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on Aug 03. 2020

서른 살 안에 사는 다섯 살 아이

서른 살도 엄마의 관심이 필요해요

 건들거리는 내 발아래로 5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은 채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는 갑자기 멈추더니 엄마의 손을 물웅덩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둘 사이에 잠시 대화가 오가더니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 전화를 걸고, 아이는 혼자 한참을 물장구 위에서 첨벙거리며 뛰어다녔다. 발로 첨벙첨벙. 옆에는 친구도 한 명 없고, 그저 흙더미 위에 고여있는 물웅덩이인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10분을 첨벙거리며 뛰놀았다. 

 

 엄마의 통화가 끝나고 아이를 몇 번이나 가자고 끌어당겨도 아이는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돌고래 소리를 내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놀이를 막을 엄마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엄마도 포기했는지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를 한참 동안 지켜봤다. 너무 멀어 표정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혼자 즐길 만큼 즐긴 후, 엄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그 둘은 다시 손을 잡은 채 자리를 떴다.


 그때부터 무게중심이 움직이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약간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었던 것 같다. 나를 방 안으로 밀어 넣는 풍향으로 바뀌었달까. 오늘은 날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갑자기 창 밖을 내다보는 게 재미없어졌다. '나 지금 비겁하게 죽으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못 죽은 건가?' 기분이 더러워졌다. 창문을 소리 내 '탁' 닫고, 책상에서 내려와 내 방에 가서 잠자코 누웠다. 그리고는 다시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기분 나빠. 답답해. 숨 막혀.'  

 '왜 못 뛰어내린 거지? 겁쟁이라 죽지도 못했어.' 


 뭔가에 굴복당한 느낌이었다. 눈물조차 안 나오고, 목소리도 안 나왔다.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거렸다. 갑자기 방문이 열려 아무나 나를 번쩍 들어 안아서 저 밖으로 끌어내 줬으면 했다. 공기가 나를 짓눌려 숨 막히게 하는데도 소리를 낼 수없어 속으로만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불규칙한 내 수면시간에 대한 배려로 가족들은 간만에 찾아왔을지도 모르는 나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함부로 방문을 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열지 않는 한, 저 방문을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밥은?"


 하지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내 방문이 '벌컥' 열렸다. 엄마였다. 아무나 나를 살려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게 엄마는 아니길 늘 바랬는데. 왜 항상 나를 지옥으로 떨어트리는 것도, 건져내는 것도 엄마일까. 엄마는 정말 애증의 존재다. 엄마는 왜 자식이 아플 때 기똥찬 타이밍에 전화를 하고, 내 방이 더러워져서 견딜 수 없을 때 돌아오면 방을 치워놓고, 무릎이 아프다면서 밥을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요거트를 사러 뛰쳐나갔다 오는 걸까. 나는 정말 그런 엄마가 지독하게 싫다.


 두 눈만 꿈벅거리며 천장을 보고 있으니 엄마가 다시 물었다.


"밥은?"


 저 아줌마는 저렇게 속 편한 소리를 한다. 몇 분 전에 나는 9층 아래로 떨어질 뻔했는데. 나에 대해서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맨날 저렇게 밥타령을 하는지. 평상시처럼 두 눈에 힘을 준 채 똑바로 엄마의 눈을 마주치고 '아! 안 먹어!'를 외치려는 순간, '아'부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울어도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먹으며 혼자 질질 짜기나 했지, 이렇게 꺼이꺼이 5살처럼 돌고래 소리를 내며 운 건 처음이었다. 앞도 보이지 않는 눈물이었다. 태어나서 엄마 앞에서 이렇게까지 울어본 적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곡소리에 아빠까지 달려왔다. 그 광경은 평생 담아두며 간직해야 하는데 눈이 부어 앞이 칠흑이었다. 나는 계속 베개 위로 물웅덩이만 쏟아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몹시 차분했다. 마치 내가 태어날 때부터 오늘 이 순간에 이렇게 추한 꼴로 울 줄을 30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울기만 하는 내 소리에 간간히 누군가 훌쩍거렸다. 내게 계속 들리지 않는 말을 거는 차분한 엄마 목소리를 봤을 때, 아마도 그 소리의 출처는 여린 공대 남자다. 아빠의 훌쩍이는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참 다행이다. 


 엄마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계속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왼손으로는 내 손목을 쓰다듬고, 오른손으로는 내 가슴 계속 쓸어내렸다. 마치 급체한 사람을 매만지는 것처럼 내 가슴 중앙을 계속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같이 우는 아이를 8명은 키워본 사람 같았다. 그때 엄마가 한 말 중 기억나는 문장은 두 개였다.


"이 작은 가슴에 무슨 상처를 그렇게 쌓아뒀노."

"이렇게 반짝이게 예쁜데 왜 방에 혼자 틀어박혀 매일 울고만 있노."


 엄마 앞에서 부은 눈을 보인 적도 없는데, 혼자 새벽에만 조용히 울고 휴지도 분명 쓰레기통에서 다 치웠는데. 내가 질질 짜는 소리를 누가 들을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먹으며 울었는데. 왜 엄마는 다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날 따라 엄마답지 않게 자상한 어조는 증조할머니 같았다. 엄마를 키운 증조할머니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 속 대사도 땅딸보 5살 꼬마인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를 닮아 어찌 이리 예쁠고.'였다. 내가 예쁘기는 오지게 예쁜가 보다. 동네 내과의사도 엄마도 증조할머니도 내 예쁨을 칭찬하기 바쁜걸 보니.

이전 06화 인생의 무게중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