 거죠. 즉 작성해주신 페이퍼에서 병의 원인이라고 쓰여 있던 부분이 사실 병을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는 뜻이 되는 거지요 “

“더 작은 자극이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고온 다습, 시끄러운 소리를 포함한 외부 자극과 정서적인 내부 자극을 말하는 거죠. 지금 오보라님, 사고 습관이 자꾸 뇌를 건드린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어제 제가 준 책 다 읽었죠? 오 보라님, 생각을 멈추고 뇌를 쉬게 해 줘야 본질적으로 증상 발현 확률을 낮출 수 있는데 생각이 잘 안 멈춰지죠?"

“생각이 멈춰지는 건가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 의지로 생각을 멈출 수 있나요?”

“의지로 생각을 바꾸는 건 도인 수준은 돼야지 하죠. 우리 같은 일반인은 못해요. 다만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드라마를 보거나, 멍 때리거나, 게임 같은 걸 해요. 골치 아픈 것에서 다른 쪽으로 관심을 전환하는 거지요. 오보라님은 쉬는 시간에 뭐해요?”

“자기 계발서 읽거나, 강연을 듣습니다. 저는 시간이 아까운 게 싫어서 … “

닥터 김은 이러니 뇌가 과열이지 라는 표정을 오보라 씨에게 선사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가족력을 보니까 편두통 DNA는 엄마 쪽에서 받으셨나 보네요. 어머님도 신경과 환자이신데 자꾸 위쪽만 검사하니까 뭐가 안 나오는 거예요. 소화불량이나 위 통증도 신경 쪽 이상에서 올 수 있거든요. 자녀분도 어지럽다고 종종 한다고요?”

“네. 저도 어렸을 때 그랬는데 아이에게 제가 그 DNA를 물려줬나 봐요.”


오보라 씨는 자신의 의지는 조금도 작용하지 않았지만 마치 그 DNA를 물려준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죄책감을 느꼈다. 오보라 씨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본 닥터 김은 경험이 많은 의사답게 다음 주제로 빠르게 시프트를 시도했다
 
“오보라님, 오른쪽 마비 증상은 지금 어때요? 처음 온 날 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아직 얼굴과 목 뒤는 계속 저림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어제 순환 수액을 써서 증상이 좀 완화된 걸로 보이고요. 어제 검사 결과를 보니 목 7번과 허리 4,5번에 디스크가 있거든요. 일단 디스크가 증상의 주된 원인은 아니지만 통증을 악화시키는 원인 중에 하나 일 수 있으니, 오늘부터는 도수치료도 좀 받아보실게요. 제가 하고 있는 수액이나 도수 치료는 증상 완화를 위한 것이지만, 오 보라님은 생각을 줄여서 뇌가 자극이 안 되는 것을 목표로 하셔야 해요”


닥터 김의 말에 오보라 씨는 초등학생 숙제로 수능 수학 문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오보라 씨만 아직 인정 하직 않았을 뿐, 오보라 씨의 보라 다움은 이 숙제를 푸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오보라 씨가 생각이 많은 이유는 간단했다.  오보라 씨는 자신이 하는 말 한마디, 자신이 하는 결정 하나에 수많은 사람이 걸려 있다는 걱정과 오버를 늘 품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남들을 위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라고 오보라 씨는 생각했다. 다만, 그 이해당사자가 두 명이 되고, 세명이 되고 여러 명이 되면, 그들 모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능하지 않았기에 좌절은 늘 오보라 씨를 따라다녔다.
 
 

‘백신은 거들 었을 뿐, 원래 내가 문제였고, 지금 이 증상을 악화시킨 놈은 백신인데 내 생각들을 내가 정리함으로 이 증상들을 수습해 나가야 된다는 뜻인가?’


지금껏 그리 나쁘지 않고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해왔던 오보라 씨는 자신이 삶이 이대로는 버틸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생각을 줄이려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 걸까?’


그런 그녀가 터덜터덜 도착한 곳은 9층 도수 치료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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