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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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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병실 토크

병실로 돌아온 오보라 씨는 그날 할당된 링거를 맞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링거 팩 4개가 오보라 씨 머리 위에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보통 링거는 큰 팩 하나인데 이것들은 다 무엇을 위함일까?’


궁금함을 느낀 오보라 씨는 각각의 링거 팩 표지에 쓰여있는 이름들을 검색해 보았다. 
 
이노엔 0.9% 생리식염 주사액  

수분 및 전해질 결핍 시의 보급(나트륨 결핍, 염소 결핍) or주사제의 용해 희석제 
후라바솔 헤파 주 

아미노산을 공급하여 단백 합성 및 체내 에너지 대사를 촉진시킴으로 간 장애에 대한 뇌증을 개선하는 약

지 씨 징코 주
뇌혈액순환장애 및 뇌 영양장애(뇌혈관부전), 다음 증상을 수반하는 뇌기능장애 : 지적 및 경각 능력 저하, 어지러움, 이명, 두통, 시력장애, 기억력 감퇴, 불안, 우울감, 내이성 난청, 혈관성ㆍ대사성 경부 증상으로 인한 청각 및 언어능력 저하에 사용

IVNT 10
정맥 영양 치료제로 식약처로부터 말초신경염, 신경통 등 신경성 질환에 효능효과를 허가받은 비타민 B군 주사를 통해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으로 인한 손발 저림, 신경통 완화에 도움
 
 


각각의 이름이 어려워서 오보라 씨는 몇 번이고 링거를 올려다보며 휴대폰 검색창에 넣어야 했다. 휴대폰을 몇 분 쥐고 있자 오른쪽 저림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이 느껴진 오보라 씨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때 병실에 누군가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어, 미스터 제임스. 그거 미스 김한테 시키면 처리해줄 거야. 어, 내가 지금 시술받으러 한국 병원에 왔거든. 다음 주 샌프란 미팅 때 보자고.” 


창가 쪽에 계신 50대쯤 되어 보이는 환자 분, 아니 환자 복을 입은 분의 통화내용이었다. 그분이 어느 과 환자인지, 무엇 때문에 입원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미국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은 미국 사모님은 맞은편에 앉아 계신 분 간병인 분과 눈을 맞주치신 것이 민망했는지 병실 토크를 시작하셨다. 


“아, 제가 미국에서 사업하는 시술받으러 잠깐 한국에 왔어요.”


병실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한 가지 의문이 풀린 것 같았다. 미국 사모님은 새벽시간에 유튜브를 보던 이유가 클리어 해 진 것이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셨구먼요.” 


간병인님은 새벽에 이어폰을 끼지 않고 유튜브에 보던 것에 대해 살짝 핀잔을 준 것이었지만 사모님은 딱히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쪽 할머님은 허리 때문에 오셨고, 이 쪽 어머님은 어찌 오셨어요?”


미국 사모님은 오보라 씨의 맞은편, 자신의 옆에 있는 분께 질문을 던졌다. 


“내가 어지러워서 왔소.”


6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분은 자신이 이명증이 있다고 하셨다. 


“이게 한 번 어지럽기 시작하면 세상이 돌아버려서 서 있을 수가 없어. 그래도 여기가 약을 잘 써서 종종 온다오.” 


다들 아픔을 가지고 병실에 모여 있었지만, 어지럼증이 있다는 환자분 말씀에 모두 그분이 가장 힘들겠다는 것처럼  안쓰러운 반응을 보였다. 


“아가씨는 어제 잠깐 들으니 과로라고?”


맞은편 침대에 있던 환자분은 오보라 씨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오보라 씨는 오늘 확정받은 변명 ‘편마비 성 편두통’에 대해서 말할까 하다가 백신 애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은지 말을 줄였다. 


“예, 몇 가지 검사도 좀 하고 그러려고요.” 


간병인님은 그 토크에 기름을 부으셨다. 


“아가씨 보니 우리 딸 나이랑 비슷할 것 같네. 우리 딸이랑 사위가 세종시에 집 사서 사는데, 손녀가 1학년이야.” 


손녀 말씀을 하시자, 오보라 씨는 마리가 떠올랐다. 


‘할머니랑 아빠랑 잘 있으려나? 엄마 없다고 TV만 계속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명증 환자분도 그 새를 놓치지 않고 가족 자랑을 이어가셨다. 


“우리 아저씨랑 나는 1남 1녀여. 아들 내외는 영국 가서 살고, 우리 딸은 변호사여. 우리 손자가 이번에 반장이 됐지 뭐여. 그래도 애들이 잘 컸어.” 


오보라 씨는 난데없이 시작된 가족 토크에 허리 수술을 하신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할머님은 안 그래도 퇴원하고 딸 네 집에 간다는 애기만 나오면 우울해하셨던 터라 오보라 씨는 나머지 분들이 적당히 마쳐주길 말을 바랐다. 


“밥 왔습니다.” 


다행이었다. 간병인님은 또 제일 먼저 나가서 2개를 들고 와서 한 개를 오보라 씨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어이 거기 두 분도 그냥 있으셔. 내가 해드리려니까.” 


그날 저녁 메인 반찬은 고등어조림이었다. 


“아, 이거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었구먼. 너무 짜.”


이명증 환자분이 얘기했다. 


“맛이 괜찮은데 원래 심심하게 드시는가 보네요.”


미국 사모님이 대꾸를 해주셨다. 


이 대화를 재미있게 관찰하던 오보라 씨에게 간호사가 찾아왔다. 


“오 보라님, 식사 마치시고 외래 시간 끝나기 전에 다섯 시 반에 뇌신경과 진료 한 번 더 보실게요. 내려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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