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고마운 사람을 그리는 이들의 따뜻한 기억모음

머리말

by 김작카

고마운 사람을 그리는 이들의 따뜻한 기억 모음

저는 지금 저의 저 세상 여행 동반자가 될 뻔했던 사탕 하나를 오랜만에 입에 문 채 머리말을 씁니다. 딱딱해서 '돌사탕', 십리를 가도 그대로라 해서 '십리사탕'이라고도 불리는 사탕입니다. 사탕을 녹이며 나도 추억 속으로 녹아듭니다.


그때 전 네 살이었죠. 엄마와 함께 간 외갓집... 멀리서 온 손자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던 외할아버지는 저를 이끌고 구멍가게에 가셨어요.그동안, 엄마는 고된 시집살이를 잠시 접고 집안에서 한 숨 돌리고 계셨습니다. 얼마 후 집에 웬 아주머니가 급하게 들어오더니 엄마에게 “밖에 나가봐요, 애 죽게 생겼어”라고 했습니다. 놀란 엄마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나가보니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저를 안아 든 채 입술이 파랗게 질렸으며 제 얼굴은 그보다 더 파랗게 물들어가는 현장을 엄마는 보게 된 거죠. 무슨 일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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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사서 까준 십리 사탕을 오물오물 빨던 저는 천천히 녹여먹는 여유 대신 한방에 꿀꺽을 택했고 사탕은 목구멍에 정체되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거죠. 당황하면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걸까요? 응급처치법이 떠오르지 않은 (혹은 몰랐을) 엄마와 할아버지, 주변 사람 모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결국 저를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택시도 거의 없던 때고, 뛰어가도 한참인 거리임에도 살릴 방법이 그뿐이라 생각한 할아버지는 급기야 저를 둘러업었습니다.


이때 웬 아저씨가 짠~ 나타납니다. “병원 가다 애 죽어요” 한마디를 하면서 말이에요. 할아버지에게서 아저씨에게로 전달된 저는 발목을 잡힌 토끼처럼 거꾸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강렬한 등짝 스매싱이 연거푸 세 번 이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사탕은 입에서 툭 출토되었고 몇 초간 정적에 빠져있던 저는 으아아아 울고 말았습니다. 얼굴색도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고요. 상황이 진정된 뒤 할아버지와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하려 돌아보니 이미 아저씨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십리를 간다는 홍보문구와 달리 머리말의 중턱에 오기도 전에 사탕은 이미 녹아 사라졌지만 이제는 다시 못 뵐 이름 모를 아저씨에 대한 고마움은 여전히 남아있군요. 제가 이 글모음을 별 탈 없이 쓰게 되고 고마움이란 게 무엇인지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게 된 원초적 계기는 그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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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로나 이후 서로에게 많은 거리를 두고 있어요. 실은 거리를 두기 전부터도 각자도생을 이야기해왔고 세상은 결국 혼자라고 자조하듯 이야기해왔죠. 맞는 말이지만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우린 주변의 참 많은 이들의 크고 작은 고마움 덕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이 글모음을 기획하며 글 또는 사연을 제게 보내온 지인들 중 많은 분들이 얘기했어요. 기억에 남는 고마운 사람이 누구였는지 처음으로 깊이 되돌아보고, 그분들에게 늦게나마 고마움을 전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이제부터 연재하는 글들은 저처럼 생명을 구해준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에서부터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어준 고마움, 그땐 매정했지만 알고 보니 내 인생을 바르게 잡아준 고마움, 가볍지만 오히려 더 오래가는 고마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도와준 이에 대한 고마움, 당시엔 미처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 지금은 세상에 없는 분에 대한 고마움 등에 이르기까지 고마움에 대한 다양한 사연들의 집합체입니다.


가까이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에서 친구, 동료, 이웃, 선생님, 선후배, 우연히 만난 사람, 얼굴도 모르는 사람 등 우리가 살면서 맺게 되는 모든 관계 속에 고맙지 않은 사연이 단 하나도 없기는 어렵겠죠?


이 글모음을 보는 모든 분들이 책에 있는 사연들에 가슴이 따뜻해지고, 저마다의 기억 깊숙이 저장된 고마운 분들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근데...여러분은 누가 떠오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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