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오,보라! 2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이시 Oct 01. 2022

도수 치료 젊은이

도수 치료는 비급여라고 했다. 치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비급여에 동의한다고 서명을 해야 했다. 한 시간에 15만 원이라니, 이 돈이면 애기 학원을 한 달 더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맘이 쓰려왔지만 입원해 있는 동안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됐다. 그게 보라 씨 다운 것이니 말이다. 


도수 치료실은 한쪽 벽은 마치 댄스 연습실처럼 거울이 쫙 붙어 있었고 창문 쪽은 뷰가 끝내주게 좋았다. 


‘이 정도 보면 레스토랑을 해도 잘되겠다.’


고 생각하던 오보라 씨에게 20대 남성으로 보이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오 보라님?”

“네?”

“이쪽으로 오실게요” 


오보라 씨는 도수 치료사라면 나이가 지긋한 분이실 거라고 자신이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오 보라님, 여기 베드에 하늘 보고 누우실게요.” 


사실 도수치료라는 단어는 들어봤지만 도수치료가 뭔지 몰랐던 오보라 씨는 젊은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누워서 그제야 도수 치료사 얼굴을 보니 뽀얗고 예쁘장하게 생겼었다. 


“눈은 감고 계셔도 되세요.” 

‘아, 너무 내가 쳐다봤나?’


라고 오보라 씨는 조금 민망해했다. 다만 그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오보라 씨는 이내 알게 되었다. 


“오른쪽 마비 증상이 있으시다고요?”

“네. 오른쪽이 저리고 차갑습니다.”


도수 치료사 청년은 오보라 씨의 목과 어깨를 만져보더니 이내 정색하며 물었다. 


“아니, 목이 왜 이렇게 딱딱해요?”

“아? 그런가요? 직장인들이 다 이렇지 않나요?”

“이 정도면 심각한 거예요. 평소에 긴장을 많이 해야 되는 직업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이 청년은 오보라 씨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아니요, 그냥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어깨랑 목이 정말 굳어 있어요. 어깨가 엄청 올라가 있고요. 자, 제 손에 머리를 기대 봐요.” 


‘아 입원 후 머리를 감지 않았는데.’라는 민망함이 한 번 더 오보라 씨에게 몰려왔다.


“아프면 말해요.” 


라는 도수 치료사의 멘트에 


‘설마 아프면 얼마나 아프려고’ 라던 오보라 씨의 교만은 금세 무너졌다.

어른이 돼서 ‘아~~’라고 소리를 지를 수는 없고 오보라 씨의 미간은 계속해서 찌푸려졌다. 

도수 치료사는 예상했다는 듯


“많이 아파요?” 


라고 물었다. 


“네. 조금요.” 


오보라 씨는 늘 이런 식이 었다. 사실을 말하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될까 봐 늘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는데 능했다. 


도수 치료가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안 받는 다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몰려왔으나 오보라 씨는 눈을 감고 있어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볼 수가 없었다. 도수 치료사는 마치 오보라 씨의 뼈가 레고라도 되는 마냥 조각을 맞추려고 애를 쓰는 듯했다. 야리야리하게 생긴 물리치료사가 힘은 왜 이렇게 센 건지 몇 번 받으면 뼈가 맞춰지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이제 일어나서 요가 매트 쪽으로 이동하실게요.” 


뼈 맞추기 세션이 종료되고 물리치료사는 오보라 씨에게 간단한 운동을 시키려는 듯했다. 두 사람을 거울 앞으로 이동하였고 운동은 스트레칭부터 시작되었다. 


“평소에 운동은 안 하죠?”

“네, 할 시간이 없죠.” 

“일단 앉아서 허리 숙여서 손 끝을 발에 닿게 해 보실게요.” 


어느샌가, 오보라 씨도 그의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는 화법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오보라 씨는 보라 다움이 존재하는 한 반말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운동을 하지 않는 회사원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오보라 씨가 뻗은 손은 무릎 근처에서 멈춰버렸다. 이건 오보라 씨가 기억이 있는 시절부터 쭉 발생했던 현상이기도 했다. 


“아니, 우리, 이거 언제부터 이런 거예요?”


아마 오보라 씨가 나이가 더 많았다면 분명 우리 어머님이라고 했을 테지만, 도수 치료사는 자신과 몇 살 차이가 안나 보이는 오보라 씨를 부를 말을 찾지 못한 듯했다. 


“네?”


“언제부터 몸이 이렇게 굳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이렇진 않았을 거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이렇진 않았을 거잖아요.’


실로 이 한 마디는 오보라 씨가 잘 숨겨놓은 진심에 돌을 던졌다. 


그렇다. 오보라 씨도 처음부터 이렇게 늘 몸이 긴장하고 굳어 있지는 않았을 테고, 처음부터 모든 상황에서 누구에게는 양보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운명을 쫓아 살지는 않았을 터였다. 기억은 없지만 태어났을 때 그녀는 여느 아기들처럼 자신의 발을 입까지 올릴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엄마가 자는 시간이라고 엄마를 배려하며 울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이 맞다. 


오보라 씨의 눈가는 조금 촉촉해졌다. 


다만, 그 감정을 오래 만끽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시킨 다음 동작들은 온통 굳어 있는 오보라 씨의 온몸에 고통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팔다리는 오보라 씨의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말을 듣지 않았으며, 마치 잠들어 있는 고양이를 깨우는 것처럼 근육들은 성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물리치료사는 종종 


“저한테 맡기세요.”

“저한테 기대세요.” 


라는 멘트를 하고는 했는데, 오보라 씨가 기혼이 아니었다면 설렐 뻔했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렇게 미묘한 한 시간이 흘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청년에게 예의상 감사 인사를 하고 병실로 돌아와서도 그 청년의 말을 오보라 씨의 맘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이렇진 않았을 거잖아요.’


이전 19화 신경과와 정신과 사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