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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Sep 12. 2023

<나는 83년생입니다>

프롤로그


나는 83년생입니다...


정확히는 84년 1월에 태어난 빠른 생입니다.


학교 친구들은 모두 83년생이죠. 요즘은 빠른 생이 없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3월에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다음 해 2월생까지 혹은 그 이후에 태어났어도 신청을 하면 1년 빨리 태어난 형, 누나, 언니, 오빠들과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족보가 꼬이기 시작한 게 말이죠.


가끔 친구들과 놀다가 생일을 묻곤 했어요. 그때는 부잣집의 전유물인 ‘생일 파티’가 나름의 유행이었기 때문이죠. 생일 주인공은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서 진수성찬 밥상을 차렸어요. 정확히는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상이 되겠네요. 밥상 앞에는 초대받은 친구들이 쌓아 올린 반짝거리는 박스가 산을 이루고 있고요. (지금은 촌스롭기 짝이 없는 포장지 디자인...)


그때는 6.25 전쟁 때도 아니었지만, 아직 그렇게 넉넉할 때는 아니었습니다. 도시락에 김치가 아니라 비엔나 소시지라도 들어 있는 날에는 친구들에게 뺏기기 일쑤였죠. 다같이 모여서 도시락 반찬통을 내놓고 공유했으니까요. 대게 보통은 종이 맛이 나는 동그랑땡이나 햄, 김치, 멸치볶음, 구운 김 정도가 보통의 반찬이었으니까요.


그런데 LA갈비, 잡채, 함박스테이크 등 평소 잘 먹을 수 없는 맛있는 반찬이 가득한 상을 만나면 눈이 돌아가죠. 상다리가 부서질 것 같았던 친구의 생일상이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땐 그게 대단한 일이었죠.

생각해보니 저는 단 한 번도 생일 파티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항상 방학 때 생일이었으니까 친구들을 만날 수도, 초대할 수도 없었죠. 어쩌면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 형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친구들은 내 생일 날짜를 듣고는 놀리곤 했습니다. 1살 어린 동생이라고 말이죠.     


“형이라고 불러봐!”

“누나라고 불러봐!”     


그때는 악착같이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같이 학교 다니니까 친구지 무슨 형이냐, 누나냐 따져 물었죠. 친구들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제가 웃겼던 건지 더 자주 놀렸던 것 같습니다. 건드렸을 때 꿈틀거리는 지렁이 반응이 더 재미있는 것처럼 말이죠.     


만일 지금 누군가 또 그렇게 놀린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죠.      


“그래 너 나이 더 많이 (처)먹어서 좋겠다.”

“형이라 불러주랴? 누나라 불러주랴?”     


그런데 삶을 새로 재정비하는 날이 오기까지는 빠른 생년으로 살아가는 게 그때는 마냥 싫었던 모양입니다.



     

뼈아프게 대학 입시에 두 번이나 실패하고, 우여곡절 끝에 재수해서 대학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산소(O2) 학번인 제 친구들과 같은 02학번이었을텐데... 재수했더니 오존(O3) 03학번이 되었죠. 그동안은 동생이었던 친구들이 진짜 친구가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부 친구들은 당당하게 자기가 83년생이라 형, 누나, 오빠, 언니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참 애매하더군요. 학교를 먼저 다닌 것은 맞지만, 태어난 건 84년이니까 참으로 애매했습니다. 20년 동안 그렇게 아득바득 우겨서 나는 음력으로는 83년생이니까 같은 나이라고 주장했던 저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03학번 동기들과 그냥 친구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다고 83년생인 선배 혹은 동기들에게 마냥 형이라고 누나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그래서 83년생들을 만나면 재수한 것을 밝히고, 84년생들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 없으니 말하지 않았죠. 그러다 하루는 묘한 기분이 드는 일이 발생합니다.


같은 03학번 동기들인데, 세 명이 대화하게 된 것이죠. 혹시 무슨 일인지 예상이 가시나요? 네 맞습니다. 재수 안 한 동기는 저한테는 반말하고 재수한 다른 친구에게는 형이라 부르며 존댓말까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재수한 다른 친구에게 반말하니까 동기가 움찔하는 느낌을 받았죠.


알고 보니 더 웃긴 건, 한 명은 빠른 83년생, 저는 빠른 84년생, 마지막 한 명은 빠른 85년생이었죠. 이거 잘못하다가는 족보가 제대로 꼬일 것 같았습니다. 저는 중간에서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할 수 있더라도 나머지 둘은 괜히 저 때문에 친구를 하자고 했다면, 나중에 웃긴 일들이 생길 수 있었겠죠?




한 2년 정도 그렇게 신분을 잘 숨겨가며 살고 있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02학번 선배가 군대에 간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말끝마다 “형이... 어쩌구 저쩌구”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게다가 같은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배다 보니 친구의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더는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하지만 차마 군대 간다는 사람 앞에 무안하게 ‘사실 제가 음력으로 83년생입니다.’라고 말을 하지 못하겠더군요. 하지만 큰 결심을 하게 되죠. 앞으로 누군가 물어보면 무조건 음력 생일로 말해줘야겠다고 말이죠.


이 시기에는 ‘싸이월드’가 대세였습니다. 혹시 ‘투멤’이라고 아시나요? ‘투데이 멤버’의 준말로 매일 2명씩 특색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일명 ‘인싸’가 되는 길이기도 했죠. 관종이었던 저도 신청을 해서 몇 번의 실패도 있었지만 결국 도전에 성공했죠.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짜릿하네요. 하루에 수만 명의 사람이 방문해서 글을 남겼으니까요.     


싸이월드 홈피 대문에는 사진 밑에 성별과 생일이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를 계기로 양력, 음력 구분 없는 시스템 속에 그냥 ‘83년 12월생’ 신분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꼬여버린 족보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앞으로 인간관계는 83년생으로 제대로 해보겠다는 심보였던 것이죠. 과연 저는 양쪽 신분을 모두 가진 빠른 연생인 진골 신분을 숨기고, 순수 혈통 성골 83년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2023년 6월 28일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동안 한국식 나이 제도를 폐지하고, 만 나이로 통일할 것을 선포합니다.”     


놀랍게도 한국에서 그렇게 중시하던 나이 제도가 바뀌었다. 덕분에 올해 41살이었다가 갑자기 39세로 2살이나 젊어졌다. (아니 40대에서 30대가 된 거니까 10년이나 젊어진 거네? 아싸 개이득!) 이제는 만 나이로 하니까 83년생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어졌겠지? 과연 그럴까? 오히려 나이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만 나이 제도로 바뀌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나이만 들어서는 선배인지, 친구인지, 후배인지 제대로 알 수 없으니까.


다시 몇 학번인지 물어봐야 하고, 혹은 몇 년 생인지 물어봐야 하고, 때로는 무슨 띠냐고 묻기도 해야 한다. 아무리 빠른 연생 조기입학이 2009년부터 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2023년부터 만 나이로 통일한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중요한 한국에서는 혼란이 생길 수밖에...     


그런데 한국에 살면서 더 충격인 건 ‘나이’ 때문이 아니었다. ‘계급’이 깡패인 군대, ‘입사 연도, 기수, 직급 등’이 깡패인 회사나 기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갑’이 되는 경우도 많기에 ‘나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나이’에 집착했을까...? 참으로 바보 같다. (눈물이 흐른다.)     


“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그땐 그랬지.”     


‘그땐 그랬지’로 싸이월드 배경음악 바꾸러 이만 가야겠다.     


*그땐 그랬지

- 이적&김동률이 1999년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의 타이틀 곡     


 <나는 83년생입니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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