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아이가 지내왔던 인큐베이터 문이 열렸다. 엄마는 그제야 아이를 처음 안아볼 수 있었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는 아이의 몸을.
“심장박동은 아직 뛰는 거 아닙니까?” 심전도 모니터를 바라보던 아빠가 지푸라기 부여잡는 표정으로 물었다. 간호사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망 후에도 잠시 유지됩니다. 곧 멎을 겁니다.” 그 말이 맞았다. 그렇게 아이는 세상과 안녕을 고했다. 못난 아비는 내심 끝까지 붙잡고 싶지는 않았었다.
뇌에 물이 차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머리, 기적적으로 살더라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담당교수님의 설명 앞에 그래도 키우겠노라 무조건 살려만 달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배짱이 부족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단 한 번도 이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장례절차를 밟더라도 관에 쌓인 채 벗어나야 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난 걸까. 울 힘도 없는 엄마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든 후 아빠는 창가로 아이를 데려갔다. 이미 끝났지만 마지막에 햇볕이라도 제대로 쬐어주고 싶었던 요량이다.
그동안 아이와의 접촉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인큐베이터에 뚫린 구멍 사이로 손가락을 내밀면 아이는 있는 힘껏 아빠, 그리고 엄마의 손가락을 쥐었다. 지켜줄게 지켜줄게 부질없는 약속을 했다. 이제는 다시 쥘 수 없겠지.
잠 못 이루는 밤, 기댈 수 있는 건 인터넷뿐이었다. 조산아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찾아 헤매다 보니 관련 부모님 모임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의 회장님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사연을 듣던 회장님이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본인의 딸이 생각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장님의 딸도 조산아로 태어나 몇 년을 힘겹게 살다가... 잠자리에서 그대로 하늘나라에 가버렸다는 사연이었다.
그러고는 하는 말, "의사분들이 그 정도로 심각하게 얘기하면 아이가 정말 괴로운 거예요. 떠나려 할 때 억지로 잡지 말고 보내주세요..." 그동안 살펴본 조산아 관련 글들은 의사의 부정적인 얘기에 기죽지 말고 어떻게든 살려보는 게 좋다는 글 위주였다. 아이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그런 의지를 갖는 부모들의 중심이 되었던 그 분이 그렇게까지 얘기할 정도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어 보였다. 오래지 않아 생명에 큰 위기가 찾아왔고 우리는 그렇게 제윤이를 떠나 보냈다.
소박한 화장을 치른 후 더 이상 쓸모없어진 유축기를 반납하러 지하철에 오는 길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지하철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지만 나 자신을 말릴 수 없었다.
45일 같이 있어주었던 그 시간, 제윤이에게 고마웠다. 사랑하게 해줘서.
그리고 이해관계도 회원가입 권유도 없이, 함께 울어준 조산아 부모 모임 회장님의 따뜻함, (의사가 운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안타깝다며 함께 울어주신 의사 선생님, 사내에 소문이 퍼지면서 받은 수많은 격려의 메일, 어려운 내 사정을 알고 직접 모금 활동을 벌여주신 허정석 CD님, 모금에 보태주신 사우님들, 무엇보다 누구보다 힘겹고 슬펐을 와이프, 그 외에 표현은 못했지만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준 많은 분들까지... 고맙지 않은 분이 없다.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