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영어, 수학, 코딩 학원을 다니며 평범한 초딩의 삶을 살고 있었다. 부모의 마음으로는 아이가 이왕 학원에 다니고 공부하는 김에 열심히 해줬으면 했지만 내가 옆에서 보기에는 공부 자체에 아주 동기부여가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학원을 빠지지 않고 다녀주는 것으로, 때에 따라 레벨 업 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 정도랄까. 사실 초등 남자아이가 '엄마,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요.저 과학고 가고 싶어요." 할 가능성은 어느 집이나 0%에 수렴 할텐데, 내 기대는 너무나 높았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그 녀석이 공부 분야에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섭섭하다는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좋다. 공부가 아니여도 좋으니, 인생에서 뭔가 열심히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할 수는 없을까?'
나도 요즘 말로 노베로 고2 때 공부를 시작해서 나름의 입시에 결과를 낸 경험자로서 그게 뭐든지 간에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창 시절 춤에 올인 하고 있었던 학생이었으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 열정을 공부로 옮긴 케이스였다.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어릴 때 부터 쭉 달려야 된다고들 많이 하지만 공부에 대한 본인의 의지가 없는 아이를 데면데면하게 학원에 데려다 놓는 것도 참 한정 된 자본과 시간의 낭비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저 자원을 아이가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 분야가 있다면 쏟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불안해서 하는 것이 아닌, 이 아이에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 딛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 녀석의 단짝 친구의 어머니와 만날 일이 있었다. 이런 저런 애기를 하다가 학원 이야기가 나와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애기를 했다. 그 어머니는 그럼 공부 말고 어떤 분야가 있을까요 라고 물으셨고, 나는 잊혀 지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 내 마음속에 유일한 한,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 최종 단계에서 떨어진 스토리를 꺼내 놨다. 그 때 합격했다면 그 쪽으로 밀어줬을 텐데 하면서 또 한 번 그 때의 아픔을 꺼내보았다가 다시 꼬깃꼬깃 접어서 마음 한 켠에 저장했다. 진짜 미련이 철철 흘러 버릴 수 없다는 게 이런거랄까. 그리고 몇 달 뒤, 그 친구 어머니께 카톡이 왔다.
"생각나서 보내요."
내용은 서초구에서 개최하는 '서초 어린이 청소년 예술제' 의 합창 부분 오디션 공고였다. 아이에게 이런 게 있다는 데 도전해볼래 라고 물어보니 단칼에 거절했다. 아, 분명히 옆에서 볼 때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왜 거절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확실한 건 이것을 시켜보려면 아이와 우당탕탕 전면전이 필요할 터였다. 나는 되도록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키웠고, 무언가를 꼭 해야 돼 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아이도 굉장히 순한 편이었기 때문에 나랑 크게 부딪힐만한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지점, 이 시점에서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 다리를 만난 것 이었다.
나는 더 나이가 들면 아이는 이제 영영 노래와 인연을 맺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고,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내세워 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의 대치는 꽤 오래 갔다. 나는 부탁하고, 애원하고, 설득하고, 협박하고 이 과정을 수 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 했다.
"엄마는 네가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월급에 매여 사는 직장인이 되어버렸지만, 너는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인생을 채웠으면 좋겠어."
라는 마일드한 버젼과 그럼 앞으로는 공부로만 딱 길을 정한거다 다른 길은 없는 거다 라는 협박 버전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아이의 행동을 이런 식으로 바꿔보려고 한 것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뭔가 촉이 왔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꼭 도전해야봐야 될 것 같은! 이번이 정말 내 아이 아이돌 만들기 프로젝트의 존치와 폐기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결국 오디션 날 아침까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지만, 아직 그녀석이 나를 이길 순 없었다. 다만 생각했다. 다음에 또 이렇게 갈등이 발생하면 이제는 내가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오디션 지정곡은 '고향의 봄' 이었는데 그 노래의 원키가 그렇게 높은 줄 몰랐다. 진짜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오디션곡은 까다로운 곡을 일부러 고르는 구나 싶었다. 당일 아침까지 가느니 마느니 했기 때문에 몇 번 연습도 하지 못하고 1절 가사만 간신히 외운채 오디션 장에 도착했다. 오디션을 보는 장소에 유리창으로 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오디션 보고 있는 현장을 보고, 안에서 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차례가 왔다. 아침부터 저기압 이던 아이는 오디션 장에 들어가서 나 무대체질이야 라는 것을 증명하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오디션 심사 위원은 3분이셨는데 지정곡과 자유곡을 부르는 동안 표정이 좋아보이셨다. 노래가 끝나자 가운데 있던 심사위원분이 아이에게 물었다.
"노래를 어디서 배운 적 있니? 잘하네! 우리 좋은 공연 만들어보자."
합격이었다. 결과는 몇 일 뒤 나온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서초구 어린이들만 지원할 수 있는 한정된 기회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공신력있는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노래를 배운 적 있니 라는 한 마디가 내 마음속에 에코 되고 있었다. 오디션은 채 5분이 되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 그 5분의 시간의 보내고 온 아이는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표정이 엄청 밝아진 채 나와서 밥먹으러 가는 길에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랬다. 이 녀석도 노래는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던 거였다. 그런데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주시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길 잘했단다. 감사했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또 자신이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엄마가 끌고와준 것에 은근 고마워 하고 있다는 것에. 그렇게 아이는 매주 토요일 합창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는 합창 시간을 꽤나 기다리고 좋아했다. 아이의 그런 모습과 잊혀지지 않는 심사위원의 한 마디는 내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 가게 만들었다. 바로 다시 한 번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본 것이었다. 마침, 상반기 신입단원 모집 공고가 딱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이 접수기간이었다.
와, 혹시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