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고 보면 교사도 사람입니다
12년 동안 학교는 세 군데를 경험했고, 교무실은 7군데를 경험했어요. 그런데 매년 장소도 바뀌고, 같이 근무하는 교무실 선생님들이 바뀌면서 학기초에는 탐색전에 들어갑니다. 쉽게 말해 눈치를 보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교무실 분위기에 따라서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게 좋을지 판단하기 위해서예요. 물론 교무실 분위기는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고, 부장님의 운영방침에 따라 다르지요.
그런데 웃기게도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들에 의해서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어찌 보면 사회화가 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다양한 사례가 있어서 공유해볼까 합니다.
부서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총무를 정하고 비품이나 간식 등 교무실에 필요한 물품을 사두고 함께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동의 물건을 소유하여 함께 나눈다는 의미지요. 당연히 공동체 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생각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 이슈가 생깁니다.
한 번은 간식을 엄청 좋아하는 선생님과 다이어트한다고 간식을 전혀 안 먹는 선생님이 포함된 교무실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두 선생님의 신경전이 시작되었죠. 매달 물품을 구매할 때 서로 의견차가 생긴 겁니다. 간식을 안 먹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간식을 많이 사는 게 아니냐는 의견 때문에 충돌했던 것이지요.
이로 인해 학년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학년 부라서 10개 반 담임교사와 학년부장교사까지 11명이 모두 모여 간식비를 걷느냐 안 걷느냐 안건이 생긴 겁니다. 결국엔 다수결로 정했는데, 계속 회비는 걷되 공평하게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미리 조사하고 동의를 구해서 진행하자는 결론으로 마무리하였지요.
하지만 이미 신경전이 벌어진 후라 나머지 9명의 선생님들은 그 두 분이 행여나 또 부딪힐까 봐 1년 내내 숨죽이며 간식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메신저로 물품 구입 의사를 묻고 정리하여 구입을 진행했지요. 그렇게 일단락되었으나 분위기는 가끔씩 냉랭했답니다. 하루 종일 생활하는 교무실에서 사소한 일로 다툼이 발생하니 서로 눈치 보느라 말수도 많이 줄었어요. 사실 학교 생활도 우리 삶의 일부인데 이렇게 눈치를 보기 시작하니 답답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자존심 센 고래 선생님들의 알력 싸움에 새우 등 터질까 조마조마하면 살았던 경험을 공유해봅니다. 학교에 있다 보면 나이가 젊은 부장 선생님과 경력이 많고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부원 선생님으로 구성원이 형성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퇴직이 얼마 안 남았으니 부장교사를 하기보다는 평교사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문제는 후배 교사가 부장교사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줘야 하는데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고 서로 힘겨루기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나머지 신규교사나 저 경력 교사들은 그 두 사람의 싸움 사이에서 숨 막힐 정도로 눈치 보느라 매일 학교 가는 게 부담이 되곤 합니다.
심지어 아무리 올바른 의견이 있어도 누군가의 의견에 동조하면 그 하루는 분위기가 매우 험악합니다. 기분이 안 좋아서 하루 종일 썩은 표정으로 교무실 생활을 하게 되거든요. 그 기운이 모두 전해져서 끔찍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우리는 무슨 죄라고 그런 상황에 놓이는지 가끔은 억울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때 필요한 존재가 있어요. 바로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중간 정도의 경력 교사가 중재를 하는 거지요. 물론 성격도 둥글둥글 넉살 좋게 분위기 전환을 시도할 수 있으면 좋답니다. 그런 중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시 교무실 분위기는 살아납니다. 하지만 다들 성격이 눈치만 보는 성격이라면 신규교사이자 초임교사로서는 정말 숨이 막힙니다. 누구의 편도 아닌데 괜히 서로 자기편을 만들려고 하니까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저는 다행히 이제는 그 중간 역할을 하는 경력이 되어 눈치를 잠깐 보다가 빠르게 판단하고 상황을 어떻게 전화위복 하게 만들 것인가 고민합니다. 그리고 사립학교에 있으니 각 선생님들이 어떤 것에 불편해하고, 기분 나빠하는지 알기에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손을 써서 폭풍을 예방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신규 선생님들이 제게 의지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비록 지붕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산이라도 되어 비를 막아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20~30년을 함께 지내야 하는 한 학교에서 성향이 맞지 않아서 불편한 사람이 생긴 경우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40년 가까이 사실 인간관계로 고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인생 최대 위기가 왔지요. 게다가 같은 교무실에서 몇 년간 같이 생활하니까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더군요. 부딪히지 않으려면 항상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온 겁니다.
물론 저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도 불편해했거든요. 그래서 서로 눈치 보면서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지요. 우리는 편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한테 화를 내는 상황이 발생하면 즐겁게 하던 대화를 멈추고 눈치를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메신저를 읽지 않고 계속 주변 사람에게 핵심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들 바쁜 척하면서 대답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봤지요.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1년 내내 혹은 몇 년 동안 계속 그러니까 점점 사람들도 지쳐가고,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심지어 누군가 가져온 간식을 하나 먹으려고 살짝 눈치 보면서 주변 선생님들께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을 듣고 굳이 그런 말을 하고 먹냐며 핀잔을 주는 겁니다. 그때 후회하며 생각했죠. ‘그냥 차라리 간식 먹지 말걸. 아니면 말을 하지 않을 걸.’ 주변에 그 선생님이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결과였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왔기에 눈치 보지 않은 걸 후회한 것이죠.
저도 사실 학교 생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평생 봐야 할 직장이니 누군가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불편한 관계가 되면 남은 삶이 괴로울 것 같아서 조심하게 됩니다. 공립학교라면 몇 년 후에 다른 학교로 가서 안 볼 수 있겠지만, 사립학교는 평생 함께 가야 하니 그런 점에서 더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살면서 불편하다고 느끼면 피하거나 도망갈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으니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눈치를 보는 것이죠. 저도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어요. 다만 평화주의자로서 남은 학교 생활 속에 불편한 일을 만들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조금 덜 눈치 보지만, 신규 교사 때는 정말 숨 막힐 정도로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그 정도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그때는 왜 그랬나 모르겠네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중간에 낀 세대로서 이제는 신규 선생님들의 눈치도 보기 시작했답니다. 행여나 내가 꼰대가 되지는 않을까 그게 걱정이거든요. 제가 배운 대로 그대로 하면 분명한 꼰대가 될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제 기준이 신규 선생님들의 기준에 맞을지 몰라 눈치를 보는 것이지요.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조심스럽답니다. 어쩔 수 없지만 학교에서는 평생 이렇게 눈치 보면 살 것 같네요. 물론 눈치를 볼 지 안 볼지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