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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Aug 03. 2020

우울은 수용성

 엄마의 손은 계속 나를 향해 있었으니, 훌쩍이기를 그친 아빠가 휴지로 내 눈을 닦아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의 양손이 내 몸에 닿아있는 걸 경험하니 소름이 돋을 만도 한데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겨우 기운을 쥐어짜서 엄마한테 한 말은 '죽고 싶어'였다. 그렇게 아까 까지만 해도 마음속으로 살려달라고 외쳐놓고. 자식은 낳아봤자 정말 쓸모가 없다. 때마침 언니가 퇴근했고 바톤 터치를 했다. 언니는 우는 나를 한참이나 안아주고는 왜 우냐고 물어봤다. 나는 다시 소리를 쥐어짰다.


"쓸모없어, 나는."


"네가 뭐가 쓸모가 없어. 너 대작가 될 건데. 너 29살 때 언니 회사 다니면서 질질 짠 거 기억나지? 그때 츄가 옆에 없었으면 언니 밥도 못 먹었지. 그때 언니가 으앙거릴 때 츄가 옆에 있어줬지? 근데 봐 바. 다 지나갔지? 오늘도 그래. 다 지나갈 거야." 


 언니는 3인칭 주어로 자신을 지칭하며 나를 서른이 아닌 세 살짜리 애처럼 달랬다. 그리고는 우울은 수용성이라며 나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나는 씻고 언니의 손을 잡고 동네를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내 키는 172cm다.) 그리고 마사지가 뇌과학적으로 우울에 좋다며 이번에는 마사지샵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건장하신 중국인 아저씨의 따뜻한 손 덕분에 한 시간 동안 엎드려 숙면을 취했고, 내 눈은 더욱 볼만해졌다.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아저씨께 연신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감사하지 않은 사람한테도 감사하다고 의례적으로 말하며 산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떤 순간이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 순간인지를 착각한다. 적어도 내 생명의 은인은 확실히 내과의사가 아닌 중국인 아저씨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언니와 손 잡고 하나의 우산을 쓴 채 어깨 절반이 다 젖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씩씩하게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그리고 아빠의 자소서를 고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다시 썼다. 아빠는 글을 정말 더럽게 못썼다. 아빠와 엄마가 잘 썼다고 좋아했고, 언니는 '이제 다 키웠다며' 거들먹거렸다. 그리고 그 날 새벽부터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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