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오고 청소부가 됐다.

고양이 털이 부담스러우신가요?

by 스페라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늘 같았다.

"털이 얼마나 많이 빠지는데... 털 때문에 어떻게 키우니?"

나 역시 고양이를 키우는 집에 갔다가 펄펄 날리는 털, 옷에 잔뜩 붙은 털뭉치들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다.

그때는 털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키우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니 그깟 털 쯤이야, 자주 빗어주면 되지 싶었다.

다들 그렇게 키우니 말이다.





우리가 데려온 고양이는 브리티시 숏 헤어. 털이 짧으니 페르시안이나 메인쿤, 노르웨이숲 고양이처럼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브숏도 이중모라 생각보다 많이 빠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게다가 태양이는 덥다고 전 보호자가 미용을 시켜 털이 짧았다.

만져도 묻어나지 않았고, 풀풀 날리는 털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그루밍도 어찌나 꼼꼼하게 잘하는지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나왔다.

세수는 나보다도 더 깔끔하고 꼼꼼하게 오래 한다.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이로 앙앙 물어 그루밍을 하는 걸 보면 신은 고양이에게만 왜 이런 능력을 주셨을까 싶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볼일을 보고 나면 서장훈급(?) 깔끔냥처럼 모래를 꼼꼼하게 덮는다.

야생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즉,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야생성이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쯤 되면 집사가 할 일이 없을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털은 덜 보이지만, 짧아도 보이지 않는 죽은 털은 여전히 날린다.


그리고 화장실 모래.

깔끔하게 덮고 나오는 데까지는 멋지다.

하지만 발끝에 묻은 모래 알갱이가 봄바람에 벚꽃 잎 떨어지듯 여기저기 흩날린다.


거실이고 방이고 복도고 태양이가 다니는 곳곳에

모래가 한두 개씩 떨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매일 밟는다.


처음 녀석을 데리러 보호자집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청소를 안 했는지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게 자꾸 밟혔다.

왜 이렇게 청소를 안 하나 싶었는데 태양이가 어질러놓은 모래였던 것이다.






왜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털 얘기만 하고 모래 얘기는 안 했을까?

털보다 모래는 치우면 그만이니까.


모든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결혼하면 알콩달콩 행복할 일, 아이 낳을 일 등등 큰 것만 이야기하지 사소한 것쯤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래도 그런 거 같다.


태양이가 오고 나서 내 하루는 달라졌다.

새벽 5시 기상, 일어나자마자 태양이의 화장실로 직행한다.

밤새 녀석이 싸놓은 감자(소변), 맛동산(응가)을 치우고 모래가 떨어진 길을 마른걸레로 닦아낸다.

이른 새벽이라 청소기를 돌릴 수가 없다.

미니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물을 갈아준다.

밥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사료를 담은 후, 아침이 되면 청소기를 한번 더 돌린다.

중간중간 화장실에서 감자를 캐고, 모래를 치우고 털을 빗겨준 후 돌돌이로 내 옷에 털을 뗀다.

청소기를 한번 더 돌린 후 매일 밤 양치를 시킨 후 잠에 든다.


24시간 중 고양이가 온 후 내가 청소에 소비하는 시간은 약 30분쯤 더 늘어난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이 뒷바라지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왜 스스로를 '집사'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집사 된 나와 남편은 예전 같으면

신경도 안 쓰던 베란다 구석구석을 매일 청소한다.

에어컨 뒤도 책장과 창문 틈 사이사이도 걸레로 꼼꼼하게 닦는다.

이유는 단 하나, 녀석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곳에 먼지가 쌓여 있으면 고양이 털에 묻고, 그것을 또 그루밍할 테니

태양이의 건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양이가 오고, 털이 날리고 모래가 떨어져 있는 집.

고양이 때문에 집이 지저분 해질 거라는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 집은 더욱더 깨끗한 집이 되어

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고양이가 오면서 집은 더 어질러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우리 마음까지 정리되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 일에는 장점만 있거나, 단점만 있지는 않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양이 키우는 것은 좋지만, 청소는 싫다면

함께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청소는 덤일 뿐.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모드로 바꾸면,

고양이를 키우는 건 세상 가장 행복한 일이 된다.

녀석의 미소를 보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야옹하고 대답이라도 하면 어질어질 정신이 혼미해진다.


우리 집에 복덩이 복덩이~

이렇게 이쁜 복덩이가 들어와서

우리를 부지런하게 해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앞으로도 쭈욱~~~ 부지런하게 청소하며 살아보련다.


#고양이 #집사일기 #브리티시숏헤어 #반려묘 #일상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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