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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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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뭐가 문제예요?

“지금은 오른쪽 저림 증상이 어때요? 처음 왔을 때 저림을 10으로 표현하다면 지금은 몇 정도예요?”


이제 오보라 씨는 닥터 김이 말하지 않아도 녹음 어플을 켜고 빨간 버튼을 눌렀다.


“처음 왔을 때 저림이 10이라면, 지금 발이랑 손 저리는 건 3점 정도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단지 목 뒤랑 어깨는 아직도 10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정말 심할 때는 심장 쪽 근육까지 마비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오른쪽 저림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퇴원 후에 다시 호흡 곤란이 오면 어쩌죠?”

“이게 발작까지 가냐고 묻는 거죠? 일단 지금 제가 수액과 신경 쪽 약을 쓰고 있어서 증상이 완화되고 있는 거고요. 지금 오 보라님 말씀하시는 신경 발작은 물론 최대한 상황을 안 만들어지면 좋지만 발생하면 비상약을 드릴 테니 바로 드셔야 해요.”

“신경 발작이요?”

“그니까 신경 발작도 편마비 성 편두통의 일부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간단히 말하면 백신 때문에 편마비 성 편두통이 쉽게 발생하게 되었는데 외부든 내부든 자극이 크게 가면 그게 발작이 되는 거거든요. 고온 다습은 에어컨으로 조절하면 되고, 시끄러운 곳은 안 가면 되는데, 오보라님 그 생각은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요?.”

“저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럼 혹시 회사에서 타이핑을 많이 하면 심해지는 걸까요?”

“아직 이 병 이해를 못 하네. 본인 막노동 때문에 생기는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예요. 아마 타이핑할 때 심해진다고 느꼈다면 잘 보세요. 타이핑할 때 긴장해서 숨을 잘 안 쉬고 있을 걸요. 뇌에 산소 전달이 잘 안돼서 저산소 때문에 신경 반응이 있는 거지, 근육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오보라님, 멍 때리기 잘 안되죠?”

“멍이요?”

“아까도 말했지만 남들은 힘들 때 티브이에서 예능 보고 드라마 보고 그렇게 시간 보내면서 멍 때리고 그래요. 오 보라님은 시간 있을 때 강연 듣고 책 본다고 하셨죠.  아니, 무슨 책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남들이 들으면 무슨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인 줄 알겠어.”

“부동산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 뛰어난 사람들 자서전 그런 거 봐요. 근데 제가 그렇게 생각이 많은 편인가요?”

“제 환자 중에 천억쯤 굴리는 분 계시거든요. 그 분보다 오 보라님이 생각이 지금 더 많아 보여요. 이 아픈 와중에, 회사 걱정하고 있죠? 회사 걱정하는 분이 가족 걱정 안 하겠어요? 아픈 와중에 부동산 고민까지 하는 거예요?”

“아 지금보다 뭔가 더 나아져야 할 것 같은 압박은 항상 있죠, 근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요.”

“아니, 뭘 고치고 싶은 거예요? 지금 오라님, 실제 뇌신경에 문제를 겪고 계신 건데 본인 자체가 자꾸 정서적인 스트레스나 긴장도로 뇌신경을 스스로 자극하고 있거든요. 지금 이 몸에 문제 있는 거 말고 삶에 문제가 있어요?”

“문제요? 아주 큰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보라 씨를 둘러싼 삶은 다 소소하고 고만고만하게 나쁘지 않았었기 때문에, 딱 한 가지만 찍어서 뭐가 오보라 씨를 힘들게 하는지 말하는 건 불가능했다.  


“혹시 뭐가 급해요? 주식에 물렸어요? 코인 샀어요? 뭐 급전 갚아야 해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닌데 뭔가 지금보다 더 잘살긴 해야죠.”

“그럼 뭐가 문제지? 회사가 맘에 안 들어요? 이혼하고 싶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올해 이직해서 더 좋은 회사 다니게 되었고, 남편도 나름 가정적이고 딸도 문제를 일으키진 않아요. 대출이 있지만 서울에 작은 집 하나 있고, 근데 부모님 보시기엔 아직도 부족할 것 같긴 해요.”

“아니, 부모님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정신 차려요. 지금 그 몸으로 효도가 아니라 자기 자식을 잘 키우는 데에만 집중해요. 본인이 그걸 다 할 능력이 돼요? 제가 의사지만 우리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나한테 얘기 하지 말고 가까운 병원 가라고 해요. 나도 물리적인 한계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다 케어해. 난 못해. 오 보라님, 제발에 머리에 뇌를 좀 꺼요. 지금 뇌가 과열이라고요.”

“그게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잘 안돼요. 자리를 잡을 때 까지는……”

“강남에 집 하나 사야 만족해요.? 지금 재정이 불안해요?”

“아주 취약하지는 않은데…”

“아니, 나중에 녹음한 거 본인이 들어봐요. 본인 말이 왔다 갔다 해. 지금 문제없이 잘 산다고 했다가 아직 자리를 못 잡았다고 했다가, 본인 마음을 좀 정리해봐요.”


오보라 씨는 무언가 지금까지 잘 감춰오던 것을 들킨 기분에 휩싸였다. 왜 신경과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닥터 김의 페이스에 말려 든 오보라 씨는 진료시간이 아닌 상담시간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보라님, 제가 정신과는 아니지만 자꾸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정신적으로 불안하면 신경이 자꾸 자극돼요. 백신을 이미 맞아서 이 상황이 발생한 것은 바꿀 수 없지만, 이제부터는 들어가는 자극이라도 적게 해 봐야죠. 예전에는 그렇게 뇌를 써도 몸이 감당했던 거예요. 근데 이제 더 이상 몸이 그게 버티질 못한다니까. 오보라님, 남편도 오보라 님하고 비슷해요?”

“아니요. 남편은 긍정적인 편이에요.”

“그니까 오보라 씨만큼 간절히 경제적 성장이나 더 좋은 부동산 획득을 바라고 있냐고요?”

“그렇지는 않아요. 남편은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지금은 제가 많이 포기했죠.”

“오보라님, 오보라님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하지 않는 몫까지 본인이 더 채우려고 애쓰다가 지금 몸이 부서지고 있는 거예요. 오보라님, 인정하세요. 본인, 돈 좋아해요. 인류애 넘치는 척, 착한 여자인 척 그만해요. 지금 결혼생활 문제없고 아이 건강하고 맞벌이하고 서울에 집 있고 본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을 성공시키고 있는지는 알아요?”


“물론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렇긴 한데, 저는 이게 나쁘지 않은 것뿐이지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 같아요. "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 수석이라도 했어야지. 그 프레쉬한 10대 때 그렇게 안 했잖아요. 왜 지금 와서 몸에 부담되게 난리예요?”

“살다 보니, 세상에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은 게 보이더라고요.”

“황새가 뱁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져요.”

“혹시 지금 회사가 굉장히 본인의 능력에 비해 과하게 점핑해서 간 거예요?”

“대기업에 있다가 스타트업으로 왔는데 연봉을 많이 높여주긴 했어요. “

“돈을 많이 줘서 실적 압박이 있어요?”

“돈이야 늘 더 받고 싶죠.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받은 거만큼 퍼포먼스를 못 내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긴 있어요.”

“아니 그래도 본인 능력이 되니까 뽑았겠지요. 아님 낙하산이에요?”

“아 그런 건 아니구요.”

“지금 본인이 계속 경제적 안정을 주창하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네. 불안해하면 신경이 자극된다고요.”


닥터 김은 그제야 정신과 의사가 아닌 신경과 의사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직한 지 얼마나 됐어요?”

“반년 쫌 넘었어요.”

“아니 반년밖에 안됐는데 퍼포먼스 타령이에요? 뭐가 그리 급해요? 저는 제 밑에 직원 들어오면 당신 여기 적응하는데 최소 3년 걸린다고 이야기해요. 3년 이내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거는 당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백업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무슨 회사가 6개월 된 직원한테 결과를 내라고 해요?”

“아, 그게 경력직이고 스타트업이다 보니……”

“그래서 존버 하고 싶은 거예요? 때려치우고 싶은 거예요?”

“더 좋은 회사로 가면 좋죠.”

“아니, 지금 회사에서도 압박 있어서 스트레스가 크신 것 같은데 더 좋은 회사로 더 많은 돈 받고 가면 스트레스가 더 커지는 것 아니에요? 오보라님. 지금 생각이 너무 많아요. 제가 자꾸 애기 하지만 그 뇌 좀 끄세요. 돈 많이 벌어서 몇 년 안에 더 좋은 부동산으로 갈아타려고 그러는 거예요? 몇 년치 계획을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라도 뇌가 과열되겠어요. 제발, 올해 1년만 생각, 아니 이번 1달만 생각하고, 오늘 하루만 생각하려고 해 봐요. 지금 오보라님은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 위해 어떤 루틴이 필요할지 그것만 고려해야 될 사람이에요. 사고를 조금 단순화해봐요. 돈만 벌자 돈만 벌자 하면 뭐해요. 지금 몸이 이상태인데 아무리 거창한 계획 세워도 실행 못할 거예요. “


닥터 김이 종종 말하는 뇌를 끄라는 표현은 마치 죽음을 연상케 하고, 닥터 김의 직언들은 머리에 스크래치가 날 정도로 셌지만, 이상하게도 오보라 씨는 그런 닥터 김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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