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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와인바 사장 Nov 11. 2019

와인 첫잔을 테이스팅하는 이유

"레스토랑에서 첫잔을 테이스팅하고 나서, 맘에 안들면 바꿀 수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와인이 내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와인을 교체할 수는 없습니다. 첫 한모금을 마셔보는 ‘테이스팅’의 목적은, 이 와인이 상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함입니다. 첫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네,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네, 이 와인은 상하지 않은 정상적인 와인이군요. 계속 서빙 부탁드립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만약 “맛이 좀 이상한데요? 확인해 주시겠어요?”라고 말하게 되면, 소믈리에도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해 보고, 상한 와인이 맞을 경우 바로 다른 와인으로 교체를 합니다. 와인이 내가 좋아하는 맛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절차가 아닌 것이죠.


그런데, 꽤 옛날에, 테이스팅을 하시겠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에게 해보라고 권하면서, 

“응~ 괜찮아~ 맛보고 맘에 안들면 사장님이 바꿔주실꺼야~ 그렇죠?”

라며 함께 온 지인들에게 거들먹거리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단호하게, 

“아닙니다. 와인이 상했을때에만 바꿔드립니다.”

라며 뻔뻔하게 싱긋 웃어버렸죠. 바꿔주긴 뭘 바꿔줘요. 누군 땅 파서 장사하나.

물론, 상했으면 즉시 바꿔 드립니다. 한잔을 마셨든, 반병을 마셨든, 이 와인이 상한 와인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즉시 바꿔드립니다. "그 가게, 맛없는 와인 팔더라."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

코르크에 이렇게 곰팡이가 끼어 있다면, 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드실겁니다.

“어라? 난 상한 와인이 어떤건지 모르는데, 그러면 테이스팅을 해도 소용없는거 아닌가?”

네. 맞습니다. 상한 맛이 어떤 맛인지 모르는데, 테이스팅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냥, “이 와인은 이런 맛인가 보다”라고 생각해 버릴 뿐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한 와인을 피해 갈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소믈리에 혹은 직원에게 부탁합시다.

 “어차피 제가 시음해도 잘 모르니까, 확인해 주시겠어요?”

믿으세요. 소믈리에는 사기치지 않습니다. 와인에 대한 전문가들이고, 맛있는 술 나눠먹기 좋아하는 술꾼들입니다. 게다가 와인이 상한 상태이더라도, 가게에 손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상한 와인은 수입회사에서 바꿔주거든요. 오히려 상한 와인이 나오면 소믈리에는 뿌듯해 할 수도 있습니다. 손님에게 자신의 전문가적 소양(?)을 뽐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테이스팅을 부탁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제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에서는 상한 와인을 구분해 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소믈리에이거나, 와인업계(수입회사, 바, 레스토랑, 주류 관련 업체 등)에서 최소 1-2년 이상 일했거나, 개인적으로 와인을 좋아해서 몇년 이상 꾸준히 마셔온 사람 정도는 되어야 상한 와인을 구분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기는 듯 합니다.


사실 저도 상한 와인에 대한 감을 잡는데까지, 와인장사 시작한 이후부터 거의 5년 이상 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간혹 헛갈릴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디 다른 가게에 가서 와인을 마실 일이 있을 때엔, 나름 조심을 하게 됩니다. ‘내가 느끼기엔 상한 것 같은데, 사실은 상한게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소믈리에가 없는 가게에서 와인을 마실경우, 상한 와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엔 직원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저, 이거 맛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주실수 없을까요?”

직원이 교체해주면 완전 땡큐인거고, 직원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 곧바로 수긍하고 그냥 마십니다. 절대 토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직원을 못 믿고, 직원도 저(손님)를 못 믿기 때문인 것이죠. 일단 저는 가게 직원이 상한 와인을 구별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가정을 합니다. 그럴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요. 반대로 직원 입장에서는, 제가 와인이 이상하다고 말한 순간, 뭣도 모르는게 태클 건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실제로 그런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괜히 말씨름해서 기분좋은 술자리를 망치느니, 상했더라도 그냥 마시는 것입니다. 상한 것도 술은 술이다보니 마시면 취하고, 마신다고 탈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상했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맛이 변했다는 것이지, 먹으면 탈이 나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전 장사를 하다가 상한 와인이 나올 경우, 일단 새 와인으로 교체해 드리고나서, 꼭 정상 와인과 같이 비교해 보시라고 상한 와인도 한 잔 드립니다. 상한 와인을 만나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거든요. 상한 와인이 어떤 맛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들어봤자, 그냥 한번 먹어보는 것만 못합니다. 직접 향을 맡고 먹어보고 해봐야 깨달을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겠다면 믿고 부탁합시다. 와인을 잘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 소믈리에나 요식업 종사자들의 역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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