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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오,보라!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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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1. 2022

위협받는 보라 다움

그다음 날, 도수치료 젊은이는 어제 오보라 씨 전신의 딱딱함을 보고 오보라 씨를 운동시키는 것은 포기한 것 같았다. 하지만 도수 치료사는 어제에 이어 오보라 씨의 어깨와 목을 혼신에 힘을 다해 치료해주었다.


이미 굳어버린 몸은 이미 착한 딸로서, 듬직한 언니로서, 회사의 충직한 일원으로, 한 아이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로의 경직된 상황을 증명해 내고 있는 것 같아 오보라 씨는 마음은 이따금씩 마음이 울적했으나, 도수 치료사는 오보라 씨의 몸이 풀릴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고 치료를 이어가는 듯했다.


오보라 씨는 왠지 자신은 포기한 것을 누군가 믿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에 큰 격려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도수 치료사는 오보라 씨의 몸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집에 가시면, 운동 꼭 하기로 해요.”

“네?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요?”

“지금 몸으로 하실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요. 걷기랑 스트레칭 정도?”

“스트레칭이라고 하면?”

“몸이 쭉쭉 늘어나는 느낌만 주셔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예요. 유튜브 같은데 찾아보면 따라 하실 수 있는 것들 찾을 수 있어요. 꼭 하기예요. 꼭.”


오보라 씨는 이 아픈 도수치료를 다시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수 치료사는 종종


“긴장하지 마세요. 편안히 계세요.”


라고 이야기했지만, 오보라 씨의 뼈를 맞추려는 자신의 손의 힘이 얼마나 세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수 치료사의 손 끝이 가까이 오는 것만 느껴져도 다음 액션은 얼마나 아플까 라는 생각에 오보라 씨는 미리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도수 치료 때 오보라 씨는 누워 있기만 했지만 끝나기만 하면 매우 피곤하여 잠이 쏟아졌다.


그날 오보라 씨는 점심이 도착한지도 모르고 낮잠에 빠져들었다. 오보라 씨의 낮잠을 깨운 건 전화벨 소리였다.

 

“여보세요?”

“어머, 애기야. 괜찮은 거야? 괜찮은 거지? 목소리가 좀 안 좋은 것 같네. 준수가 마리 데리고 어제 우리 집에 왔어. “

“아, 어머니. 낮잠 자고 있다 깨서 그래요. 증상은 주사 맞고 약 먹고 나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원인이 뭐래?”


오보라 씨는 병실에서 자신의 병명에 대해서 설명하기 꺼려졌다. 아무리 병실에서라지만 백신 부작용이라는 단어를 꺼내면 다른 환자들이 오보라 씨를 세상 가장 불쌍한 사람이자 시대의 희생양으로 바라볼 것 같았다. 오보라 씨는 보통 남을 원망하기보다는 자기를 자책하는 사람이었기에, 굳이 현재 핫 한 시대 이슈에 큰 지분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시어머니가 먼저 다시 침묵을 깨셨다.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지? 너 얼마 전에 코로나 걸렸었잖아. 그놈의 코로나 후유증 때문이지, 그지?”

“아, 네……”


오보라 씨는 시어머니가 코로나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 굳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백신을 맞게 된 것이 코로나의 존재 때문이니 말이다.


“아, 어머니 그나저나 마리는 잘 있나요?”

”응, 마리 지금 게임하는데, 잠깐 기다려봐. 마리야, 엄마 전화받아볼래?”


전화기 너머에서는 멀리서


“엄마, 괜찮아? 천천히 쉬다와.~”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없어서 누리는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오보라 씨의 시어머니는 준수랑 마리는 자신이 잘 먹일 테니 걱정 말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오보라 씨는 남편에게 문자를 쓰려고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TV랑 게임 좀 작작”


까지 썼던 오보라 씨는 작은 한숨과 함께 그냥 메시지 쓰기를 멈췄다. 시어머니가 마리를 봐주시는 동안, 아마 남편은 골프 연습을 갔거나 본인도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휴대폰을 덮으려고 할 때, 오보라 씨는 친정아빠가 보낸 문자가 수신함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민수 님이 돈을 보냈습니다.

보낸 금액: 1,000,000

받는 분: 오보라

입금은행: 한국은행


그 문자는 오보라 씨의 친정아빠가 보낸 입금 문자였다. 입금 메시지 아래는 오보라 씨 아빠의 메시지가 한 줄 붙어 있었다.


“입원비에 보태 써라. 네 건강이 최우선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늘 남을 먼저 생각하라던 부모님이었다.

그래서 오보라 씨의 이름이 오라이지 않은가?


‘나를 최우선 하라고?’


부모님께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되자 오보라 씨는 당황스럽고 어색하기까지 했다. 한 편으로 오보라 씨는 올라간 입꼬리를 숨길 수 없었다.


“역시, 보험사보다 더 든든한 보험이 아빠네. “
 
 

오보라 씨의 부모님은 오보라 씨의 이름을 보라라고 지은 것 아니 보라라는 이름에 그러한 뜻을 부여한 것 빼고는 대체로 평범한 분이셨다. 평소에는 무심해도 무슨 일 있으면 가족 챙기는 걸 잊지 않으시는 그런 분들 말이다.
 
 

‘그나저나 아빠도 나이가 들고 아플 때도 있다 보니 생각이 변했나? 그럼 내 이름을 오보라라고 지은 것을 지금쯤 부모님도 후회하고 있을까?’


오보라 씨는 수십 년을 보라 하게 살다가 갑자기 던져진 자기 자신을 제일 먼저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야 들여야 할지 다시 뇌가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뇌를 단순화하려면 이름부터 바꿔야 할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어오자 오보라 씨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날 오후 미국 사모님은 퇴원을 하셨고, 그 자리에 대학생 아가씨가 들어왔다. 들 저 젊은 친구가 어째 입원을 했나 궁금한 눈초리였지만, 의사 선생님의 방문으로 금세 그 의문이 풀렸다.


“내일 수술이니까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아침 금식입니다.”

“선생님 수술 많이 아파요?”


아가씨의 말에 선생님은 형식적으로 웃으실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신 후,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 무슨 수술 하는 거야?”

“운동하다 인대가 찢어져서 수술해야 된대요. "

“뭔 운동을 했는데?”

“요즘 여자 축구하는 예능 보고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저도 여자 축구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첫날 다쳤어요.”

“아이고 그랬구먼.”


대학생 아가씨는 보기보다 싹싹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각각의 베드에 쓰여있는 병명을 눈으로 빠르게 훑는 것처럼 보였다.그러고 나서 아가씨는 간병인님에게 물었다.


“여기 언제부터 계셨어요?”


그제야 오보라 씨는 간병인님의 여기 계시게 된 스토리는 들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할머니가 여기서 내 4번째 환자여. 내가 한 번 환자를 맡으면 그분 퇴원할 때까지 쭉 하거든. 지금 집에 못 간지 두 달은 되었지. 뭐 어차피 혼자 사니께. 우리 아저씨가 가신 게 벌써 5년 됐는구먼. 우리 아저씨가 투병생활을 오래 하셨거든. 7년쯤 하고 가셨지. 내가 그 양반하고 있을 때부터 이게 삶이 되가지고, 계속 이걸 하고 있네.”


그제야 오보라 씨는 간병인님이 자신의 전담 환자 말고도 다른 환자들도 잘 챙겨주시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다들 자신의 아픔보다 다른 이의 아픔을 크게 느끼는 숭고한 시간을 덮쳐왔다.


“채널 좀 바꿔볼까?”


간병인님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우셨는지 뉴스가 나오고 있던 채널을 예능으로 바꾸셨다.  간간히 대학생 아가씨의 깔깔 웃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허리 수술하신 할머님은 그 와중에 낮잠에 드신 듯 코를 고셨다. 오보라 씨는 병실 구석 침대에서 그 장면들을 TV를 보듯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이 웃음 지는 것엔 생각보다 그다지 많은 것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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