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카 사연] 사라진 나라, 가슴엔 살아있는 나라

사연 제공 :김작카

by 김작카


대학 광고동아리 선배와 같이 서울에서 열린 광고 관련 행사에 참가했다가 서울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시내버스로 신사역을 막 지나치는 중 차창 너머로 광고회사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광고 관련 잡지에서만 보아왔던 나라기획이었다. 지망생이었던 당시 광고회사 이름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렸는데 밤에 빛나는 간판 실물을 영접하니 심장이 외출할 거 같았다. 나는 선배에게 “저거 광고회사 나라기획이야. 같이 가보자”라고 거의 통보하듯 얘기하고 하차 벨을 잽싸게 눌렀다. 다른 일엔 소심해도 광고동아리 활동만큼은 지나치게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었던 나의 결단을 선배는 인정해주었다.

계단을 올라가 겁도 없이 문 손잡이부터 돌렸다. 잠겨 있었다. 안쪽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곧이어 직원 두 분이 인기척을 느끼셨는지 밖으로 나오셨다. “무슨 일이세요?” “아, 예... 저희는 광고동아리 대학생들인데 지나가다 광고회사 간판을 보고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십중팔구 우릴 돌려보냈으리라. 속으로 ‘별 미친 녀석들 다 보겠네’ 하고 말이다. 그때는 밤이었고, 그분들에게는 우리가 온다는 아무런 정보 없이 맞닥뜨린 참사였고, 보안이 중요한 광고회사인 데다, 대책 없이 찾아온 우리의 행색은 사실 좀 꼬질 하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두 분은 모두 거부감 없이 우리를 회사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경쟁사 스파이나 미치광이가 아니라, 광고에 대해 정말 관심 있는 순수한 후배들로 생각하신 것 같았다. 마침 두 분만 남아 당직을 서시던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주간 업무 중이거나 사장님이라도 계셨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이 궁금하냐는 질문에 나는 나라기획에서 만든 광고가 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분들은 클리어 파일에 담긴 광고물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광고가 만들어진 배경이나 방향 등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때 본 광고 중 하나가 상어를 등장시킨 인텔 잡지 광고였다. 책의 글귀나 교수님의 강의가 아닌 현직 실무자의 그야말로 활어 같은 이야기를 들으니 그분들의 말씀이 바로 뼈와 살이 되어 다가왔다.


광고의 기획 과정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말씀 드리니 어디선가 파일 몇 부를 복사기로 복사해 건네주셨다. 광고기획서였다. 너무 놀라서 저희가 이런 걸 가져도 되냐고 물으니 이미 경쟁 PT가 끝난 거고 시간도 오래되어 괜찮다는 것이다.


우연한 발견, 예정에 없던 돌발적 만남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후배들을 위해 아낌없이 마음의 문을 열어준 이름 모를 광고계 선배님 두 분이 생각나는 밤이다. 다행히도 그분들은 아니지만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난 나라기획 출신 두 형님과 지금도 수십 년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책에도 사연을 남기신 분들이기도 하다. 두 형님들에게 잘하는 것이 그때의 두 분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길일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김작카-


오늘의 네가 아니었다면 난 영영 사랑을 몰랐을 거야.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

사랑받는 법도!

-영화 <IF Only> 중에서-


-김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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