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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Oct 15. 2023

15화. 신용대출

소설 같은 이야기

(주의) 사실 기반 허구가 담긴 이야기입니다. 100% 진실이 아니니 오해하지 않고 읽어주세요^^

 - 그동안 읽은 모든 글도 같습니다.




외벌이 가장들의 비애를 아는가? 결혼 전에는 아내도 일했지만, 첫째가 출산하면서 휴직이나 퇴사를 하면서 외벌이 가장이 된다. 첫째를 어느 정도 키워서 이제 다시 맞벌이할까 하다 보면 어느새 둘째가 생겨 사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선배들이 주변에 종종 있다. 그들의 특징은 매일 야근하고,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한다는 점이다. 왜냐고? 초과 근무로 수당을 더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이게 남의 일이 아닌 날이 나에게 올 줄이야.     


4인 가족이 아파트 담보 대출이 있다면, 혼자 벌어서는 무조건 매달 마이너스다. 월급의 절반 가까이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내고, 매달 고정으로 들어가는 지출 비용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다. 맛있는 것을 먹기는커녕 하루 세끼 꼬박 챙겨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더 필요하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매번 물가와 대출 이자만 오르니까.     


이런 사정을 몰랐던 총각 시절에는 남의 밥만 축내는 선배들이 한심해 보였다. 얼마나 능력이 안 되면 칼퇴근을 못 할까. 혹은 일부러 그렇게 남아서 초과 근무 수당을 받고 싶은 걸까. 이러나저러나 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에 놓이니 역지사지가 되었다.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하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생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었다. 역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건 오만한 행동이다.     


막막했다.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 선배들처럼 빈대처럼 늦게까지 남아서 일해야 할까? 아니면 직장 사람들 모르게 투잡이라도 뛰어야 할까? 아내 이름으로 사업자를 내서 사업이라도 해야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특별한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방법을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도 어리니 손이 많이 가는 상황이라 독박 육아 중인 아내도 허덕이고 있었기에. 일찍 퇴근해서 육아든 집안일이든 무조건 도와야 했다.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 외에 무언가를 하는 건 지금으로선 무리였다.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떻게 경제적인 위기를 극복할까 궁금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의외로 재테크를 잘해서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식과 부동산에 대해서 가끔 떠들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비트코인으로 대박 난 사람도 있었다. 모두 내 기준에서는 도박이 아닌가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용기가 생기는 법.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주식을 하든 부동산 투자를 하든 시드가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었다.      


혹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믿는가? 재테크 문외한이자 월급쟁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재테크는 이율 높은 적금에 붓는 것뿐이었다. 2~3년을 그렇게 미래를 위해서 모은 돈을 보니 2천만 원 정도가 되었다. 일명 시드 머니가 나에게는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갭투자를 한다고 해도 고작 2천만 원 가지고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물론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에서도 단점이 있었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내가 들어가려고 할 때는 단가가 8천만 원이었으니까. 다른 종목도 있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도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나에게 남은 옵션은 단 한 가지 주식뿐이었다.       


    


    

주식 문외한이기도 했던 나는 훈련이 필요했다. 일단 적은 돈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무슨 깡인지 모르겠지만, 불타는 장에 올라타서 단타를 하기 시작했다. 당일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을 선택해서 분 단위로 살펴보며 조금 오르면 바로 뺐다. 일확천금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렇게 하니까 매일 조금씩 돈을 벌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만 원 단위로 시작했던 주식을 수십만 원 단위로 올리고, 백만 원 단위로 올렸다. 그래도 장이 좋아서인지 몰라도 매일 손해 없이 수익을 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이제는 내가 가진 모든 돈을 다 가지고 해도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더 훈련해보자는 의미에서 국내 주식에서 해외 주식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국내 주식은 근무 시간에 신경을 써야 하니까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미국 주식에 눈을 돌린 것이다.     


미국 주식은 국내 주식보다 더 움직임이 컸다. 등락에 제한이 없으니 하루 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천국의 맛만 보면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그랬다. 하루 만에 500%가 올라서 몇백만 원을 번 것이다. 그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 최고 수익률이었기에. 하지만 그게 나를 주식의 늪에 빠지게 할 줄은 그땐 몰랐다.      


너무 단타로만 하니까. 밤에는 쉬지 않고 계속 핸드폰을 봐야 하니까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새벽 늦게까지 지켜봐야 하니 다음 날에 영향을 주었다. 방법을 조금 바꿔야만 했다. 스윙이나 중장기로 넘어가는 방법이 필요했다. 유망주 종목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야 낮을 때 들어갔다가 떡상했을 때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     


우주 산업 쪽에 희소식이 있을 거라는 말에 몇 가지 종목을 골라 연구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식 유튜브를 보면서 그래프를 조금 볼 줄 알았기에 과감하게 배팅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꾸준하게 오르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고 있었다. 단타에서 이제 길게 지켜보는 주식 투자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주식으로 번 돈이 내가 투자한 만큼의 돈이 되었다. 2천만 원을 투자했으니 4천만 원이 된 것이다.

     

욕심이 생겼다.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금방 1억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원래 이럴 때가 위험한 것이라고 누군가 그러던데. 주식 장의 상승 흐름은 나를 유혹했다. 절대 신용대출로 재테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누군가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대출이 바로 나왔다. 카카오 뱅크는 온라인으로 5분도 채 안 되어 모든 일을 처리했다.      


8천만 원까지 빌릴 수 있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원금인 2천만 원 정도는 다 날려도 마이너스는 아니니까 괜찮다고 판단했다. 2천만 원을 당겨서 총 6천만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망주 종목에 올인했다. 분할 매수, 분할 매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 흐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이밍 좋게도 내가 투자한 종목 회사에서 일주일 뒤에 우주 비행 실험이 진행될 거라는 기사가 떴다. 주식 가격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 종목에 대한 내 수익률은 30%가 넘었다. 이 정도면 거의 프로 투자자 이상의 실력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대망의 우주 비행 실험 날이 왔다. 우주 비행 관련 종목 회사 CEO가 직접 우주 비행선을 타고 성공적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실험은 성공했다. 그날 주식은 대박이 났다. 나는 수익률이 100%가 되어, 내 주식 총자산은 1억 2천만 원이 됐다.      


주택 담보 대출을 받고 잠시 내 통장에 스쳐 간 억 단위 숫자를 본 다음으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도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라면 직장 때려치우고 주식 투자자로 나가보면 어떨까 잠시 생각했다. 로또만큼은 아니어도 대박이었으니까. 아내한테 주식 창을 보여주니 화들짝 놀랐다. 1억 2천이 아니라 1천 2백인 줄 알고 다 날렸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처음 신용대출로 주식을 한다고 2천만 원을 빌린다고 할 때 뜯어말리던 아내였다. 나도 많이 보수적이지만, 아내는 더 심했다. 신용대출은 신용불량자가 되는 길이고,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고 믿었다. 재테크는 부동산이 제일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던 아내였기에 처음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그동안 적금 들었던 돈으로 내가 2배로 불린 돈을 보여주니 석연치 않아 했지만 허락해준 거였다. 그때도 적금을 왜 상의도 없이 깨서 주식에 투자했냐며 혼나긴 했지만, 수익을 낼 때라 넘어간 거였다.      


아내는 다시 천천히 1억 2천이라는 숫자를 세고 나서야 환하게 웃었다. 둘이 부둥켜안고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마법의 성에 나오는 가사처럼 하늘을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다음 날부터 조금씩 다시 단가가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서서히 단가가 떨어졌다. 그래도 내게는 별 타격이 없었다. 100% 수익률이었으니 떨어져도 70% 이상 수익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욕심 때문이었다. 나는 오래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더 오르기 전에 돈을 더 투자하고 싶었다. 나중에는 이게 1억이 아니라 10억이 될지 모를 일이라 생각했다.    

  

아직 주식 통장에 돈이 1억이 있으니 아내에게 2천만 원만 더 빌린다고 했다. 아내도 이제는 나를 신뢰해서인지 무리하지 말라고만 할 뿐 말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돈을 빌려서 1억 2천만 원을 만들었다. 투자금 8천에 수익은 4천만 원인 상태니까 50%로 수익률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빨간불이 들어왔기에 덤덤했다. 하지만 미국 주식 장이 무서운 이유를 다음 날 알 수 있었다.     


우주 비행을 성공한 지 딱 10일째 되던 날이었다. 주식이 폭락했다. 특별한 뉴스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주식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수익률 40%, 30%, 20%, 10%, 0%... 고민의 순간이 왔다. 수익이 10%로라도 남았을 때는 다시 오르겠지 싶었는데, 0%가 되니까 만일 앞으로 더 내려가면 빚이 생기게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잠시 또 올라서 10% 수익이 났다.      


‘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원래는 마이너스가 되면 다 팔고 나오려고 했는데 10%로 다시 올라오니 안심됐다. 새벽 2시까지 지켜보다가 이제는 괜찮을 것 같아 잠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안일한 생각이자 행동이었다. 미국 주식은 한계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다시 상승세였기에 당연히 일어나면 조금 더 올라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눈을 뜨자마자 주식 앱을 켜서 결과를 확인했다.      


‘수익률 -50%’    

  

‘-500%’는 아니었지만, 원금 8천만 원의 절반은 내가 빌린 돈 4천만 원 전부였다. 하루 만에 신용대출로 받은 돈을 다 날린 거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혹시 꿈은 아닐까? 볼을 꼬집어 보았다. 너무 아파서 소리 질러 이른 아침 윗집 아랫집 사람 다 깨울 판이었다. 순간이었지만, 영화 《인셉션》에서 나온 것처럼 팽이를 돌렸을 때 영원히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딱 그런 꼴이었다. 주식 문외한이 어설프게 발을 들였다가 돈을 다 날려버린 상황이니까. 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사람이 정신이 나간다. 판단력이 흐려진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이 왜 패가망신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하루 종일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그날 밤 다시 주식 시장이 시작되었을 때 평단을 낮추기 위해 물타기를 결심했다. 아내에게 상의도 없이 바로 저질렀다.      


4천만 원을 더 당길 수 있었지만, 딱 절반만 해보자는 심정으로 2천만 원을 빌렸다. 총 6천만 원을 빌린 것이다. 현재 내 주식 통장에 들어있는 돈 숫자와 같았다. 다시 말해, 100% 신용대출금으로 주식을 하는 셈이었다. 혹시라도 주식을 하는 사람 중에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갔기에 미친 짓을 저질렀다.     


그나마 정신 차린 것은 분할 매수를 한 것이다. 그동안 분할 매수, 매도하지 못해서 이 난리가 났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하지만 2천만 원을 다 쓸 때까지 평단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 단가는 내려갔고, 이제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중간에 망연자실, 자포자기 상태로 미국 기사를 찾아봤더니 CEO가 지분을 왕창 팔았다고 했다. 이성을 놓은 내 잘못이었다. 그 기사만 미리 봤더라면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키우지 않았을 테니까.     


‘하... 어떻게 하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돈을 날린 것도 속상하지만, 아내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나 그게 더 걱정이었다. 어디 숨을 곳이 있다면 평생 숨어서 살거나, 혹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처자식을 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자수하는 게 광명을 찾는 일이니까.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보. 나 할말이 있는데...”

“응. 뭔데요?”

“아... 그게... 사실...”

“웬일이래? 이렇게 뜸 들이고?”

“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앞뒤 사정 설명 없이 바로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내는 무서운 말로 대답했다. 보통은 서로 존댓말을 하지만, 화가 나면 반말이 나오기에.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주식이... 주식이...”   

  

아내는 주식이라는 말에 재빨리 주식 앱을 켜달라고 했다. 나는 손가락이 떨려서 자꾸만 화면 보호 패턴을 잘못 눌렀다. 답답한지 핸드폰을 빼앗아 패턴을 풀어주었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받아서 주식 앱으로 들어가 보여주었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조용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니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만 쉬었다. 더 무서웠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서 혼내주었으면 좋을 텐데.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죄인처럼 바닥에 앉아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렇게 20~30분이 지났을까. 아내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잘해보려고 그런 거잖아. 괜찮으니까 하나만 약속해줘요. 앞으론 주식 안 하겠다고. 그리고 신용대출은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말고요. 알겠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은 바로 ‘용서’라고 했다. 나는 제 발이 저려서 그 후로 쥐죽은 듯이 지냈다. 주식을 정리해서 일단 갚을 수 있는 건 갚고 나머지 돈은 열심히 노동으로 번 돈으로 갚고 있다. 안 그래도 네 식구 항상 마이너스인데 신용대출까지 갚으려니 우리는 더 긴축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보험을 다 해지했다. 고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1일 1만 원으로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외식도 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육식과는 먼 식생활을 하게 됐다. 집은 새 아파트라서 번지르르한데, 가난과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나 해야 할까?     


퇴직 후에 시골로 내려가신 부모님이 연금으로 빠듯한 삶을 살다 보니 한 달에 고기를 먹는 날이 거의 없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도 여유 있는 게 아니라 도움을 드릴 수 없으니 더 그랬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벌어졌다. 물론 나는 직장에서, 애들은 어린이집에서 반찬으로 고기가 나오니 먹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좋아하는 고기를 마음껏 먹지 못했다.     


아내는 자기 자신의 상황보다 더 한창 잘 먹고 잘 커야 하는 애들이 고기를 먹지 못해서 안타까워했다. 행여나 처가 어른들이 애들 뭐 사주라고 용돈이라도 주시면, 그때마다 고기를 사서 요리했다. 용돈이 많은 날에는 소고기, 적은 날에는 돼지고기를 샀다. 다른 집은 일주일에 치킨을 여러 번 시켜 먹는다는데 우리는 아내가 직접 생닭을 사다가 요리했다. 그나마 요리를 잘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식비가 어마어마했을 테니.     


주식으로 집을 팔 정도로 망한 건 아니지만, 우리의 의식주 기본 생활은 피폐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명하지 못했던 선택의 결과였다. 잘못된 투자에 대한 값을 제대로 치른 것이다. 투자와 투기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투기는 곧 도박이니까. 그리고 사람은 투기와 도박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이 올 수 있기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다 맞다. 빚이 죽어도 싫던 내가 집 때문에 빌리고, 주식 때문에 빌리는 삶을 살고 있으니. 하지만 부동산은 타이밍이 좋다면, 레버리지를 이용하는 게 현명한 것이다. 이건 책으로 제대로 배우고 한 일이라 잘했다. 하지만 섣불리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특히 그게 생계에 위협을 주는 일이라면 말이다.     


     


  

지인 중에 가족에게 보증을 잘못 서서 집을 홀딱 날려버린 일이 있다고 했다. 넓은 평수 새 아파트에서 살던 그 집은 단칸방 원룸 빌라로 이사했다. 그렇게 보증을 잘못 서면 인생이 한방에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걸 간접 경험으로 배웠다. 그래서 나는 보증은커녕 돈도 잘 안 빌려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빌려준 돈이 없는 것이겠지.     


살면서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지인이 두 명이 있었다. 한번은 자기가 정선 카지노에서 돈을 잃어서 현금이 없는 상태라 조금만 빌려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대학원 학비 빌린 돈을 갚느라 돈이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빌려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두 번이나 연락을 해오고 부탁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랬더니 저절로 인간관계가 끊겼다. 그 지인은 잠실에 20억이 넘는 집이 있었는데도 도박 때문에 어떤 결과를 맞이했을지 모르겠다.     


두 번째로는 지인이 회사에서 잘리고 많이 어려운 상태라며 연락했다. 거의 15년 만에 온 연락이라 처음에는 의심했다. 혹시 몰라 영상 통화할 수 있냐고 물었다. 누군가 사기 치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인이 맞았다. 자기가 지금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 돈을 좀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빛 좋은 개살구가 무슨 돈이 있으랴.

      

하지만 영상으로 얼굴을 직접 보니 마치 잘못하면 금방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모아둔 용돈 30만 원을 모두 털어서 보내줬다. 누군가 그랬다. 돈을 빌려주지 말고, 그냥 주라고. 그게 오히려 관계를 지키는 길이라고. 나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줬다. 사람 하나 살린다는 셈 치고.      


그 후로 아직 한 번도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나 보다. 한편으론 나쁜 소식도 전해지지 않았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부고 문자라도 받는다면, 또 마음이 괴로웠을 테니까. 아니 돈이라도 그냥 보태줬으니 괜찮았을까. 모르겠다. 중요한 건 고작 돈 몇 푼으로 관계를 잃는 사이라면 그때가 손절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거라는 것만 기억하자.   


       

(엔딩곡)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님과 함께

- 1998년 4월에 발매된 가수 남진의 ‘남진 히트곡 전집’ 앨범, 2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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