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90일 미국 자전거여행] Day48~49
Day48 산타페 휴식 1일 차
산타로사에서 앨버커키까지 곧장 가도 되지만 산타페와 애비퀴우를 꼭 가보고 싶어서 북쪽으로 잠시 방향을 틀었다. 숙소 조식을 먹고 산타페 구경 나갈 준비를 했다. 기분 좋은 포키 ♡ 산타페 Rail yard라는 곳에서 토요일마다 아티스트 마켓이 열린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산타페는 철도 산업이 발전했었는데 고속도로와 항공 산업의 발전이 잇따르면서 철도 산업이 쇠퇴하였고, 기차역 주변 버려진 옛 건물들을 원형은 그대로 보전한 채 개조하여 상업, 관광지로 개발하였고 주말이면 이곳에서 아티스트 마켓, 파머스 마켓 등이 열린다고 한다. 잠시만 구경하고 올게ㅠㅠ 심사에 통과한 작가들이 그림, 의류, 조각 등 각종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한쪽엔 음식이나 농산물을 파는 파머스 마켓도 열리고 있었다. 아티스트 마켓은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고,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그림은 찾을 수 없었다. 산타페는 어도비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주를 이루어 도시 전체가 독특하고 매력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도비 양식은 1600년대에 스페인 사람들이 뉴멕시코로 이주할 당시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원주민들의 전통가옥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지나가다 발길을 이끄는 갤러리가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점심을 먹으러 찹스틱스 Chopstix라는 아시아 음식점에 갔다. 뷔페식으로 되어 있고 3가지 정도의 음식을 담아 먹을 수 있었다. 동양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한국인이었다. 맛있게 먹고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주인아저씨가 포장 용기에 몇 가지 음식을 더 담아서 싸 주셨다. 그런 다음 드디어 너무도 기대했던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에 갔다. 사실 포키도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실치 않고 인터넷으로 그녀의 그림을 하도 많이 봐서 그냥 가지 말까 하다가 갔는데, 안내원이 포키를 도우미견이라고 하고 같이 들어가라고 해서 포키를 안고 기분 좋게 관람을 시작했다.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생전에 조지아 오키프가 산타페에서 작업하고 머물던 집이었다고 한다. 오키프는 꽃 그림으로도 유명한데, 보통의 꽃 그림과 달리 아주 크게 확대하여 그렸다. 사람들은 이를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곤 했고, 남성 화가들이 그녀에게 빈정거리며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왜 이렇게 꽃을 크게 그리는 거죠?"
오키프가 되물었다. "당신들은 산을 그리는 화가에게 실제보다 왜 그렇게 작게 그리는지 물어본 적이 있나요?" 실제 오키프가 꽃을 확대하여 그린 의도는 아래와 같다.
내가 꽃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면 아무도 내가 본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나는 꽃을 아주 크게 그렸다. 사람들은 놀라서 그림을 바라보았고, 그걸 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내가 꽃 속에서 본 것을 아무리 바쁜 뉴요커들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들여 보게 만들었다.
우리가 꽃을 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진짜로 봤다고 할 수 있을까? 비단 꽃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오키프는 혼인 관계를 유지했던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스티글리츠)로부터 바람이라는 배신을 당한 뒤 마음을 달래려 뉴멕시코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의 광활한 풍경에 매료되어 마음이 아플 때마다 찾아갔다고 한다. 스티글리츠가 사망하고 3년 뒤인 61세에는 산타페에 완전히 정착했고, 98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뉴멕시코에서 고독을 벗 삼아 은둔하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중 광활한 사막에서 발견한 동물의 두개골에 매력을 느꼈는데, 고립된 사막에서 바람과 햇살에 닳은 두개골 그림을 통해 삶의 일시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막에서의 고독한 생활은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그녀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배운 것들에서 벗어나 좀 더 그녀 내면에 가까운 것을 표현하려 한 결과 어느 것에도 영향받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70세가 넘어 세계일주를 하였고 90세를 앞두고 새로운 연애를 했다. 이렇듯 자기만의 길을 갔던 그녀의 유해는 뉴멕시코 사막에 뿌려졌고, 그토록 사랑했던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게 정말 너무 좋았다. 그중에서도 뉴멕시코 풍경화들이 제일 좋았는데, 아무도 없는 광활한 곳에서 그림에만 푹 빠져 그렸을 고독이 전해지는 듯했다. 다른 스타일의 스케치와 수채화들도 있어서 그녀도 한 번에 자신만의 화풍을 갖게 된 건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만의 스타일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조금 해보고 나는 소질이 없다고 안 된다고 포기하던 날들의 내가 떠올랐다.
관람을 마치고 캐년로드로 가서 스타벅스에도 가고 갤러리 등 이곳저곳 더 구경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캐년로드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환상적이었는데, 한 번 정도 큰 오르막이 있은 뒤에는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졌고 경치도 끝내줬다. 자전거 타는 게 이래서 좋다. 차 타고 여행했으면 놓쳤을지도 모르는 풍경을 느린 시선으로 볼 수 있으니까.
마트에서 콜라랑 토마토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아까 찹스틱스 아저씨가 포장해 주신 오렌지 치킨과 몽골리안비프(불고기와 비슷했다)로 저녁을 먹었다. 차게 식었는데도 너무 맛있었다.
Day49 산타페 휴식 2일 차
오늘은 이틀 머문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챙겨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날씨가 너무 좋네 포키야~~ 산타페는 해발 2,234m의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다. 오늘은 웜샤워를 구하려고 산타페 지역 호스트들에게 연락해 보았는데 연락 주겠다던 호스트가 결국 오늘은 안 되겠다고 했다. 웜샤워 요청이 늘 수락되는 것은 아니고 사실 안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하는 수 없이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자전거를 타고 먼 길 찾아간 교회에서도 교회 뜰에서 캠핑하는 것은 위험할 거라며 거절하였다. 일단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스타벅스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그런 다음 춥고 서러운 마음으로 광장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롤 같은 것을 사 먹었는데, 안에 든 사워크림이 너무 좋다. 그런데 잘 곳도 없고 추웠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나만 혼자라 외롭다고 느껴졌다. 오늘은 어디서 자려나... 우리만 추운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외로움과 고독, 혼자인 시간들.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겠지. 산타페는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큰 도시답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그래도 너무 예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한 화랑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주인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역시 거처 없이 화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그림들로 가려진 화랑 뒤편의 공간이 영업이 끝난 뒤 그가 돌아가 저녁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그는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는 듯 좋은 말들을 적어 번역기를 돌려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산타페에 살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일단 오면 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옷가게가 있으니 그런 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내게 잘 곳이 없으면 화랑에서 자도 좋다고 해서 하루 신세 지기로 했다. 내일은 다시 라이딩을 해서 애비퀴우(Abiquiu)로 갈 것이다. 애비퀴우는 조지아 오키프가 홀로 살며 작품활동을 했던 집이 있는 곳인데 근처에 웜샤워를 구했다. 그곳에서 멋진 자연을 실컷 즐기고 눈에 담아 와야지.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잠시 주춤했지만, 아직 40일 정도 남은 후반전을 잘 마무리해야겠다.
사막, 공허한 땅. 빠른 것들과 큰 것들의 땅에서 작고 힘없는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자꾸만 약해지지만, 누군가 그랬다. 그건 당연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